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의 대가

귀를 베인 손님이 내게 남긴 '액땜'이라는 유산

by 서초동 김원장


디자이너 3년 차 때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초보 딱지를 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조금씩 다르다.

대범한 성격이라면 2년
나처럼 겁이 많은 성향은 3년 정도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다.

그 시기는 완전한 프로는 아니지만,
어떤 손님이 와도
어떤 스타일을 원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는 시기다.

한마디로, 겁이 서서히 사라지는 때다.

그전까지만 해도

출근길은 걱정뿐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이 오실까.’
불안을 안고 매장 문을 열었고,

퇴근길 지하철 선로 앞에 서면
‘오늘도 무사히 끝났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그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3년 차가 되면
경험도 쌓이고
손도 익고
실력도 붙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나는 이제 다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착각이 시작된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남자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늘 그렇듯
고객의 니즈에 맞춰
경쾌하게 가위를 움직이며
리듬을 타듯 커트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순간,

고객의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가위로 귀 윗부분,
접히는 그 지점을 깊게 베어버린 것이다.

큰 사고였다.

그 시절 남자 커트는
기계(클리퍼)보다 가위로 전체를 다듬는
‘싱글링 컷’을 선호했다.

나는 특히 가위 커트를 좋아했다.

90%는 가위로,
10%만 기계를 사용했다.


지금이야 손목과 어깨 상태를 보며 조절하지만,
그때는 가위질 특유의 리듬에 취해 있었다.

“선생님 가위 소리는 참 시원시원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리듬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것 같아
자부심이 생겼다.

어쩌면
그 자부심이 조금 과해 오만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급히 작업을 멈추고
건너편 병원으로 손님을 모시고 갔다.

그런데 손님이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어젯밤 꿈자리가 안 좋더라고요.
액땜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는
혼자 병원으로 들어가셨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 힘든 일이다.

요즘 같으면
큰 분쟁으로 이어졌을 사고였지만,

그분은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품어주었다.
그 눈물 나게 고마운 배려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할 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수하지 않으려고
평생을 긴장하며 가위를 잡고 있다.

가위질에 속도가 좀 붙는다 싶으면
그날의 붉은 핏자국이 떠오른다.

가위가 귀 근처로 다가가면
손이 저절로 느려진다.

가위와 귀 사이의 거리,
각도,
손님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머릿속에서 치밀하게
계산하게 된다.

참 이상하게도

그날 생긴 ‘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시절.

사고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프로가 되었다고 착각할 때 찾아온다.

진짜 프로란

겁이 없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겁이 무엇인지 알고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사람이다.

그분이
“액땜이라고 생각하겠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따뜻한 한마디가
오만했던 나를 멈춰 세웠고,
평생 가위를 잡는 태도를 바꿔 놓았다.

아찔했던 그날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무사고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경력에서 가장 위험했던 그 하루가,
나를 가장
안전한 미용사로 만들어준 셈이다.


겁을 아는 프로, 그게 내가 평생 가야 할 길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어디선가 멋진 모습으로 계실 그분께 늦은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날의 저의 바보 같은 실수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 살려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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