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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gram Oct 31. 2023

[Review] 음악을 통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

책 <G는 파랑>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감정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본다면 기쁨과 슬픔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감정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표현하는 것조차 힘들기도 하고 이제는 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 마음 속 깊이 왠지 모를 감정이 들 때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 표현할 수 없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인지 감정의 단조로움 속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시각과 촉각 청각 등 모든 것을 총동원해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음악은 형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멜로디만으로 자신의 상황과 기분을 상상하는 것이 다소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G는 파랑>의 경우 작가는 클래식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을 느끼며 음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대중가요와 같이 익숙하지 않은 노래들, 특히 그것이 클래식이라면 마음 한편 편견이 자리 잡는다. 클래식은 비싼 음악일뿐더러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오로지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면 누구나 클래식에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책의 내용은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 그것을 들으며 작가가 느꼈던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이 노래하는 봄은 단순한 봄의 느낌이 아니다. 음악을 들으며 상상해볼까.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봄의 특성을 나누어 표현하는데, 봄이 막 다가오기 시작한 쌀쌀함부터 시작해 새싹을 맞이하는 봄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껏 푸르른 봄 속에서 갑자기 오는 비는 봄의 소멸이 아닌, 더 활기차게 자라날 잎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절정 전 단계인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오는 4악장 속 봄의 절정은 밝고 경쾌한 음악에 따라 가벼운 옷을 입고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따스하고 햇빛 가득한 날씨 속에서 낮잠을 자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화사함이 떠오른다. 여유로운 삶과 맞닿아 있는 봄의 모습 속에서 편함과 단순함을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한적한 동네에서 맞이하는 여유로움이었다면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전주곡>은 화려하고도 복작거리는 도시의 모습이다. 이 곡은 뉴욕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맞이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언제나 바쁜 아침 출근길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은 단정한 모습 속 피곤함과 짜증에 젖어있다.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걷고 도로 위는 여러 차가 쌩쌩 지나다닌다. 누군가를 태운 택시와 버스는 그 안의 사람들의 조급함을 대변한다.

      

퇴근길의 모습은 어떨까. 바쁜 아침 속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음에도 지하철에 하나둘씩 조는 사람들이 보인다. 각자가 내는 약간의 소음이 어우러진 엉성한 소리 안에서도 또 다른 소리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는 사람, 눈을 감고 피로에 몸을 맡기는 사람, 누군가를 힐끔거리며 관찰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 펼쳐진다. 화려한 건물과 쏟아지는 불빛 안에서 완성되는 도시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누적된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음악을 듣고 어떤 도시의 모습을 떠올렸든 모든 상상은 개인의 자유다. 추상적인 클래식 안에서 떠오르는 도시의 삶은 어떤 모습도 가능하다.



봄의 편안함과 도시의 분주함이 때론 삶을 아늑하게 혹은 지루할 틈 없이 활기차게 만들었다는 것은 봄을 느끼는 낭만과 여유를 가진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고 열심히 일할 동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앞선 곡들은 보편적 감정으로 표현했을 때 삶의 기쁨 한가운데 놓여있다.

     

그러나 쳇 베이커의 <올모스트 블루>의 경우 상실을 맞이한 삶을 그린다. 상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이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장소의 상실, 일을 관두는 것 등등. 이 모든 소멸에서 나타나는 감정은 쳇의 나른하고도 늘어지는 목소리, 그리고 잔잔하면서도 고요하게 이어지는 운율과 함께한다. 삶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는 상실은 사람의 부재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던 사람의 부재는 크나큰 슬픔과 허망함을 안겨준다. 특히 그것이 단순한 헤어짐이 아닌 영영 볼 수 없는 이별이라면 더욱 그렇다. 작가는 이 곡의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슬픔으로 인식한다. 슬픈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여 떠나는 사람을 잘 보내주는 것.

      

나의 경우 이 곡을 들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상실 속 슬픔과 그리움은 늘 마음속에 품고 살지만 조금만 바깥을 나가 세상을 돌아보면 여전히 삶은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삶 속에는 떠나간 그의 부재를 모르는 사람과 앎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아예 상관없는 이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노래의 흐름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남겨진 사람에게 전하는 소박하지만, 마음을 담은 위로가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허망함 속에서 그들의 삶은 허망하지 않기를, 가끔은 마음껏 슬퍼하다가도 다시 편안함을 찾고 소박한 행복을 찾아 나서기를. 잔잔하게 흘러가는 선율 속 침대에 누워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스르르 잠이 드는 이의 모습을 상상한다.      

     


책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작가의 취향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세상에 딱 한 곡만 남는다면 베토벤의 <소나타 30번>을 연주할 것이라고 말한다. 곡을 들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베토벤의 곡은 언제나 활기차고 강단 있다.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가며 정열적으로 연주할 것만 같은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베토벤의 삶은 그가 쓴 곡처럼 활기차지 않다. 환희와 생동감으로 가득한 그의 음악은 대부분 청력을 전부 잃었을 때 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왜 이런 지난한 삶 속에서도 이와 반대 성향이 있는 곡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어려움과 힘듦, 고통이 수반되는 생활의 연속이지만 그것조차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소소하게 맞이하는 봄날의 따스함이 존재하는 것처럼, 삶의 어려움 곳곳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즐거움은 우리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원인을 제공해준다.

      

음악은 우리 삶 자체라고 표현한 작가의 마음이 책의 마지막까지 오니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다. 다양한 음악을 하나씩 감상하며 해나가는 상상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그때만큼은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세상에는 어떤 걱정과 슬픔도 없이 소중한 사람들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끼고 원하는 곡을 듣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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