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 오빠가 남긴 선물. 호스피스에서 얻은 생의 찬미
나의 일은 봉사를 하기에 참 좋은 직업이다.
내가 가진 재능을 오롯이 타인을 위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 주 화요일,
나는 미용실 문을 잠시 닫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한다.
그곳은
암 말기 환자분들이 머무는 곳이다.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보다는
남은 시간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통증 완화 중심의 치료를 하는 곳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그분들을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코로나로 봉사가 멈춘 뒤에도
한동안 다시 시작하지 못해
늘 마음속에
무거운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첫인상은
의외로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 중증 병동보다 훨씬 차분하고
평온했다
생의 끝자락에 선 분들임에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어두운 표정을 짓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침대에 누운 채
머리를 잘라드려야 하기에
정교한 디자인은 어렵다.
특히 누워 계신 분의 목덜미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나름 27년 경력의 내게도 매번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도 높은 디자인보다
최대한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드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커트가 끝나면
“수고하셨다”, “꼭 필요했다”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분들의 눈동자에서 희망을 본다.
어떤 분은 책을 읽고 계시고,
어떤 분은 커트 비용을 주시기도 한다.
물론 나는 보호자분께 다시 돌려드리지만
그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분들은 그곳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은
우울하지 않냐며 걱정하지만,
나는 오히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무것도 해 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스스로 한심해질 때도 있지만
그곳에 다녀오면
이상하게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내 커트가
이분들의 생애 마지막 이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보잘것없는 기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그저 뿌듯할 뿐이다.
사실 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토록 정성을 쏟는 데에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54살,
너무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떠난
친정오빠 때문이다.
입관식 때 마주한 오빠의 모습은
살아생전의 깔끔하고 젊던 모습이 아니었다.
짧게 깎인 머리가
어찌나 초라하고 늙어 보이 던 지,
마치 모르는 할아버지를
마주한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가위를 든다.
살아 계실 때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먼 길 떠나시는 마지막 모습만큼은
절대 초라해 보이지 않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어느 날은
스물여섯 살 청년의 머리를 깎아야 했다.
직장암이다.
이제 막
공부에서 벗어나
힘든 군대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멋도 부리고
재밌게 놀아야 할 나이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잘생긴 얼굴에
양쪽 귀에 작은 링 귀걸이를 한
멋쟁이 청년이었다.
베개 옆에서는
휴대폰으로 가스펠송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어떤 의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스물여섯.
인생의 경험이 얼마나 있었을까.
군대 가기 전까지는
새벽까지 공부만 했을 것이고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군대도 다녀왔을 것이다.
재밌는 경험을
얼마나 해보았을까.
사실 나를 포함한
나이 든 사람들에게
머리를 자르는 일은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청년에게는
어쩌면 작은 설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못 한 채
시간이 꽤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커트 봉사자가 왔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침대 시트도 올리지 못한 채
누워서 커트를 해야 했다.
가위를 대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자
그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게 뭐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
설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머리 자르고 싶어 했는데 드디어 자르네.”
하고 말을 건네자
청년이 말했다.
“엄마, 말 걸지 마세요.
나 지금 너무 기분 좋아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픈 말이다.
스물여섯.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나이다.
죽어라 공부하고
군 복무를 마친 것이
인생의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한 달 뒤
다시 방문했을 때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청년의 안부를 물었다.
내가 오는
그날 새벽
이미 소풍을 떠났다고 했다.
64세 여성분을 커트해 드렸던 날도 기억한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셨는지
머리는 길고
숱은 많이 빠져 있었다.
디자인 커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단정하게 길이만 맞춰
정리해 드렸다.
사실
더 예쁘게 잘라드리고 싶었지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그게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보호자인 남편분은
무척 기뻐하셨다.
정작 아내분은
잠들어 계셔서
아무것도 모르시는데도
남편분은
“여보, 시원하지?
아주 깔끔해졌어.
이제 당신 다시 강의하러 가도 되겠어.”
그 자상한 한마디에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분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자식을 키우고
살림까지 하며
열심히 살아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 역시
다음 달에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는 배운다.
인생에는
‘나중’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즐겨야지’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도.
바쁘고
여유가 없더라도
틈틈이 즐기고,
건강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려야 한다.
요즘은
길가의 풀 한 포기도 더 예뻐 보이고,
사소한 말들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죽음이 가까운 분들을
보고 오면
지금 내가 숨 쉬며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아마
봉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천년만년 살 것처럼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이 길을 갈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 커트를 위해.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힘을 얻기 위해…
나를 이 길로
인도해 준 (친정)오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주연 오빠,
이건 오빠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야.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의미 있게 살아볼게.
하늘에서 지켜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