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며 만난 운명들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세례명은 아가다.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선생님 덕분에
어느 날 명리학 어플 하나를 깔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처음으로 내 사주팔자의 글자를 들여다보게 됐다.
년. 월. 일. 시
기둥은 네 개, 글자는 여덟 개라 해서 사주팔자라고
부른다.
목. 화. 토. 금. 수
오행이 주인공이고
이 다섯 가지의 조화로 한 사람의 기질과 흐름을
읽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다섯 중 두 개가 없었다.
보통 하나쯤은 비어 있다는데
나는 두 개나 없다니.
그래서 인생이 이렇게 롤러코스터인가 싶었다.
그렇게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에게 생년월일을 묻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괜찮다면 말이다.
그렇게 3~4개월이 흐르자
나만의 데이터가 쌓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주 분명한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나의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없는 게 많았고,
손님들은 그걸 다 가지고 계셨다.
반대로 손님들이 필요로 하는 건
신기하게도 나에게 다 있었다.
두 번째
내 사주에는 '귀인'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오행은 세 개뿐인데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배치된 사주라고 했다.
누가 봐도
내가 손님들 덕에 먹고사는 인생인데
명리학에서는
내가 그분들의 '귀인'이라고 한다.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내가 월급을 주니
당연히 그분이 내 덕을 본 것 같지만,
그분이 나의 '귀인'이었다.
그래서였나보다.
수많은 미용실이 있음에도
안암동에서 서초동까지,
만 7년을 단 한 번의 지각과 결근 없이
내 곁을 지켜주셨던 이유가.
심지어
절친들끼리 서로 귀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조차
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어쩐지,
아프다가도 가게만 오면 체력이 살아나고,
스트레스를 안고 와도
일을 시작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이상하게도
나는 일을 할 때 가장 편안하다.
이런 관계를 두고
서로 부족한 걸 채워주고
서로를 살게 하는 관계라면,
그게 바로
'궁합이 좋다'는 말 아닐까.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우울하고,
예민한데
거기다 오지랖까지 풀장착인지.
맹신할 수는 없지만
기질이라는 건
타고나는 게 맞는 것 같다.
대신
그게 단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소심함은 완벽함으로
예민함은 센스와 섬세함으로,
오지랖은 정으로
조용히 바뀌고 있었다.
내 성향을 알고 나니
오히려 일이 더 즐거워졌다.
빠진 게 많은 사주일지라도
내 재능에 맞는 자리에 앉아 있고,
내 기질을 인정하니
자책보다 힘이 생겼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사주팔자 정도는 알아도
나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알면
부족한 걸 채우게 되고
조금은 덜 미워하며 살 수 있으니까.
확률로 따지자면
긍정적으로 살아갈 가능성,
99프로쯤은 되지 않을까.
오늘도
서로 없는 걸 채우며
우리는 그렇게
머리를 자르고
인연을 다듬으며
각자의 인생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