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이버 자동예약을 하지 않는 이유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예약제는 오픈 3년 차부터 운명처럼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 이후 많은 살롱이 예약제로 바뀌었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본의 아니게 예약제로 운영해 왔다.
예약제가 낯설던 시절,
꼭 예약을 하고 와야 하는 나의 가게를 보고
주변에서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아니, 얼마나 유명하길래 예약까지 해야 해?”
“거기 청담동이야?”
그럼 손님들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서초동 동네 미용실이에요”
브랜드도 아니고, 청담동도 아닌
동네 미용실을 예약해서 간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꽤 의아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손님이 늘어날수록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머리를 해드릴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다.
전성기 시절에는
앞머리 커트조차
예약 없이는 틈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매출만 생각하면
예약제는 효율이 좋지 않다.
예약 사이에 10분, 20분이 비면
커트를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 시간은 그대로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방식이 좋다.
오늘 어느 분들이 오시는지 미리 알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표를 천천히 훑어보며
오실 분들의 스타일을 어떻게 해드릴지
한 번 더 고민하는 그 시간이 내게는 소중하다.
가끔 왜 네이버 자동 예약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나의 대답은 늘 같다.
나는 직접 전화를 받아야 한다.
어느 분이 오시는지
목소리로 먼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방문인지,
소개 손님인지,
혹은 오래된 단골인지
파악하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보세요” 하는 순간
고객님의 얼굴이
내 머릿속 화면에 켜진다.
이름은 몰라도
목소리는 대부분 기억한다.
평소보다 일찍 예약을 잡으시면
“여행 가세요?” 묻고,
주기가 빠르면
“파마가 빨리 풀렸어요?” 하고 걱정을 건넨다.
그럴 때면 손님들이 놀라신다.
“원장님 저 누군지 아세요?”
성함은 몰라도
목소리만으로 대부분 알아본다.
공부 머리는 없지만,
시각과 음성에 대한 기억력은 매우 좋은 편이다.
한 번 다녀가신 분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 화면이 켜진다.
대형 살롱에서 일할 때는
철저하게 고객관리 차트를 썼다.
하지만 내 가게를 연 뒤로는
차트를 만들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함께한 손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성함을 모른다.
겹치게 예약을 받지 않으니
굳이 성함을 물어볼 이유가 없다.
연락 없이 못 오셔도
확인 전화나 선입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즘 말로는 ‘노쇼(No-Show)’라고 하지만,
왜 안 오셨냐고 따지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오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올 수 없는 사정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 예약표에는
성함 대신
나만의 닉네임이 적혀 있다.
도쿄,
슈퍼빌 ,
삼성맨,
원숭이 가족,
초롱이 엄마,
간장,
그 사람을 가장 잘 떠올릴 수 있는
나만의 암호다.
‘간장’ 손님은
일본 여행을 다녀오며
간장계란밥용 간장을 선물해 주신 분이다.
그날 이후
그 가족은 내 예약표에서
‘간장 1.2.3’ 이 되었다.
당사자들은 모른다.
본인들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
성함도, 전화번호도 모르지만
가게는 17년째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
비 오는 날이면
혹시 취소 전화가 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우리 단골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어이 오신다.
입원하지 않는 이상
약속은 꼭 지키는 분들이다.
혹시 못 오게 되면
뒤늦게라도 꼭 전화를 주며 미안해하신다.
그래서 나는
노쇼가 기분 나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좋다.
그 시간만큼은
잠깐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취소 전화를 받았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밝았는지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원장님,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사실 고객님의 취소 전화는
내게 ‘합법적인 휴식’이 된다.
어차피 다른 날
다시 오실 걸 알기에
서운함도 없다.
고객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해서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함을 모른다고
대충 해드리는 것도 아니다.
기록 대신 기억으로,
이름 대신 목소리로
소통한다.
그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일일이 적지 않아도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미 고객 관리는 시작된다.
요즘 세상에
온라인 예약도 없고
차트도 없이 어떻게 운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만 17년을 지나
곧 18년 차를 향해
문제없이 잘 달려오고 있다고 답하겠다.
조금 이기적일지라도
내가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고객을 맞이하고 싶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공간에서는 다르다.
컴퓨터 속 데이터는 지워질 수 있어도,
내 머릿속에 켜진
손님의 얼굴과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투박하고 주먹구구식일지라도,
이 방법이야말로
내가 손님에게 진심을 다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예약표에 성함 대신
나만 아는 작은 암호를 적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비밀 작전을
조용히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