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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gram Sep 03. 2023

[Review] 행복을 그리는 화가 [도서]

<이것은 라울 뒤피의 이야기>, 이소영


누군가의 글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과 같듯이, 누군가의 그림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의 삶과 가치관을 보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글이나 그림을 보는 것은 꽤 낭만적인 일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직접 대화를 해보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쓰고 그린 글과 그림으로 한 사람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예술에 관한 책을 보며 화가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즐거운 행위다.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그림에서 드러나는 그의 삶과 애정을 모두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소영 작가의 책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는 뒤피에 대한 전반적 삶과 그림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알아볼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파란색을 사랑한 화가,

검은색을 애정한 화가



라울 뒤피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은 파란색이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았던 뒤피에게 바다는 삶 그 자체이며 활력의 원동력이었다. 이로 인해 그에게 바다는 평생의 그림 소재였다. 파란색은 색으로만 봤을 때도 시원함과 청량감을 주듯이, 그에게 이 색은 언제나 그림과 함께였다.

그렇기에 그는 바다의 표현을 더욱더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단순히 바다의 색을 파란색으로 칠한다기보다는 파도를 함께 표현했다. 이때 그가 표현한 파도는 삼각형 모양이다. 그는 파도를 표현할 때 기호화된 형태의 사용을 즐겼는데 마치 악보 위의 음표처럼 파도가 선율을 가지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푸른 바다 앞에 서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본다면 그의 그림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뒤피가 파란색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파란색에 가장 중점을 두어 그림을 표현한 것은 맞지만, 말년에 그린 그의 작품 <검은 화물선> 시리즈의 주된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을 때로, 뒤피가 사랑한 고향의 바다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때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뒤피가 손에 잡은 색은 검은색이었다. 그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검은색을 통해 그림을 그렸으며 항구 역시 검은색으로 표현하였다. 단, 검은색으로 점철된 그의 그림 중 해변 거리와 그곳의 사람들만큼은 밝은색으로 나타냈다.



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밝은색으로 표현하였을까? <검은 화물선> 시리즈에 대한 뒤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일 고점에서의 태양은 검은색이다.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인생의 힘든 시기가 닥쳐와 그 주변이 모조리 어두운 모습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어둠은 언제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어쩌면 이것은 밝은 빛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시사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뒤피가 활동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이 그림을 보는 오늘날 사람들은 뒤피의 그림을 통해 희망과 따뜻함을 얻는다. 누군가의 그림을 보는 것이 낭만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것에 있다.



 경계를 허문 화가



뒤피가 수채화를 통해서만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어떠한 경계도 정하지 않았다. 삽화가, 의상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모두 뒤피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다. 당시 몇몇 비평가들은 뒤피의 이런 활동을 ‘장식 미술가’라며 비판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따라서 그는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의상의 패턴을 크게 키우는 도전을 하기도 하고 파리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병풍으로 큰 인정을 받는다.



삶의 한 부분에서 보았을 때 누군가의 비판이 큰 영향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의 내면에 있는 확신에 달려있다. 전공을 살려서 그 분야에서 오래 활약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원했던 삶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 분야에서 많은 시간 꾸준히 일한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평가가 오간다.


하지만 경계를 넘나들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자 노력하는 것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한 삶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다재다능한 재능을 살려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뒤피는 자신의 현실과 능력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많은 화가가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자신의 자유로움을 접목시켰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를 창출해냈다.



삶을 사랑한 화가



사실 뒤피가 그린 작품과 그의 세계는 훨씬 많다. 그는 여러 작품을 다양한 색을 이용하여 표현했고, 늘 창의적인 도전을 고민한 화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고 밝은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뒤피 역시 언제나 즐거운 삶을 영위한 것은 아니다. 뒤피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사람이었으며 그가 평생에 사랑한 노르망디 해변은 전쟁으로 인해 폭격을 받았다. 그 후 해변과 그 주변이 재건될 때쯤 뒤피는 생을 마무리한다. 그가 사랑했던 본연의 아름다움을 끝내 눈에 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작품에는 인류의 고통과 폐허된 모습이 담기길 원치 않았다.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바다를 표현한 것, 일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표현되는 검은색조차도 삶의 희망과 연결한 것은 그가 삶을 향해 가진 태도를 짐작하게 만든다. 이는 많은 사람이 뒤피가 행복을 그린 화가였다고 기억하는 것과 의견을 같이한다.



현재 처한 상황이 힘든 시기에 행복을 내뱉기는 참 쉽지 않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듯이, 뒤피는 행복을 끊임없이 연상하다 보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는 그가 한 말 중 “삶은 나에게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지었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행복을 전해주고 간 그의 의지 덕분에 우리의 삶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결국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https://www.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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