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공(수필)

화 말고 웃음

by 묘길 조길상

빨간 공 - 화 말고 웃음

나는 어릴 적에 빨간 공 이야기를 듣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참 궁금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빨간 공을 만났다. 빨간 공이 통통 튀어서 다가왔다. 그래서 그 사람은 빨간 공을 발로 차버렸다. 그렇게 발로 차니까 빨간 공이 자꾸 커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화가 나서 자꾸자꾸 발로 찼다. 발로차니까 엄청나게 커진 빨간 공이 길을 막아 버렸다. 길을 가던 사람은 빨간 공에 막혀서 길을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참을 앉아 있으니 빨간 공이 점점 쪼그라들어 작아지고 그 사람은 길을 갈 수 있었다.

빨간 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빨간 공은 사람이 내는 화가 아닐까? 사람은 작은 화를 내다가 점점 화가 커지고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한참 있다가 화가 쪼그라들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빨간 공은 발로 찰수록 점점 커진다. 화도 건드리면 자꾸 커진다. 작은 화는 그냥 두면 사라지는데 자꾸자꾸 건드리면 커져서 인생길을 막기도 한다. 참 웃긴다. 사람의 감정도 탄생과 성장과 소멸을 하는구나.(成住壞空) 그런데 빨간 공은 어디서 왔을까? 사람의 화는 어디서 왔을까?

살다 보면
불같은 화가
가슴을 태우고 육신을 태워
까맣게 숯이 된 채로
바람에 날려 우주를 방황하리라.

온갖 중생들의 화가
우주를 태워
이 세상을 어둡게 했으니
태초의 혼돈은 화.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참으로 많다. 세상물정 모르는 한 살짜리 아이부터 세상물정을 모두 알고 있는 노인까지 화를 낸다. 그리고 짐승들도 화를 낸다. 화란 무엇일까? 왜 화가 날까? 화를 어떻게 잠재워야 할까? 꼭 잠재워야 하는 것일까? 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모든 인간은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에 대한 기대와 남에 대한 기대의 기준을 설정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학생은 학생의 기준을, 교사는 교사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 기준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화는 기대 수준이 무너질 때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있어야 될 어떤 것이 없을 때, 기대 수준이 파괴된 것이다. ‘나는 100점을 받을 것이다.’는 기대가 배신당하여 50점을 받았을 때 기대 수준이 파괴된 것이다. ‘나는 진정 50점밖에 되지 않는가? 우와! 미치겠다. 기가 찬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한참 기다리니 눈물을 닦으며 나왔다. 그래서 왜 우는지 물어보니, ‘조금전에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서 운다’고 하였다.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같이 울어줄 수도 없고 울지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기대 수준의 파괴로 슬픔이 일어나기도 한다. 집에 개가 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가 깨어지면서 슬픔이 일어난 것이다. '알면 슬프고 모르면 안 슬프다.'

그리고 기대 수준의 파괴는 긍정적 작용을 하기도 한다. 기대 수준의 파괴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생각도 못한 행동과 말을 할 때 우리는 웃게 된다. 이것은 기대 수준의 파괴로 인한 웃음인 것이다. ‘나는 80점을 받을 것이다.’는 기대 수준을 설정했는데 100점을 받았을 경우, 기대 수준이 파괴된 것이다. ‘나는 진정 100점인가? 우와 좋아라. 우하하하.’

남을 웃기려면 기대 수준을 파괴하면 된다. 남이 생각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기대 수준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 수준을 파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남이 알고 있는 경우, 썰렁해지는 경험을 통해서 남을 웃기는 것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 울음, 웃음’ 등은 기대 수준이 파괴될 때 일어나는 심리작용이다. 사람은 화를 낼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웃음은 사람만이 가진 정서가 아닐까?

‘소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개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웃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남과 함께 많이 웃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