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된 <더 발레리나>는 기존 발레 공연과 비교했을 때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공연 시작 전부터 무용수들의 준비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작 시간이 되어서야 저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기존의 공연과는 달리 이미 무대 위에는 많은 무용수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몸을 풀며 스트레칭을 한다. 곧이어 시작될 본 공연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면 이들은 준비 과정을 더욱 과감하게 드러낸다. 코치의 지도하에 무용수들은 함께 동작을 연습한다. 스텝을 밟으며 똑같은 동작을 몇 번씩 반복하기도, 코치의 조언을 받은 후 동작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때 코치의 조언 역시 ‘발뒤꿈치를 더 들어라’ ‘~한 부분은 조심해라.’와 같이 현실적이다.
무용수들의 최종 목표는 무사히 공연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동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어려운 동작은 더 집중하여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피할 수 없는 것은 부상이다. 우아하고 가벼운 몸짓으로 턴 동작을 하다가도 다리가 삐끗해 넘어지는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런 부상은 치명타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연습을 이어나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뒤꿈치를 높이 들어 정교한 동작을 해야 하는 무용수들에게 순간의 부상은 공연의 참가를 논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넘어진 무용수에게 모두 달려가 얼음 찜질을 하며 응급처치를 하지만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내 퇴장하고 마는 발레리나를 뒤로하고 다른 이들은 꿋꿋이 연습을 이어나가지만 곧이어 다친 무용수의 대체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다.
어느 곳이 다 그렇듯 이곳도 경쟁의 세계다. 누군가의 대체자를 구하는 과정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실력을 검증하는 계기로 다가온다. 다친 무용수를 대신할 이는 성실한 연습으로 어려운 동작을 막힘없이 보여주었고 코치에게 인정받아 무대에 서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노력의 물거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력의 결실로 맺어지는 상황은 경쟁 사회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체자는 꾸준한 노력에 대한 희망을 맛봤겠지만, 부상자는 어두운 뒤편에서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둘. 시작
노력의 흔적들이 지나가고 어느덧 공연이 다가온다. 기존 발레 공연과 마찬가지로 단장의 인사말과 함께 공연의 막이 열린다. 재미있는 점은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커플, 엄마와 딸, 부부가 각각 느끼는 발레에 관한 생각과 의견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후 시작된 공연은 무용수들이 연습한 결실을 뽐내듯이 멋진 안무를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나 기존의 공연과는 다르게 백스테이지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무대장치를 설정하였다. 그동안 관객은 큰 무대에서 보여지는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짓만을 봐 왔겠지만, 그 무대 뒤편에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무용수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운동으로 긴장된 마음을 달랜다.
이들이 차례대로 완성해나가는 무대는 클래식과 발레의 결합, 국악과 발레의 결합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서양 예술인 발레는 클래식과 익숙한 음악적 혼합을 이루어내어 거리감이 없다. 다만 국악과 발레의 결합은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국적 미의 국악이 서양의 발레와 만난다는 것은 상상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안무와 곡의 재해석을 통해 아름다운 동작을 완성했다. 손을 크게 뻗지만, 수직으로 떨어지는 손동작이 아닌 곡선으로 부드럽게 그려내는 몸짓은 한국무용을 연상케 했다. 구수한 음정과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정과 익숙함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한 쌍의 남녀 무용수가 함께 만들어가는 동작으로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무용수들은 커튼콜과 함께 차례대로 무대를 빠져나간다. 관객의 함성과 환호를 뒤로하고 차분하게 공연장을 나가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셋. 다시 준비 그리고 시작
캄캄했던 조명이 다시 밝아오고 무용수들은 여전히 연습실에 있다. 화려한 무대를 마친 이후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다시 스트레칭을 하고 발레복을 갖춰 입는다. 누군가는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고 누군가는 앉아서 대화한다. 이때의 대화 역시 발레와 관련된 내용뿐이다.
똑같은 공연을 40회나 해야 한다는 한 무용수의 투정에 다른 무용수는 관객의 입장을 대신한다. 그들에게는 똑같은 동작의 반복이지만, 관객은 언제나 처음일 것이기에 초심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후 들어온 코치의 응원과 격려의 말,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연습. 이들은 또 다른 무대에 서기 위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똑같이 연습하며 비슷한 하루를 시작한다.
모든 일은 기나긴 과정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막상 그 결과는 순간에 불과하다. 순간에 불과한 그 시간은 지나칠 정도로 짧기에 성취는 허무감을 비롯해 어쩌면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시간 투자는 결코 성과와 비례하지 않으며 노력만으로 모든 변수를 차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무용수는 오늘도 연습을 해나간다. 근육통이 와 때론 몸이 터질 것 같이 고통스러워도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연습해온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반복적으로 꾸준한 노력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이 일이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일부란 과정과도 같다. 결과가 찰나라면 나머지는 전부 과정의 연속이다. 어쩌면 삶은 이 과정의 나날을 얼마나 잘 보내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힘든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 순간을 극복해내며 다져지는 자기 확신, 서로의 격려와 노력으로 완성해나가는 무대, 그로 인한 동료애, 그리고 이러한 인내로 쌓아가는 자신감은 우리가 좀 더 멋지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들의 고통스러운 과정들은 즐거움을 수반한 꿈과 열정의 조각들이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고 열정을 다했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경험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