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일체
미친원숭이잡기 - 물아일체(物我一體)
국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미친원숭이잡기’를 한 적이 있다. 미친 원숭이는 종잡을 수 없이 날뛰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미친원숭이잡기는 점심 식사 후 5교시에 주로 실시를 하였다.
미친원숭이잡기는, 편안한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정수년의 해금 연주곡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Beautiful Things In Life)’을 들으면서 음악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음악에 집중을 하는데 미친 원숭이가 날뛰면 잘 타일러서 음악에 계속 집중하도록 시켰다. 이렇게 음악과 하나가 되어 날뛰는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미친원숭이잡기이다. 학생들이 30분쯤 미친원숭이잡기를 한 후에 소감문을 작성하도록 시켰다. 학생들이 쓴 소감문은 ‘편안함’을 느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학생들과 미친원숭이잡기를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은 몸이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마음도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미친원숭이잡기는 하루 종일 공부하느라 지친 학생들의 마음을 쉬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고전시가에 자주 등장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개념을 이해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고산 윤선도의 <만흥漫興>을 보면
위 시조의 <제3수>에서 시적화자는, 혼자 먼 산을 바라보면서 좋아하고 있다. 그리고 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운 님이 오는 것보다 더욱 반갑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화자는 먼 산과 사랑에 빠져서 산과 동화된 상태에 있으며 물아일체의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아일체는 我가 物 속에 풍덩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我와 物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我와 物이 분리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이다. 서양에서는 물아일체와 비슷한 말로 영적교감(靈的交感)이 있다. 영적교감은 我가 物과 영적으로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영적교감에서는 我에게 영향을 끼친 物을 객관적 상관물이라 한다. 我는 物의 영향으로 我와 物이 영적으로 교류를 하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어떤 것이 나에게 영향을 끼쳐서 나와 어떤 것이 하나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 동양 사람은 내가 어떤 것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된다고 생각을 한다. 물아일체와 영적교감은 의미가 다르지만 그 경지는 비슷한 것도 같다.
현대시에도 我가 物과 하나가 되려는 시가 있다. 이성선의 <그냥 둔다>를 보면
그냥 둔다(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등성도
그냥 둔다
거기에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위의 시에서 시적화자는 여러 가지 사물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잡초, 벌레, 산등성 등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잡초를 보면서 말을 걸고, 벌레를 보면서 말을 걸고, 산등성을 바라보면서 말을 건다. 이렇게 눈길을 보내고 말을 걸고 하다가 눈길을 그냥 두기로 한다. 이 시에서 잡초, 벌레, 산등성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미친원숭이들이 날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미친원숭이를 달래고 눈길을 그냥 두기로 한다. 눈길을 그냥 두는 것은 미친원숭이잡기에서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것과 같다.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이처럼 사물을 그냥 보는 것이다.
물아일체는 마음을 쉬게 한다. 이처럼 마음을 쉬게 하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데이비드 호킨스가 지은 <놓아버림>에 잘 서술되어 있다.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순수한 자각에 이르기>
⦁순수한 자각에 도달하려는 강렬한 욕망내기.
⦁예외 없이 거듭 누구나 용서하고 온화하게 대하는 행동 훈련, 자신의 자아와 생각을 포함한 모든 것에 연민을 가짐.
⦁욕망을 정지시킨 채로 매순간 개인 의지를 항복하려는 자발성 훈련, 각각의 생각이나 감정, 욕망, 행위를 신께 항복하면 마음은 갈수록 말이 없어짐, 처음에는 모든 이야기와 구절이, 다음에는 발상과 개념이 마음에서 떨어져 나감, 생각을 가지려는 바람을 놓아버리면 더 이상 생각이 구체화되지 않고 절반도 형성되기 전에 산산이 부서짐, 마침내 생각 이면의 에너지가 채 생각이 되기도 전에 에너지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게 됨.
⦁명상 상태에서 한 순간도 주의를 돌리는 일 없이 끊임없고 흔들림 없이 초점을 고정시키는 과제를 일상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함, 처음에는 힘이 들지만 시간이 가면서 습관이 되어 점점 힘이 덜 들어가고 마침내는 하나도 힘들지 않게 됨.
⦁돌연 자각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임재가 들어섬, 자아가 죽을 때 잠시 우려함, 임재의 절대성에 경외감이 솟구침, 지복의 상태.
⦁황홀경은 불안정함, 절망과 공포를 경험함, 은총에서의 하강에서 공포를 느낌, 황홀한 금사슬을 포기하는 공포가 생김, 절대고독의 상태.
⦁존재하려는 욕망 자체를 항복, 모두인 상태 대 무, 존재 대 비존재 등의 이원성 극복, 궁극의 분수령.
⦁자아의 종말, 개인적 의식의 소멸, 보편적 신성 속으로 녹아서 사라짐.
사람은 마음 속에서 하루 종일 재잘거린다. 오만 가지 떼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분주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성선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생각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그냥 바라보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생각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바라보면 사람은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고전시가와 현대시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데이비드 호킨스의 생각처럼 개인적 자아를 놓아버리면 무한한 자유를 경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명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처럼 마음을 훈련하여 무한한 자유를 경험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