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파 제국 연대기(소설)

2. 물질의 늪으로 추락하다

by 묘길 조길상

칼파 제국 연대기

2. 물질의 늪으로 추락하다


우주의 수축이 멈추고 거대한 팽창이 시작되던 에오스[Eos, 새벽의 여신] 시대. 순수한 의식의 차원인 광음천에서 로자, 가모, 사나는 빛의 파동으로 존재했다. 그들에게 육체란 거추장스러운 껍질에 불과했다. 기쁨을 양분 삼아 스스로 항성처럼 빛나던 그들은 우주의 팽창과 함께 행성 테라(Terra)의 인력에 이끌려 내려왔다. 우주가 팽창하며 물리적인 차원의 행성들이 생겨나자, 수명이 다한 의식체들이 하나둘 아래 차원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로자와 가모, 사나 역시 중력에 이끌려 푸른 물로 덮인 테라에 내려왔다.
"여긴 너무 어두워. 태양도, 달도 없잖아."
사나가 투덜거렸다.

당시 우주는 칠흑같은 암흑이었고, 모든 존재들은 서로를 오직 광채로만 식별했다. 태양도 달도 없었지만, 그들은 스스로 내뿜는 광채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사나의 호기심 때문에 균열이 갔다. 사나가 지표면에 흐르는 엷은 막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았다. 그것은 우주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달콤한 땅(Terra-Sweet)'이었다.

"이건, 기쁨보다 더 강렬한 자극이야!"

사나의 눈이 번뜩였다. 로자와 가모도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그 물질을 삼켰다. 그 순간, 그들의 몸속에서 치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순수한 빛이었던 몸이 탁해지더니 무거운 질량을 가진 육체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들이 빛을 잃자 역설적으로 하늘에 태양과 달이 나타났다. 스스로 빛나지 못하게 된 자들이 외부의 빛에 의존하게 된 첫날이었다.

로자와 가모, 사나가 지표면에 흐르는 우유 막처럼 생긴 엷은 막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본 순간, 억겁의 세월 동안 잊었던 갈망의 회로가 깨어나게 된 것이다. 로자와 가모도 땅을 먹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건, 환희와는 다른, 혀끝을 마비시키는 자극이야!“

로자와 가모, 사나의 탐욕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의 투명한 의식체는 무거운 질량을 가진 육신으로 굳어졌고, 몸 안의 빛은 꺼져버렸다. 우주를 헤엄치던 그들은 이제 땅에 붙어서 걸어다니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었고 태양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막강한 능력도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그들이 빛을 잃자 하늘에는 태양과 달이 떠올랐다. 태양과 달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게 된 자들을 위한 우주의 배려였고, 긴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빛이기도 했다. 이렇게 우주는 팽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