책 읽는 워킹맘
저는 둘째가 7살에서 8살까지 2년여를 제외하고는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 없이 오롯이 남편과 함께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맞벌이를 했습니다. 조그마한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저는 첫째를 낳았을 때는 회사에서 아이를 낳고 복직한 최초의 여사원이었으며, 당시에도 법적으로 세 달이던 출산휴가도 두 달만 가면 안 되냐는 말을 듣기도 했죠.
여성으로는 최초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종신교수에도 임용돼 스스로도 경제학계의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겪는 문제를 연구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여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발행한 책이라고 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의 2/3 은 세대별의 차이를 바탕으로 여성을 5가지 집단으로 구분하여 집단 간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계속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를 밝힙니다. 미국 여성의 약 50%가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80%의 남성에 비해 소득이 적고 고위직에 도달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남편보다, 또 남성 동료보다 돈도 적게 벌고 커리어 경로에도 뒤쳐집니다. 세대에 걸쳐 여성들은 그게 여성들 본인 탓이 아니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습니다. 경쟁에 충분히 공격적으로 달려들지 않아서, 수완 있게 협상을 하지 못해서, 자기 자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아서, 주장한다 해도 충분히 요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죠. 제가 작년에 들은 것과 똑같은 이야기들이라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여성들은 그게 여성들 본인 탓이 아니라는 말도 누누이 듣습니다.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는 일견 여성들 스스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맞다고 해도, 이것은 여성들이 이용당하고, 뒤통수 맞고, 차별당하고, 성적 괴롭힘에 노출되고, 남성들만의 클럽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은 대체로 소득이 낮은 직종에서 직업을 선택하고 남성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직업을 선택합니다.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면 좋을 직업들은 한국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선생님, 공무원, 사회복지, 보건분야. 골딘 교수에 따르면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는 전체 임금 격차의 1/3밖에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는 미국의 사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미국의 남녀 소득이 시작할 때는 동일하다고 했지만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차이가 난다는 통계가 있죠. 2021년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는 1인당 여성은 남성 대비 60%의 소득 수준을 보입니다. 이런 통계를 보여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직업에 따른 격차 혹은 근무 시간에 따른 격차라고 말하곤 하죠. 그러나, 그 직무 차이와 근무 시간의 차이를 유발하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 원인을 "탐욕스러운 일"에 있다고 보고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성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강제퇴직을 당하는 등의 명시적인 성차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과연 이것이 정말인지 의문이 듭니다. 여성이 주로 '육아'를 담당한다는 기대 성역할이나 사회적 암묵적 룰은 '시간의 제약'이라는 문제에 빠져 있는 맞벌이 부부간 공평성에 치명타를 입힌다는 것은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죠.
가정(육아)을 위해 일을 그만두거나 줄이는 것은 왜 언제나 거의 여성이어야 하는 걸까요. 2024년 한 정책연구에 따르면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 유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육아기 부모의 시간 제약을 완화할 수 있는 재택 · 단축 근무 제도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의 확대, 남성(부)의 영유아 교육 · 보육 비중 확대를 통한 여성의 비대칭적 육아부담 경감 등을 통해 유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을 낮추고 여성이 직면한 출산 및 육아 부담을 낮춰 출산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자녀 여성의 경력단절을 방지하는 정책은 노동 공급을 증가시키고 회복할 수 없는 인적자본 훼손을 방지하여 출산율 제고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의 성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로 결론을 맺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20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엄마로서 20년 전이나 현재나 같은 결론을 내고 마는 정책 연구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본인들의 실적을 위해서 이름만 다른 똑같은 제도를 매 정부마다 만들기보다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시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 것인지. 지금 대학교 1학년인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장선생님은 입학식 때 몇 학년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면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돌봄 교실은 온돌이 깔려있어 아이들이 실내화를 벗고 자유롭게 앉아 책을 보거나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떡류나 빵류로 아이들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식이 제공되었고, 리코더, 중국어, 영어, 오카리나 등등 특활 선생님이 방문하여 아이들이 돌봄 교실을 이용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일매일 있었죠. 첫째와 두 살 터울의 둘째가 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자 갑자기 돌봄 교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돌봄 교실은 추첨제가 되었고, 교실이 모자라다며 원래 돌봄 교실로 사용되던 곳은 일반 교실로 바뀌었고 돌봄 교실 아이들은 방과 후 원래 그 반의 선생님이 방과 후 업무를 보시는 동안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반 교실 한편을 이용해야 했고, 간식은 과자와 피크닉 주스로 대체되었고, 다양했던 프로그램은 사라졌습니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고 돌봄 교실에 사용할 수 있었던 예산이 확연히 줄어서 그렇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현재도 돌봄 교실은 추첨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늘봄학교(?) 뭐니 해서 아이들을 저녁까지 돌보아 준다는 정책을 또 만들었네요?! 있는 제도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이름만 번드르르한 제도들은 왜 이렇게 바꾸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엄마는 여자는 고등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에서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반면, 외삼촌은 공부를 잘하여 서울대를 나오셨습니다. 외삼촌이 여자도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회사를 몇 년 다니다가 그만두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엄마는 “선생님"이 되어서 계속해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IMF 이후 전혀 다른 일 (판매직)을 하며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여자도 계속 일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다는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한 저는 딸은 낳은 후 이 아이는 지금 나의 어떤 모습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 또한 지금의 부모 세대를 보고 자라나는 후배 세대(우리의 자녀 세대)의 일과 가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세심하게 아이들을 봐주시던 동네 소아과와 대학 병원의 여자의사 선생님도 둘째를 임신하고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병원을 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부를 잘하건, 돈을 잘 벌건, 이 나라에서 여자들이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경력단절이 되고, 아이들이 얼추 큰 후에 다시 사회로 나오려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마트 캐셔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상심했죠. 회사에서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을 뽑으면서 경력단절 여성분들의 이력서를 받았는데 다들 학력과 이력이 출중한데도 용기가 없어서,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서 면접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지지부진해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거구나하고 조금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높은 임금을 주지 않는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지만, 엄마의 삶, 나의 삶,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진행될까 대입해 가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