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란?
지혜란?
지혜는, 지식이 숙성된 상태이며 실천적이다. 그러므로 먼저 지식이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다는 것은 ‘이름과 의미’를 아는 것이며 ‘언어와 진실’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개념이라고 한다. ‘문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언어로 형상화한 예술이다.’ 여기서 ‘문학’은 이름이며,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언어로 형상화한 예술’은 의미이다. 이렇게 개념을 알고 난 다음에 익힘, 경험, 체험을 하면 지혜가 된다. 공부를 할 때에는 개념 정리를 열심히 하고, 익힘, 경험, 체험을 열심히 해야 진짜로 알게 되며 삶의 지혜가 된다.
그리고 지식은 언어로 표현되는데 언어는 상징체계이다. 먼저 서정주의 <신부>를 읽어 보자.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를 못 참아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위의 시에서 시적화자는 신부를 바라보고 있다. 신부는, 첫날밤에 신랑이 음탕하다고 오해를 하고 도망을 가버렸지만 기다렸다. 그리고 신부는, 오랜 세월을 기다리다 신랑이 어깨를 어루만지니 재가 되었다. 이러한 신부의 처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안쓰럽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신랑은 오해를 하고 있다. 신랑은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상상만하고 있다. 신랑은, 손으로 잡아당기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고, 손으로 잡아당기고 있다면 잡아당기는 뜻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상상을 한 것이다. 사실과 진실을 확인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즈음도 카톡의 말을 보고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상호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실과 진실을 확인하는 것,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언어는 상징체계이다. 아래 표를 보면,
1. 언어에는 사실과 진실이 들어있다.
2.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는 말을 할 때 진리라 한다. 여실(如實)한 말. 여여(如如)한 말. 실실(實實)한 말.
3. 사실과 진실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과 절차를 진리탐구라 한다. 진리탐구란 실체적 진실을 찾는 것이다.
4.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개도 ‘멍멍’ 자기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개소리도 잘 들어보면 진리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진리를 인정해야 한다.
5. 언어는 상징이므로 사람마다 같고 다르다. ‘사실과 언어, 사실과 진실, 언어와 진실’ 등은 사람마다 같고 다르다. 그러므로 상대의 진리를 그냥 인정하는 것이 좋다. 언어의 자의성, 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역사성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6. 고정불변의 진리는 없으며, 진리는 공시적 통시적 한계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탐구를 해야 한다.
7. 진리가 생명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8. 느낌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9. 상대의 진리를 인정하고 나의 진리도 인정받고, 상대의 생명을 존중하고 나의 생명도 존중받고, 지금 진리탐구를 하면서 자유롭게.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는 말을 할 때 진리라 한다. 개가 ‘멍멍’이라 말을 하면 개도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개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개소리를 이해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위의 표에서 ‘사실과 언어, 사실과 진실, 언어와 진실’ 등은 사람마다 서로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같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대의 진리와 나의 진리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리탐구를 하면 다툴 일이 줄어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리를 남에게 강요하고 남의 진리는 인정하지 않는 폭력이 일어난다.
논문을 쓸 때, 학문을 할 때, 부정적인 상황일 때는 진리탐구를 해야 하지만 일상에서는 상대의 진리를 인정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
안다는 것은, 이름을 알고 의미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알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어는 상징체계이므로 언어 속에 담긴 사실과 진실을 확인하는 진리탐구의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진리는 공시적 통시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상대의 진리를 인정하면서 실체적 진실을 탐구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것이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