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블랑이

"이제 엄마 괜찮지?"

by 서초동 김원장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던 내가
어쩌다 보니 네 마리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2015년 4월
네 살이던 블랑이가 우리 집에 왔다.

먼저 와 있던 노엘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고양이 카페를 통해 인연이 닿은 아이였다.

신혼부부의 집에서 사랑받던 아이는
그렇게 내게 와 10년의 세월을 함께했고,

2025년 10월 31일 밤 12시 9분
고양이 별로 떠났다.

이미 8개월 전, 한 차례 고비가 있었다.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지만,
블랑이는 기적처럼 회복해 다시 살아났다.

그 후 몸무게는 많이 줄었고,
치매 증상도 조금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먹고, 잘 놀았다.

‘잘 먹으면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믿으며
나는 몇 년은 더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습식 사료를 나누고 있는데,
블랑이가 평소보다 더 유난히 보채며 빨리 달라고 했다.

촐싹거리는 녀석의 엉덩이를
“좀 기다려!”하고 장난스럽게 팡팡 쳤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막상 밥을 주자
허겁지겁 먹던 아이가
갑자기 ‘켁’ 소리를 내며 멈췄다.

먹고 싶은데
목으로 내려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미용실에서 생활할 준비를 했다.
돗자리를 사고, 집에서 담요를 가져왔다.

블랑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도
여러 번 문 앞에 가서 울었다.

밖에 나가 풀 냄새를 맡고 싶다는 뜻이었다.

힘이 없어 풀을 뜯지도 못했지만,
냄새라도 마음껏 맡으라고
몇 번이고 아이를 안아 풀숲에 내려놓았다.

그날 오후,
블랑이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주 예쁜 맛동산 하나를 남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나를 향한 마지막 흔적이자 인사였다.

밤이 깊어지자
블랑이는
눈을 뜬 채
초점 없이 잠들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건지
잠든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영업이 끝나고
나는 가게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곁에 누워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거의 움직이지 못하던 아이가
힘겹게 내 쪽으로 걸어오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안쓰러워서
얼른 품에 안아 팔베개를 해주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행여나 추울까 봐
히터도 30도까지 올렸다.
10월의 밤이 추워야 얼마나 춥겠냐마는,
그때의 나는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계속 쓰다듬으며 기도를 했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거라.

그동안 못 해줘서 미안해.

엄마는 너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단다."

그렇게 기도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때였다.

갑자기
목에 무언가 걸린 듯

큭, 큭.

두 번의 작은 소리를 내더니
팔. 다리가 스르르 풀렸다.

밤 12시 9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호흡 한 번 가빠지지 않은 채,
정말 잠들 듯 떠났다.

너무나 순식간이라
이게 이별인지도 몰랐다.

한참을 더 안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서서히 굳어가는 아이의 몸을 느끼며
그제야 남은 세 마리에게 작별 인사를 시키고
나도 이별을 받아들였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블랑이가 평소 풀을 뜯던 자리,
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아래 아이를 묻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출근하면 세 마리가 반겨주지만,
매장 안은 여전히 텅 빈 느낌이다.

유난히 수다스럽게 소리를 내며
꼬리를 세우고
내 다리를 비비며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그 온기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자꾸만
살갑지 못했던 나를 자책하게 된다.

그냥 모든 게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만 든다.

2025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긴 해였다.

2월에는 친정 오라버니를
폐암으로 먼저 보내며 혼자 장례를 치러야 했고,

5월에는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16년 하던 가게를 옮겨야 했고,

8월에는 살던 집까지 이사를 해야 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숨 돌릴 틈 없는 태풍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월에 떠난 오라버니의 보살핌이었을까.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해졌다.

이전한 가게는 매출이 올랐고,
단골들도 변함없이 찾아주었다

정신과 상담까지 고민하던 나는
어느새 다시 웃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고
내가 비로소 안정을 찾았을 때,
블랑이는 기다렸다는 듯 떠났다.
이제 엄마가 살만하니 안심하고 간 것이다.

사람을 보내고,
터전을 옮기고,
또 하나의 가족을 보내야 했던 시간.
숨 돌릴 틈이 없이
계속 이별과 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오고 나니

마음이 더 고요해졌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조용히 살아간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남은 세 마리 아이들을 쓰다듬고,
손님들의 머리를 정성껏 자르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정리한다.

평범한 하루가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블랑이는
마지막까지 나를 배려하고 떠났다.

내가 조금은 안정되고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조용히
아무 고통도 없이 잠들 듯 떠났다.

마치

“이제 엄마 괜찮지?”
라고 묻고 가는 것처럼.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래서 더 고맙다.

요즘은
남은 아이들을 더 자주 안아 준다.

궁둥이도 더 팡팡 해 주고,
풀 냄새도 더 맡게 해주고,
이름도 더 많이 불러 준다.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다.

10년 넘게 집사로 살며
배운 것이 있다.

동물을 좋아해서 키우는 것도 아니고,
싫어해서 못 키우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인연이 닿아야 함께 산다.

블랑이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전보다
더 따뜻해졌고,
삶을 더 아끼게 되었다.

아마도

그 아이가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배롱나무 아래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풀 냄새를 맡으며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을 거라고,

잘 가, 블랑아.

엄마 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다음 생에서도
길을 잃지 말고
꼭 다시 엄마를 찾아오렴.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이 안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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