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수필)

전국 욕자랑 대회

by 묘길 조길상

자기기만 - 전국 욕자랑 대회

2008년 9월 25일 오후 6시 10분 퇴근길 학교 앞.

3학년 학생 3명이 교문밖으로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학생들을 불러서 조용히 말을 했다.
“얘들아, 어디 가니.”

학생들은 한 입처럼 말을 했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가는데요.”

그래서 내가 또 말을 했다.
“얘들아, 삐리리 삐리리리.”

길을 갈 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길을 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한다. 사람의 경험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나쁜 경험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어떤 어머니가 다섯 살 된 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딸은 만 원을 손에 들고 골목길을 나와서 큰길가에 있는 가게로 두부와 콩나물을 사러 갔다. 큰길가로 나와서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그 아이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얘야, 그렇게 큰돈을 남의 눈에 보이게 들고 다니면 위험하단다. 이 아저씨가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신문지에 싸 줄테니 조심해서 들고 가거라.” 어린 딸은 아저씨가 신문지에 싸 준 만 원을 들고 가게로 달려가서 두부와 콩나물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신문지 속에는 만 원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이처럼 남에게 기만을 당하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남에게 기만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남이 신문지에 돈을 싸 준다고 하면 거부하고 그냥 손에 들고 가면 될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기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쉽다.

태초에는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타인을 기만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기를 기만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를 기만하는 것은 교묘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타인기만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반성할 수 있지만 자기기만(自己欺瞞)은 숨기려는 의도가 강하므로, 반성할 수 없기에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까? 나는 얼마 전 자기기만의 무서움을 경험했다.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온몸으로 세계와 만나는 느낌이다. 이렇게 세상과 하나가 되어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라서 급하게 길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가는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승용차를 운전하던 아주머니가 신경질적으로 빠빠빠빵하면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자전거로 승용차를 잡을 수는 없는 일이라 하릴없이 화와 내가 하나가 되어 자전거를 몰았다.

조심조심 계속 길을 따라서 달렸다. 화를 길에 뿌리면서. 그런데 저 앞을 보니 빵빵아주머니의 차가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길에 뿌린 화를 다시 주워서 다리로 보내고, 힘차게 달려서 빵빵아주머니의 차 옆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빵빵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삐리리 삐리리 삐삐리리.” 이렇게 욕을 하고 나니 참으로 시원했다. 그 순간 나는 진리를 깨달았다. ‘아, 나는 그 동안 너무 욕을 하지 않고 살았구나.’, ‘욕을 하고 싶은데도 욕을 하지 않고 잘난 척 했구나.’, ‘나는 나를 기만하고 있었구나.’, ‘나는 나의 감정을 속이지 말고 감정에 충실해야겠구나.’ 등의 생각을 했다. 타인기만만 기만이라 생각을 했는데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고상한 척, 잘난 척, 착한 척 이렇게 나는 척척척하면서 표리부동한 삶을 살았구나. 이제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싶다는 것. 이것이 문제다.

심각한 문제다. 나를 억누르면서 착한 척하는 자기기만을 할 수도 없고, 자기기만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도 없다. 도덕군자인 척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니 할 수도 없고, 도덕을 내팽개치고 몰상식한 인간이 되는 것도 할 수가 없다. 기분이 나쁜데 욕을 안 하는 것은 나를 속이는 것이고, 기분이 나쁘다고 욕을 하면 몰상식한 인간이 되어버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기만은 ‘생각1과 생각2’가 서로 어긋날 때 또는 ‘생각3과 행위’가 서로 어긋날 때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 아닐까? 생각1은 ‘기분이 나쁘다.’ 생각2는 ‘욕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생각1과 생각2가 충돌을 일으키고. 또는 생각3은 ‘기분이 나쁘다.’ 행동은 ‘웃는다.’ 그래서 생각3과 행동의 괴리로 기만의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런데 ‘생각1과 생각2와 생각3’은 나의 생각일 따름이다. 나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나는 간혹 ‘일본 열도가 침몰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나쁜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면 큰일이 나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이처럼 나의 생각은 나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쁜 생각을 하면 ‘나’가 스스로 나쁜 것이고, 좋은 생각을 하면 ‘나’가 스스로 좋은 것이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생각을 행동으로 드러낼 때는 사회적 건전성과 사회적 도덕성을 확보해야 한다. 생각을 행동으로 드러낼 때는, ‘나를 속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과 내 마음대로 하여도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는 것’을 가려서 하면 되지 않을까? 기분이 나쁘지 않게 욕을 하거나 욕이 아닌 욕을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기. 하면서 안 하기와 안 하면서 하기의 방법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도덕적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라디오에서, 전국욕자랑대회를 개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0여 년 전에 전라도에서 한 번만 개최되고 대회가 지속되지 못했다고 한다. 욕이 자랑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욕자랑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나도 수업시간에 욕의 의미와 욕의 기능을 정리하고 욕장학생을 선발한 적이 있다. 1분 동안 가장 많은 욕을 칠판에 적은 학생이 욕장학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욕장학생에게 잘 했다고 칭찬을 해야 할까? 욕을 잘 하는 것도 잘 하는 것일까?

문제, 교문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한 말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