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과 표현(수필)

공감 안 하기 그리고 감동 안 먹기

by 묘길 조길상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과 표현- 공감 안 하기 그리고 감동 안 먹기

사람은 반응을 하는 존재이다. 빛과 색에 반응하고, 소리에 반응하고, 냄새에 반응하고, 맛에 반응하고, 피부접촉에 반응한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에 반응을 하는 존재이다. 빛, 소리, 냄새, 맛, 접촉에 반응을 한 후에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생각을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남편이 소리를 지른다. 여편은 소리에 반응한다. 그리고 여편은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생각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리하여 여편은 불로 자신을 태운다.

여편이 소리를 지른다. 남편은 소리에 반응한다. 그리고 남편은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생각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리하여 남편은 불로 자신을 태운다.

이렇게 남편과 여편은 스스로 불이 되어 집을 태운다. 옆에서 아이들은 불구경을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로 불을 끄려 하지만......

남편과 여편은 모두 반응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반응을 안 할 수는 없을까? 남편과 여편은 모두 상대의 말에 반응을 하면서 스스로 화를 내고 있으니 반응을 하지 않으면 화도 없을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이며 함께 불타는 것이다. 화라는 감정의 에너지는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라 모두를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반응하지 않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불을 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시를 한 편 읽어 보자.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위의 시에서 화자는 불로 만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사람 사이에 화는 세상을 태우는 부정적인 것이니 물로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물로 만나기 위해서는 말(언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말의 본질과 소통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

말은 말을 한 사람의 말이다.

내가 한 말은 내 말이고 그대가 한 말은 그대의 말이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처럼 말을 한다는 것은 반응을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반응(공감)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내 말에 반응(공감)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세상의 이치는 이처럼 공평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내 말에 반응(공감)을 하거나 안 하거나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 말에 반응(공감)을 하거나 안 하거나 자유롭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다른 사람을 구속하거나 다른 사람이 나를 구속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는 않다. 남편은 여편의 말에 반응을 안 하기도 어렵고, 여편은 남편의 말에 반응을 안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남편이 여편에게 반응을 강요하거나 여편이 남편에게 반응을 강요하는 것은 자유를 구속하는 부당한 일이다. 왜 사람은 상대편에게 반응을 요구할까?

사람은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이 공감하기를 바란다. 소통과 공감은 친한 친구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살아가면서 참으로 갑갑한 경우가 많다.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오해를 하여 사람 관계가 부정적 공감의 상태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사람의 말에 반응하는 것을 공감이라 한다. 그런데 공감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사실 공감은 억지로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공감은 쉽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내가 기분이 나쁜 상태에 있을 때 상대방도 나의 기분에 공감하여 기분이 나빠지도록 하기 위해서 욕을 하면 금방 공감의 상태에 빠져 나의 기분과 거의 비슷하게 된다. 이처럼 공감시키기는 쉽기도 하다. 남편은 화가 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여편과 공감하려고 한다. 그래서 고함을 지르면 여편은 금방 공감 상태에 빠져 함께 화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사람의 말하기(소통)는, 상대방에게 반응을 유도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반응이 일어난 상태를 공감(共感)이라 하며, 공감을 하게 되면 감동(感動)을 먹게 된다. 공감동.

사람들은 소통, 공감, 감동을 좋은 의미로만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남편은 여편의 말에 공감(화난 감정을 함께)하고 스스로 화난 상태가 된다. 이럴 경우에는 공감을 안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남편과 여편이 공감 상태에 빠져 감동적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공감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어떻게 말을 하면 상대가 공감을 할까?’
‘나는 어떻게 말을 하면 상대가 공감을 안 할까?’
‘나는 상대의 말에 어떻게 공감할 것인가?’
‘나는 상대의 말에 어떻게 공감을 안 할 것인가?’

위와 같은 네 가지 상황 중에서 ‘나는 어떻게 말을 하면 상대가 공감을 할까?’, ‘나는 상대의 말에 어떻게 공감을 안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어떻게 말을 하면 상대가 공감을 할까?’
소통을 잘 한다는 것은, 상대를 공감하게 하고 감동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의 말에 공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의 말을 반복해주고(공감해주고) 나의 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재미있는 말을 좋아하므로 ‘재미있는 말부터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공감받기가 쉬울 것이다. 그리고 ‘나쁜 말부터 하고 좋은 말하기 방법’도 추천할 만하다. ‘나쁜 말부터 하고 좋은 말하기 방법’은, 먹거리 광고에 나오는, ‘재수 없으니 빨리 대학 가라’는 것처럼 표현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나쁜 말에는 공감을 잘 한다. 그러므로 ‘재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심리적 공감 준비를 한다. 이때 ‘빨리 대학 가라’는 말을 하면 부정적 공감이 긍정적 공감으로 전환되면서 상대가 감동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은 먹는 것이므로 항상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며 소통을 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이 있는 말하기’,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진리의 말을 하기’ 등이 좋은 말하기 방법이며 소통을 잘 하는 방법일 것이다. 좋은 말이 좋은 것이다.

‘나는 상대의 말에 어떻게 공감을 안 할 것인가?’
사람은 공감을 안 하기가 어렵다. 특히 부정적 공감을 안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상대의 화난 감정에는 금방 공감하여 자신도 화를 낸다. 이러한 부정적 공감은 피해야 한다. 화와 화가 만나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 공감을 안 하기 위해서는, ‘말은 말을 한 사람의 말이다. 나는 그대의 말에 공감할 수도 있고 공감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대도 내 말에 공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엉뚱한 생각하기’와 ‘엉뚱한 말하기’가 있다.
‘엉뚱한 생각하기’는 상대의 말에 공감하려는 자신의 정신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방법이다. 여편이 화난 마음을 공감하라고 요구할 때(잔소리를 할 때) 남편은 여편의 얼굴을 세밀하게 감상하거나, 주변의 풍경을 세밀하게 감상하거나 하여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야 화와 화의 만남으로 인한 폭발을 면할 수가 있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공감하는 척 하면서 생각만 엉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공감을 요구하는 존재이며 공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폭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존중 안 하기’도 ‘엉뚱한 생각하기’ 방법이다. ‘의도존중 안 하기’는 ‘너가 나에게 화를 내라고 하는데 나는 너의 의도를 존중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남의 감정에 공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대처럼 화난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엉뚱한 생각하기’는 스스로 감정을 지배하는 방법이므로 자기 주문을 만들 필요도 있다. 화에 끌려가려고 할 때, 스스로 만든 주문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럴 수도 있지 뭐 용서한다.’, ‘화를 내는구나. 무슨 사정이 있겠지. 나를 죽이지 않으니 감사하다.’, ‘어이구 불쌍한 인간 스트레스가 심하구나.’, ‘나무관셈보살’,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등.

‘엉뚱한 말하기’는 ‘표리부동 놀이’ 방법이다. 상대방이 화를 낼 때, 나의 마음은 화가 나고 싫으나 좋은 말을 상대에게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는 않으나 좋은 말로 상대의 화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니 상대에게 계속해서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생각을 따라 말을 하지만 말에 따라서 생각이 변하기도 하므로 좋은 말을 계속하면 좋을 것이다.

사람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스스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삶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공감을 한다는 것은, ‘삶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위로하고 격려를 하는 것(慈悲)’이지 같이 화를 내는 것이 공감은 아니다. 좋은 표현은 ‘삶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위로하고 격려를 하는 것(慈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