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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정 Feb 11. 2024

'간이역' 역사 교사가 사랑하는 문장들 #17

"하루는 반성문 쓰고 다음 날 계획표 쓰는 게 인생이랬나." - 은유

  연휴가 끝나갑니다.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이었던 시절을 학생으로 보낸 저에게 '떠나라!'라는 문장이 설렐 수 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교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은 매주 돌아오는 주말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고, 가끔 찾아오는 학교장 재량 휴업일, 무엇보다 돌아오는 방학식이 언제인지를 먼저 찾아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교사도 기다리는 그런 날들이 있답니다. 1월 초에 졸업식과 방학식을 거쳐 아직 '41조 연수' 기간을 보내고 있지만 휴식의 달콤함을 누리는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연휴가 끝나간다는 말 속에 담긴 여러가지 마음들에 작게나마 공감을 하게 됩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2월이면 교사들은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새로 발령 받은 학교에 방문하고, 새롭게 맡게 될 업무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고, 새 학년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을 부지런하게 밟아야 한 해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기에 남은 방학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존에 자신이 맡았던 업무를 이어간다면 보강하려 하고, 새로운 업무를 맡는다면 공부하고, 담당 학년이 달라지거나 교과가 달라지면 새로운 자료를 준비합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에 꽤나 여러가지 일들을 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휴식까지 챙기려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는 선생님들이 참 많습니다. 

  교사들도 이럴진데 새 학년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바쁠까요?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가고,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요. 그 사이에 친구들과 방학을 즐기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학기 중에 즐기지 못했던 여가를 누리기도 해야지요. 가끔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긴 합니다. 가르친 아이들 중에는 방학을 이용해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 한다며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더군요. 아이들이 마냥 방학을 생각 없이 보내거나 허송세월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도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방학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다보니 생긴 시선이고 관점이라 때론 부끄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든 아이들의 방학은 참으로 바쁠 것 같습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학부모님들은 또 얼마나 바쁘실까요? 아이가 등교를 하면 점심 식사는 급식이라도 나오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오는데... 방학을 하면 아마 하루 온종일 집에 있거나 학원 또는 독서실, 스카(스터디 카페)에 갔다오면 학부모님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낼 테니 말이죠.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들과 추억 쌓기 만큼 행복한 것도 없습니다만, 학부모님도 학부모님 나름대로의 일과 취미와 휴식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저 학부모님들께 방학동안, 앞으로 제가 가르치고 만날 아이들을 잘 키워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참 바쁘게 휴식의 시간을 보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오더군요. 내가 이 방학을 '잘' 보냈는가? 방학을 '잘' 보냈다는 건 무엇일까? 어느새 10회가 넘는 방학들이 제 교직 생활에서 지나갔는데 매번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던 것 같습니다. 천성이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달려드는 성격도 아니고, 마냥 한량처럼 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이도저도 아니게 살진 않았나 싶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책은 좀 더 읽었고, 공부는 조금 더... 했어야 했고, 좋아하는 헬스는 실컷, 땀나게, 열정적으로 했고, 수업 준비는 꾸준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해왔던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는 방학을 방학답게 보낸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다시 새 시작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니 '나'로서는 어땠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열심히 주어진 것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 하다가 마주하는 휴식의 시간이 달콤한 것은 이전의 고단함과 피로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그 고단함과 피로를 마주해야 하는 게 참 그렇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와야 할 시간이고, 우리는 출발선에 서야 하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쩌겠습니까, 그냥 해야죠.'라는 말들이 응원 아닌 응원처럼 느껴져 숨을 들이 마시고 반성문과 계획표를 써봅니다. 출발선에 서기 전에 이전 레이스는 어땠는지, 이전의 생활 방식은 어땠는지, 좀 전에 내가 했던 실수는 무엇인지, 엊그제 내가 까먹었던 건 무엇이었는지, 연휴 전에 내가 그토록 누리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등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거창한 것에 이르기까지 생각해봅니다.

  지난 날을 잠시, 달달한 맛만 느낄 정도로만 곱씹어야겠습니다. 반성문도 너무 길게 쓰고 자주 쓰면 반성이 안 되더군요. 이젠 계획표 하나 그럴듯하게 짜서 계획에 충실하도록 노력할 저에게 응원을 해주려 합니다. 돌아올 방학 때 쓸 반성문에 '그래도 애썼다'고 칭찬해줄 저를 상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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