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 때도, 골목을 달릴 때도

어떤 자리에서도 빛나는 사람

by 서초동 김원장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미용사의 일이 천직이다.


보통 사람들은 여행이나 수다로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오히려 몸이 축나고,

모임에 다녀오면 기가 빨려 힘들다.


오로지 가위를 잡고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원하는 스타일을 완성해 드릴 때,


내 뇌에서는 가장 기분 좋은 도파민이 터진다.


그래서 10시 오픈이지만

나는 늘 두 시간 먼저 출근한다.


일찍 나와서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다.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사료를 붓고,

간식을 챙겨주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짧은 영상을 몇 개 보다 보면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설렘은

그 이른 아침

빈 매장의 불을 켜는 순간부터 시작이 된다.


그 시간이 참 좋다.


그런 나와 닮은 결을 가진 고객 한 분이 계신다.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항공사 기장님이다.


언젠가 시술 중에

내가 내 일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원장님, 저도 그래요.

저는 매일 공항으로 출근하는 길이 여전히 설렙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와, 나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일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여기 또 있었다.


우리에게 공항은

일 년의 한 두 번 여행의 설렘을 안고 가는 특별한

곳이지만,

그분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터다.


그런데도

활주로를 향하는 마음이 설렌다니


자기 일을 대하는 진심이

내 가슴을 조용히 건드렸다.


그러다 전 세계의 하늘길이 멈췄다.


코로나였다.


비행기가 서고

사람들의 여행도 멈췄다.


항공사 소속이었던 그분 역시

실질적으로 일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막막했을 법도 한데,


기장님은 가만히 상황을 탓하지 않았다.


작은 중고 경차 한 대를 마련해

곧장 배달 일을 시작했다.


파일럿이 배달을 한다는 사실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멈추지 않는

그 단단함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힘들지 않으세요?"


내가 묻자,


그분은 웃으며 말했다.


"원장님, 너무 재미있어요."


순간

나보다 더 일에 진심인 사람,

나보다 더 삶을 즐기는 고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공항으로 출근할 때도 설렌다는 사람이

좁은 골목길을 달리며 배달을 할 때도

같은 표정이었다.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 빛이 났다.


나는 그분을 보며 배웠다.


일의 높낮이가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격을 만든다는 것을.


코로나가 끝나고

기장님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지금은 다시 거대한 비행기를 몰고

구름 위를 날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때 경차 끌고 배달하던 시절도 참 좋았어요."


그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하늘을 날 때도,

골목을 달릴 때도,


그분은 늘 같은 사람이었다.


주어진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어쩌면 이런 사람이

진짜 거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멋진 분이

내 단골이라는 사실에

괜히 자부심이 차오른다.


덕분에 나도

내 가위를 더 신나게 쥐어 본다.


오늘의 자리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빈 매장의 불을 켠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자,

오늘도 기분 좋게


이륙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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