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먼저인가? 남자가 먼저인가?
앞과 뒤 그리고 아불사 - 여자가 먼저인가? 남자가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여자가 먼저인가? 남자가 먼저인가?
세상 만물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왜 시작점을 찾으려 하는가?
선후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선후문제로 많은 분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선후 문제의 본질은 시간의 문제이며 인과의 문제이다. 그런데 시간의 문제와 인과의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시간의 본질과 인과의 본질을 안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인과를 지배할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결과를 바꿀 수도 없다.
이처럼 사람은 시간과 인과를 지배할 수는 없지만 결과를 중심으로 원인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닭과 알의 선후, 남자와 여자의 선후는 쉽게 알 수 있다. 닭은 알을 낳고, 여자는 남자를 낳는다. 그런데 알은 닭을 낳을 수 없고, 남자는 여자를 낳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닭과 여자는 알과 남자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비약하여 확대 해석하면 세상 만물의 시작점은 닭과 여자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생각이 아니고 많은 신화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0년(영평 3) 8월 4일에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 서쪽을 가다가 시림(始林)에서 큰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까지 뻗쳐 있었고, 구름 가운데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빛이 궤에서 나오고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이를 보고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친히 가서 궤를 열어보니 남자아이 하나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그 일로 인하여 ‘알지’라고 이름하니 이는 우리말로 어린이를 뜻한다. 이 아이를 안고 궁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고 기뻐하였다. 왕은 좋은 날을 받아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파사(婆裟)에게 왕위를 사양했다.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씨로 했다. <김알지 신화>
진한 땅에 여섯 개의 마을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여섯 마을의 시조들이 알천 언덕 위에 모여 의논을 하기를,
“우리들은 위로 임금이 없어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여 백성들이 제 맘대로 행하고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君主)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자.”고 하였다.
그때 남쪽 하늘에서 이상한 기운이 돌았다.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주위에 마치 번개 빛 같은 것이 땅에 어리더니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을 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붉은 알 하나가 있었다. 사람들이 오자, 말은 곧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쪼개어 보니, 얼굴이 아름답고 눈빛이 유난히 빛나는 어린 사내 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동천(東泉)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이었다. 이를 하늘에서 보내준 왕으로 생각하고 ‘혁거세왕’이라고 불렀다. 혁거세가 태어난 알의 모습이 ‘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성을 ‘박’가 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육촌을 다스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탄생되었다.
이 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이라는 연못가에 닭과 용의 중간 모습을 한 계룡(鷄龍)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후 계룡의 왼쪽 갈비뼈에서 여자 아이가 탄생했다. 얼굴이 유난히 아름답고 자태가 고왔으나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이에 여자 아이를 북천(北川)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박혁거세는 알영과 결혼하여 서라벌의 왕이 되었다. 서라벌은 후에 신라가 되었다. <박혁거세 신화>
<김알지 신화>에서 김알지는 흰 닭이 울고 있는 나무위의 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박혁거세 신화>에서 박혁거세는 알을 깨고 태어났으며,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닭과 용의 중간 모습을 한 계룡이 낳았다. 그리고 <가락국 건국신화>에서 김수로도 알을 깨고 탄생한다. 그러므로 탄생신화, 시조신화 등은 ‘닭과 알’이 중심적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주도 오름을 만들었다는 <선문대할망 신화>에서 세상 만물의 기원은 여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화에는 세상 만물의 기원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고, 세상 만물의 기원은 닭알과 여자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닭알과 여자는 스스로 원인이면서 결과인 존재가 된다.
오래 전에 김모 선생님이 나에게 절을 세우자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절 이름은 아불사(我佛寺)로 미리 정해 놓았다고 하였다. 나는 아불사라는 이름이 참 좋다고 생각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있는 절 이름으로는 길상사가 으뜸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이름이 아불사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아불은 ‘내가 부처’라는 말인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말의 의미는, 부정을 해보면 구체적 의미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부처’를 부정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부처’를 부정하면, (1)내가 아닌 당신이 부처, (2)내가 부처가 아님 등이 된다. (1)은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는 부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2)는 내가 부처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부처이거나 부처가 아닌 그냥 그런 존재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즉 (2)는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2)-1.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는 부처다. (2)-2.나는 부처가 아니라 그냥 그런 존재이다. 등이다.
여기서 (2)-2는 부처와 관계가 없으므로 제외를 하면, ‘내가 부처’의 부정은, ‘당신이 부처’이다.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는 당신이고, 당신은 스스로를 나라고 하니 결국 ‘나’와 ‘당신’은 모두 부처가 되는 셈이다. ‘내가 부처’를 부정하면 ‘당신이 부처’가 되고, ‘당신이 부처’를 부정하면 ‘내가 부처’가 된다. 그러므로 ‘내가 부처’는 ‘모든 존재는 부처’라는 말과 같다. 된소리로 말하지만 않는다면 ‘아불사’는 참으로 잘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떤 사람일까? 부처님은 태어나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셨다는데, 왜 탄생의 순간에 잘난 척을 하셨을까?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아집을 가장 큰 장애로 경계를 하는데 ‘나 홀로 존귀하다’는 것은 아집(我執)과 아상(我想)이 아닌가? 이것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내가 부처’는 ‘모든 존재는 부처’의 논리와 같이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존귀하다’는 말은 ‘나는 존귀하다’, ‘당신도 존귀하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존귀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우주의 모든 존재를 긍정하는 말이다. 불교는 이처럼 자아의 긍정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의 브라만교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만을 신앙하고 있었다. 브라만은 우주의 근원적인 존재이며, 나를 창조한 신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브라만교 신자는 절대진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범아일여(梵我一如)가 그것이다. 이것은 절대적 진리인 브라만이 나에게 강림하여 하나가 되는 경지인 것이다. 브라만교는 이처럼 세상의 긍정에서 시작하여 자아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불교와 브라만교는 시작점에서 생각이 서로 다르다. 불교는 자아로부터 시작하여 세계를 지향하며, 브라만교는 세계로부터 시작하여 자아를 지향한다. 이렇게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도 서로 다르다. 불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을 ‘자아’에서 찾는다. 그러나 브라만교는 자아에게 일어나는 일의 원인을 ‘세상’에서 찾는다.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면 불교 신자는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브라만교 신자는 ‘세상’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도 서로 다르다. 불교는 ‘나’를 수행의 대상으로 삼고, 브라만교는 ‘세상’에 대한 존경과 찬양을 의례화한다. 이처럼 시작점이 어딘가에 따라서 종교적 행위 양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이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이것은 활을 쏠 때, 조금만 흔들려도 멀리 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지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시작점을 찾으려 하고, 선후를 따지고, 인과 관계를 따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향점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중요한가 아니면 세상이 중요한가?” 학생들은 “내가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참으로 지혜로운 답이라 생각했다. “내가 중요하다.”는 말은 천상천하유아독존과 그 의미가 같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은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내부로 눈을 돌리게 하는 주문(呪文)이다. 내가 스스로 원인이니 내가 스스로 결과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