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파 제국 연대기(소설)

4. 엔트로피의 역습

by 묘길 조길상

칼파제국연대기

4. 엔트로피의 역습


수천수만 년이 흘러 수명이 다한 로자 황제는 죽기 전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 "제국의 부는 혈관의 피와 같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흐르지 않고 고이면 그 사회는 괴사한다." "연민(憐憫)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8대 황제에 이르러 이 황금률은 깨졌다.

새로운 황제는 로자가 남긴 법전 대신 자신의 직관과 욕망으로 제국을 다스렸다. 그는 화려한 궁전을 짓기 위해 자원을 독점했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분 시스템인 '복지 프로토콜'을 중단시켰다.

제국에 처음으로 '빈곤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분배가 막혔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몰린 자들은 생존을 위해 타인의 쌀을 훔치기 시작했다.

절도가 빈번해지자 황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강력한 형벌을 도입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남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농기구를 개조해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쌀 한 톨을 두고 벌어진 다툼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살생과 분노, 거짓말이 사회적 상식이 되자 인류의 생체 리듬에 이상이 생겼다. 광음천의 순수한 에너지를 기억하던 세포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악한 감정에 노출되자 텔로미어가 급격히 짧아지기 시작했다. 악한 감정이 텔로미어에 독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인류의 수명이 8만 4천 살이었을 때 인간의 세포는 재생이 완벽했었다. 상처가 생기면 금방 아물었고 소화가 완벽하여 방귀가 향기로웠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면서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질병이 창궐하였다. 사람들의 악한 감정은 독한 방귀로 배출되었고, 독한 방귀로 인해 인류의 수명은 절반씩 감소하였다.
로자 황제의 절친이었던 사나의 후예는 이 과정을 보며 절규했다.

"우리의 육체가 마음의 독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어!"

하지만 이미 권력의 맛을 본 ‘가모의 후예’들은 ‘사나 후예’의 경고를 무시하고 더 날카로운 칼을 갈았다.
수천수만 년에 걸친 하락 끝에, 칼파 제국은 완전히 붕괴했다. 한때 찬란했던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고, 인류의 수명은 고작 10살이었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5살에 아이를 낳고, 10살이면 노인이 되어 죽었다. 그들에게 도덕이란 사치였다.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서로를 보면 마치 사냥감을 본 짐승처럼 살의를 느꼈다.

로자가 세운 칼파 제국은 수천수만 년간 태평성대를 누렸었다. 하지만 완벽해 보였던 시스템도 로자라는 거인의 죽음과 함께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로자의 정신 대신 그의 권력만을 탐냈던 후계자들의 통치가 시작되자, 인류의 수명을 갉아먹는 '엔트로피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제국의 몰락에는 정해진 공식이 있었다. 첫째, 제국이 비대해지면 관료 조직과 군대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거나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다. 둘째,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귀족층은 타락하고,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기면서 하층민의 불만이 폭발한다. 이는 민란이나 혁명으로 이어지며 제국의 통합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셋째,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고 견제 장치가 사라지면서 의사결정 시스템이 망가진다. 특히 무능한 지도자의 등장은 멸망의 가속 페달이 된다. 넷째, 내부적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이민족의 침입, 자연재해, 혹은 전염병 같은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다섯째, 탐욕이 마음을 지배하고, 배타적 이기심이 극대화되고 각자도생의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중에서 ‘탐욕과 배타적 이기심’은 제국 몰락의 결정적 사유로 작용하였다.

로자의 사후, 탐욕스럽고 무능한 후계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외면했다. 빈곤은 분노를 낳았고, 분노는 살생을 불렀다. 인류의 영적 타락은 생물학적 붕괴로 이어졌다. 8만 4천 살을 살던 수명은 4만 살, 2만 살, 100살, 40살, 20살 이렇게 세대마다 반토막이 났고, 마침내 인류의 수명이 고작 10살에 불과한 대재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탐욕은 진화했다. 8만 4천 살을 살던 인류의 수명은 도덕적 타락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마침내 인류의 수명이 고작 10 살에 불과한 암흑시대가 찾아왔다. 5살에 아이를 낳고, 서로를 사냥감처럼 죽이는 짐승의 시대. 5살에 부모가 되고 10살에 노인이 되어 죽는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짐승처럼 사냥했다. 사나의 먼 후예들은 피비린내를 피해 깊은 숲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동굴 벽에 로자의 법전을 새기며 울었다.

"제국의 부는 혈관의 피와 같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흐르지 않고 고이면 그 사회는 괴사한다." "연민(憐憫)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