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을 오래 하다 보면
기술만 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법,
할 말을 삼키는 법,
그리고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결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어떤 날은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지만,
어떤 날은 실수의 연속에 기분이 바닥까지 추락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최선을 다해드리고도 마음이 상하곤 한다.
한 번은
예약 시간보다 손님을 딱 5분 정도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다.
앞 손님의 시술이 예상보다 조금 길어졌기 때문이다.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손님을 안내했다.
평소처럼 커트보를 둘러 드리려던 순간이었다.
손님이 갑자기 커트보를 휙 집어던지며 고함을 쳤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예약을 하고 옵니까!”
그토록 오래 뵈어 왔으면서
그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5분 정도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귀한 시간을 가볍게 여겼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웠다.
그분은 도곡동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대기업
사모님으로,
2-3일에 한 번씩 꾸준히 드라이를 하러 오시던
분이었다.
당시엔 솔직히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5분 정도는 이해해 주셔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5분이 아니라 1분 1초가 금 같은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사모님을 다시 뵙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남겨 준 경영 철학은 분명했다.
‘시간 엄수’라는 네 글자다.
가끔 손님들은 말한다.
“커트 10분이면 충분하지 않아요?”
“조금 빨리 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성수기가 아니면
시간을 조금 버리더라도
예약 간격을 넉넉히 잡는 습관이 생겼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고객의 시간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시간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잃고 싶지 않다.
내가 ‘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가 된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다.
나는 무조건 예약제만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나가다 들르셨어도 시간이 비어 있으면 당연히
머리를 해 드린다.
예약제 역시 내가 일부러 만든 시스템이 아니라
손님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전성기 때는
앞머리만 자르려 해도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시간이 꽉 차 있었다.
그날은 예약 손님이 오기 딱 10분 전이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럼 앞머리라도 잘라주세요.”
그 말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의자에 앉혀 드렸다.
정말 앞머리만 자를 줄 알았다.
하지만 커트가 시작되자 손님의 말이 달라졌다.
“뒤도 조금만요”,
“옆도 조금만 정리해 주세요.”
결국 전체 커트에 샴푸까지 하게 되었고,
정작 약속을 지켜 오신 다음 손님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날의 일정은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약속을 지킨 손님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았다.
그날 이후
나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시간이 애매할 때는 절대 손님을 받지 않는다.
차라리 새로운 손님 한 명을 서운하게 만드는 편이 낫다.
기존 고객의 신뢰를 잃는 것보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급하게 하면
앞 손님도 놓치고,
뒤 손님도 놓치고,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까지 놓치게 된다는 것을.
미용실은 머리를 하는 곳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시간’을 다루는 곳이다.
내 성향은 급하게 먹으면 반드시 체하는 쪽이다.
누군가는 약속을 미루고,
누군가는 바쁜 일정을 쪼개어,
누군가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이 의자에 앉는다.
그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도리다.
기술은 세월이 쌓이면 따라오지만,
사람의 시간은 다시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금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원칙을 지킨다.
대단한 경영 철학은 없다.
시간에 충실하고,
약속에 충실하고,
나의 색깔이 탁해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뿐이다.
나의 고유 색을 잃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다.
소신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