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함께 살아야 했다.
미용실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참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지금이야 반려묘와 함께하는 사람이 많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대부분 강아지를 키웠고,
동물병원도 강아지 위주였다.
어떤 병원에서는
고양이 성별조차 헷갈려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고양이 진료를 보는 병원을 찾아
멀리 다녀야 했다.
그렇게
진료조차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미용실에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손님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반가워하는 분도 있었지만
불편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나의 커트는 좋지만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분들이 많았다.
눈빛이 무섭다며
입양을 보내라고 하신 분도 있었고,
한 마리만 남기고
정리하면 안 되겠냐고 말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첫째 노엘이는 길고양이 출신이라
겁이 많아 손님이 다 가야
구석에서 겨우 나오는 소심한 아이다.
블랑이는
내가 세 번째 주인이었고,
마음을 여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호빵이 와 찐빵이는 번식묘 출신이라
사회성의 거의 없었다.
매일 바닥에 똥을 싸고,
몸도 약하고,
입질도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며
상처를 입고 온 아이들이다.
입양을 보낸다 한들
결과는 파양일 게 뻔했다.
가게 운영을 생각하면
손님의 말을 듣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주인을 만나
어떤 환경에서 살지 모르는 아이들을
차마 보낼 수 없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측은지심과 정이
깊게 쌓여버렸다.
어느 날은
소개로 오신 손님이
고양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미처 듣지 못한 채 방문했다가
고양이를 보자마자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길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캄캄한 밤,
눈만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매섭던지.
꼭 저승사자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바꿀 수 없어서
그렇게 돌아가시는 분들에겐
죄송한 마음만 커질 뿐이다.
가끔 어떤 분들은
머리 하는 동안만이라도
고양이를 다른 곳에 가둬 달라고 하신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하다는 이유다.
처음에는 거절하지 못해
다용도실에 넣어두고 머리를 해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소파에서 조용히 자다가도
다용도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문을 열어 달라고 요란하게 울기 때문이다.
손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도 불쌍하고
나도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어렵다고 말씀드린다.
그렇게
손님을 돌려보내는 내 마음도
편할 리 없다.
매출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고,
귀한 손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단골 분들도
한 번, 두 번 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이제는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아이들부터 찾는다.
“애들 다 어디 있어요?”
“다 있는 거죠?”
블랑이가 아플 때는 함께 걱정해 주었고,
블랑이가 먼 길을 떠났을 때는
같이 눈시울을 붉혀 주었다.
호빵이는 실수가 많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을 참 좋아한다.
강아지처럼
궁둥이를 손님 가슴팍에 들이밀고,
무릎 위에 올라가
팔베개를 받고
편하게 잠을 자는 걸 좋아한다.
손님들은
낯설지만 싫지 않는 표정으로
은은하게 웃는다.
그 미소를 볼 때면
내 마음도 몽글몽글해진다.
뚱한 표정으로 들어온 사춘기 아이들도
고양이 앞에서는 무장해제된다.
상가 2층 회사원 한 분은
머리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제가 회사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둬요.
얘네들 때문에요.
저의 유일한 힐링이거든요.”
나에게는 일상이자,
때로는 고단한 삶의 현장인 이 미용실이,
누군가에게는
지친 사회생활 속
작은 쉼이 되고 있다는 것.
참 기뻤다.
우리 고양이들도
이제는
당당하게 사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블랑이를 보내고 나서
또 하나의 걱정이 생겼다.
이별이 너무 힘들어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남겨진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이 녀석들이
너무 소중하다.
한번 동물을 들이면
최소한
15년은 책임져야 한다.
새로 다시 키우기엔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없고,
내 나이가
적지 않다.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내가
이토록 집착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는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명들.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살갑지도 않은 집사지만,
그래도
바라고 또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기를.
이별이
조금만 늦게 오기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포에버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