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돌덩이
참 이해 안 되네! - 증오의 돌덩이
2016년 5월 8교시 이동 보충수업시간, 4, 5, 6반 학생들이 국어 보충수업을 위해 4반에 모였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수업이 힘들어진다. 나도 힘들고 아이들도 지치고. 그래서 수업 분위기를 시원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썰렁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그래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5반 다영이를 복도로 불러내었다. 그리고 다영이에게 화가 난 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연기를 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긴장감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다영이는 복도에서 3분쯤 있다가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면서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화가 난 표정으로 수업을 들었다. 간혹 책상에 엎드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다영이는 연기를 잘 했지만 날씨가 너무 덥고 아이들의 집중력이 너무나 떨어져서 다영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이 적었다. 그래서 긴장감이 있는 수업이 되지는 못했다.
다음날 다영이가 나에게 와서 다시 한 번 더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래서 5반 국어 시간에 다영이를 다시 복도로 불러내어 연기를 하라고 했다. 다영이는 연기를 아주 잘 했다. 교실 뒷문을 소리가 나게 닫고, 자리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책상위에 엎드려 있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영이 왜 그래. 공부 안 하고 왜 엎드려 있는 거야.” 그리고 다영이 짝지에게도 일부러 물어 보았다. “다영이에게 무슨 일이 있니.” 다영이 짝지는 정색을 하면서 모른다고 했다. 다영이 짝지의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니 교실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수업을 마쳤고, 쉬는 시간에 다영이가 짝지에게 연출이었다는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영이 짝지의 심각함은 해소되었을 것이다. 다영이 짝지는 사실과 진실을 확인하고 심각한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다영이 짝지는 참으로 착하다. 짝지를 걱정해주는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다.(착한, 다영이 짝지 미안해요.)
위의 사례처럼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심각해지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근심하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국어 시간에 시를 가르칠 때에도, 시의 내용을 잘 이해를 시켜야 학생들은 정서적 반응을 하게 된다. 이처럼 이해가 있고 다음에 정서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사람의 심리 작동 구조인 것 같다. 그러므로 사람 사이의 부정적 감정이 있는 경우에는 부정적 감정만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짜증, 미움, 증오, 화 등 마음속에 돌덩어리처럼 자리 잡고 있는 딱딱한 느낌은 아무리 버리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는 이유는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이해가 안 된다.’
‘어이구! 짜증나!’
‘아무래도 성격이 차이가 있나보다.’
‘포기하자. 이제는 만나지 말자.’
이렇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렇게 사람의 부정적 정서는, ‘이해가 안 됨 → 답답함과 짜증 → 화 → 미움과 증오의 돌덩이가 마음을 무겁게 함’ 등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지성과 감성은 이렇게 복잡하고 미묘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람은 부정적 정서를 가지고 있을 때, 증오의 돌덩이를 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증오를 버리기가 어려운 이유는, 감정만 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잘 버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의 원인은 ‘이해가 안 됨’이다. 그러므로 이해가 되면 부정적 감정도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이해는 먼저 자기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서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인간은 조건의존적인 존재이며,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존재이며, 변화하는 존재이며, 자기 생각에 집착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응무소주이생기심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다영이 친구는 해석의 오류로 한 시간 동안 심각한 정서적 상황 속에 있었다. 이처럼 사람은 해석의 오류(오해)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남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남이 나의 돌덩이를 치워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이 나의 증오의 돌덩이를 치울 수는 없다. 나의 돌덩이는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이해시킬 수 있지만 남은 나를 이해시킬 수 없다. 이해를 하고, 이해를 안 하고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증오의 돌덩이는 나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버리면 된다. 그런데 증오를 버리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내가 나를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시키는 방법 중에 역지사지가 있다. 입장을 바꾸어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그리고 용서가 되면서 부정적 감정이 정화될 것이다. 그리고 해석의 오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사실과 진실을 확인하는 진리탐구의 태도를 가지면 오류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맑은 물 붓기(독서, 좋은 생각 담기)를 하면 부정적 감정이 정화될 것이다. 수적천석(水滴穿石).
불교에서는 자비(감성 정서 감정)와 광명(지성 지혜 이해)을 함께 말하고 있으며, 많은 종교에서 진리(지성 지혜 이해)와 사랑(감성 정서 감정)을 함께 말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세상은 왜 이렇게 무자비한가?’를 고민하고, 무자비에서 벗어나 어떻게 자비로 옮겨 갈 것인가 고민했다. 깊은 명상의 결과 무자비한 이유는 인과법을 모르는 무명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 보았다. 인과법은, 서로서로 조건지워져서 생멸변천하고 천류(遷流)하는 일체법의 연기적 흐름이다. 그러므로 불교인의 수행은 인과를 아는 것에 집중된다. 모든 인과의 출발점은 자신이다. 그래서 자신을 대상으로 계정혜(戒定慧)를 수행한다. 이렇게 수행한 결과는 자비의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 공부를 거창한 깨달음에 두는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불교 공부를 하는 이유는 그냥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태생적으로 자비로운 사람은 불교 공부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문제. 위의 글을 읽고, 마음 속 돌덩이를 제거하는 구체적 방법을 서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