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면 충분했던 불꽃놀이
오픈 3년 차,
가게가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부터
예약 전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위질하랴 전화받으랴’
이 날벼락같은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강남 일대에서 아우디도 공동구매한다는,
영향력 막강한 지역 맘카페에 내 가게가 소개된 것이다.
실제로 그곳을 통해 오신 손님들 덕분에
에르메스부터 온갖 명품 백을
원 없이 구경하긴 했다.
소문은 날개를 달았고,
예약은 순식간에 한 달 뒤까지 꽉 들어찼다.
단골들은 “이게 무슨 난리냐”며
불편을 호소했고,
나를 믿고 진심으로 추천해 준
고객 덕분에 얻은 기적 같은 기회였음에도
오롯이 즐기지 못했다.
기쁨보다
무거운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차라리 물건을 파는 일이었다면 덜했을까.
단골들은 모질도’
취향도’
예민한 지점도 훤히 알지만,
처음 온 손님은 백지상태다.
같은 커트라도 결이 다르고
손상도가 다르며
원하는 바가 다르다.
상담은 길어지고
집중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매일 온 힘을 쏟고 쏟아붓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두통약을 사탕처럼 먹고 있었다.
작고 낡은 골목 안 가게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건 분명 영광이었으나,
그 영광은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였다.
수많은 찬사 속에 섞인
“짧게 잘라놨다”,
“숱을 너무 많이 처놨다”는
날 선 후기 하나에
내 마음은 갈대 속에
처참히 무너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심한 말도 아니었건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 여린 새싹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수록
가위는 길을 잃었고,
나는 점점 나답지 않게 변해갔다.
그 이후로
나는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지 않는다.
예민한 글들에 마음을 앓기 시작하면
결국 나만의 색깔을 잃어버린다는 걸 알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최고의 미용사와
최악의 미용사를 오가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결국 나는
손님들께 조심스럽게 부탁을 시작했다.
“후기 안 남겨주셔도 돼요~.
소개 안 해주셔도 됩니다.
다만,
혹시라도 저의 대해 안 좋은 글이 올라오면
그때만 슬쩍 제 편이 되어주세요.”
모두가 자신을 알리려 애쓰는 마케팅 시대에
나는 오히려
조용히 내 속도대로 일하고 싶다고 외쳤다.
온라인 세상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 같았다.
행복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내 그릇은 아직 작았다.
그렇게
밀물처럼 몰려왔던 시간은
어느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가게는
다시 잔잔해졌다.
하지만
거친 파도는
내 실력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과분한 사랑도 남겨주었다.
그 넘치는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곁을 지켜주는 단골들이 많다.
생각해 보면
그 맘카페는 나를 시험한 곳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든 용광로였다.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그 추천 글은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뜨거운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화려한 명예의 전당보다
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혹시라도 그 시절
나의 미숙함으로
마음 상하신 분이 있다면
이제야 조용히 사과를 전하고 싶다.
거창한 수식어보다
단골손님의 다정한 안부가 들리는 이 일상이 좋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만의 색으로 가위를 들 수 있는
이 작은 공간이,
이제는
나의 온전한 우주다.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라고 했던가.
그 시절은
내게 추억이었고,
경험이었으며
찬란한 성장이었다.
그래서, 한 번이면 충분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심장 어딘가에 뜨겁게 살아있다.
아시나요.
저 이래 봬도, 한때 명예의 전당에 올랐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