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라는 이름의 정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을 동사(凍死)시키고 있는가? “
겨울이 유난히 긴 곳에 살다 보면, 풍경이 사람의 성격을 규정짓는다는 말을 믿게 된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 <이선 프롬>의 배경인 '스탁필드(Starkfield)'가 그렇다. 그 이름처럼 황량하고 굳어버린 그곳에서, 주인공 이선 프롬은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바위처럼 서 있다. 하지만 그 단단한 외피 아래,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다 결국 재만 남긴 한 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못내 시리고 아픈 경험이다.
이선 프롬의 삶은 '책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설벽에 막혀 있다. 병든 부모를 수발하느라 자신의 꿈을 접었고, 이제는 신경질적인 아내 지나(Zeena)의 침묵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선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닌, 온기를 약탈당한 유배지와 같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매티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다. 그녀는 이선이 평생 억눌러온 '생의 감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이선은 비로소 사물의 색채를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도 듣게 된다. 하지만 이선의 성정은 너무나 선량하고 나약해서, 아내를 버리고 떠나는 파격 대신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지만, 운명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 지독한 '함께 살아남기'라는 형벌을 내려버렸다.
이 소설이 이토록 정교하게 인간의 불행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이디스 워튼 자신의 삶이 투영되었기 때문인데, 뉴욕 상류층의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 뒤에서, 그녀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과 남편의 정신 질환을 견뎌냈다. 워튼은 누구보다 사회적 관습의 무게를 잘 아는 인물이었고, 그녀의 펜 끝은 예리한 메스처럼 이선의 심리를 해부한다. 이선이 매티와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가계부의 숫자를 계산하며 좌절하는 모습은, 낭만적인 비극을 넘어 지독한 현실주의를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스탁필드'가 있지 않을까? 책임감 때문에, 혹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차마 꺼내 놓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뜨거운 열망들. 이선 프롬의 비극은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회적인 인간'이었기에 발생한 것일까! 눈 덮인 언덕 아래로 썰매를 몰던 그의 마지막 질주는, 어쩌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욕망 앞에 정직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이선 프롬의 집 앞에는 여전히 시린 눈이 쌓여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차가운 풍경을 마주할 때, 이제 그를 비난하기보다 그가 한때 품었던 그 짧고 강렬했던 온기를 먼저 떠올려 보려 한다. 비록 무너져버린 삶일지라도, 누군가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마음만은 가짜가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