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이 음력인 이유

지난 30년을 반성하며

by 득득

저번주에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진아. 엄마 생일 27일인 거 알지?"

"어, 달력에 메모 해 놨다."


엄마 생일이 다가온다.

엄마 생일은 음력이다. 옛날 문화 중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음력 생일 문화이다.

제사나 명절 문화도 다 바뀌어 가는 요즘 시대에 이상하게 어른들의 음력생일은 끝까지 바뀌지 않는다.

양력으로 계산하면 매년 생일이 바뀌기 때문에 매년 음력 계산기를 활용해야하는 등 음력 생일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생일을 챙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늘은 아빠 생일이다. 축하한다고 말씀 드려라", "오늘 누나 생일인 거 알지? 전화 한 통 해줘라"

엄마는 매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우리 가족의 생일을 챙겨주라고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당신의 생일을 챙기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어릴 적에는 엄마 생일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미역국이 나올 때면 "왠 미역국이야?"라고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오늘 엄마 생일이라서.."라고 말 했다. 엄마는 엄마 생일을 스스로 챙겼고, 그걸 본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아 오늘이 엄마 생일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곤 서둘러 학교에 가곤 했다.


엄마 생일을 챙겨야 된다는 의식이 생긴 것은 아마 고등학교 무렵부터일 것이다. 그러나 늘 다짐만 앞서는 나에게 '음력'생일은 너무나 복잡한 것이었고, 늘 까먹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대학에 가서는 '군대를 가야해서', 복학을 하고나서는 '임용시험 준비 때문에 바빠서' 늘 엄마의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기간제 교사로 일할 때에는 시험에 얼른 붙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엄마 생일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서로 내적갈등을 이루며 나를 괴롭혔고, 결국 엄마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에 밥 한끼 사드리는 것으로 타협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재작년 이 맘 때에는 임용 2차 시험을 앞두고 엄마 생일을 챙길 수 없었고, 작년 이 맘 때에는 결혼식 준비로 엄마 생일을 챙길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제대로 된 생일 대접 한번 하지 못하고 30년이 훌쩍 지났다.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천사도 찾아온 나에게 이제는 당장의 주어진 과제가 없어서일까?
이제는 엄마 생일이 생각난다. 뭐라도 엄마를 기분 좋게 해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엄마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금방 풀이 죽고 말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사드려야겠다. '

혼자 대견한 아들인 냥 생각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싼 고깃집에 가면 속이 따갑다고 거의 드시질 않고, 가격 저렴한 백반집에 가면 자신의 음식이 낫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고 하시던 엄마.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는 외식 메뉴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는 무슨 음식 좋아해?"

고민을 하던 엄마는 말했다.

"아들아,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도대체 잘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엄마의 그 말이 당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외식을 한 적이 없다.

모두 아빠, 누나, 나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갑자기 마음 한쪽이 쓰라리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외식으로는 엄마를 기쁘게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를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을 내가 알 수 없다면 엄마가 생일날 늘 하던 것을 우리가 대신 해주고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주자!


난생 처음

가스 불을 켜고 미역국을 끓였다.

돼지고기를 삶아 찜을 만들었고, 불고기를 만들었다.


하루종일 요리만 하다가 하루가 갔다.

'엄마도 하루종일 요리만 하다가 하루를 보냈겠지?'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엄마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 엄마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여 드린 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점에 가서 케이크를 켜야겠다.


음력 생일은 양력생일보다 계산하기도 까다롭고 귀찮다.

까다롭고 귀찮은 것은 아무래도 좀 더 신경이 많이 쓰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엄마의 생일이 음력인 덕분에 늦게라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엄마가 좋아하는 취향이 뭔지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생일이 음력 생일인 이유는 부모에게 소홀한 수많은 날들 중

최소한의 날들은 엄마를 생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상님의 배려인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