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줄리앙은 자유로운 표현기법과 단순한 형태의 그림을 그리며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를 표현한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 역시 종이 인간들과 그를 둘러싼 곳을 단순하고 유머러스하게 시각화하여 관객과 만난다.
전시장 입구로 처음 들어가면 나오는 공간은 종이 인간을 탄생시킨 공장이다. 천장까지 매달려 있는 종이 인형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서 컨베이어 벨트는 끊임없이 종이 인간을 탄생시킨다. 물론 이 종이 인간을 만들어내는 이도 같은 종이 인간이다. 이들은 함께 공장에서 작업하며 각 인물에 대한 색깔을 덧붙여 하나의 완성된 존재를 만든다.
조금만 시선을 옮겨보면 가위로 모양을 잡아내고 그에 맞게 오리는 작업 역시 진행된다. 벽면에는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과 이미 모든 게 완료된 종이 인형이 혼재한다. 이밖에도 벽면에는 종이 인간뿐 아니라 악어와 표범, 고래 등 여러 동물도 함께한다.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를 허물어 모두가 어우러진 일상이 그려진다.
같은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일을 해내는 종이 인간은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각각의 역할과 규칙을 가지고 여러 종이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공장 시스템은 철저한 분업화를 거쳐 하나의 완성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일의 정확성과 능률을 고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엄격함이 드러난다.
반면 벽면에서 일을 처리하는 종이 인형은 조금 더 자유분방하다. 동물들과 인간의 모습과 형태도 모두 같지 않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표현이 드러남으로써 개인의 자유의지를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양한 인격체와 모습을 가진 이들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이들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Jean Jullien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그려진 큰 뱀이 보인다. 두 번째 구역인 페이퍼 정글 (Paper Jungle)은 뱀의 안내에 따라 자연과 함께인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 구역에는 작은 갤러리가 있다. 그 갤러리 안에는 다양한 그림이 걸려 있는데, 검은 붓을 사용해 채도와 명도를 조절해 그린 작품이 나열되어 있다. 작품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그 모습을 단순하게 그렸으며 주로 사람의 형태는 작고 단일하게, 자연의 모습은 넓고 크게 그린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그림은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 갈대와 풀잎이 양 갈래로 뻗어 있는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 광활하지만 위험해 보이진 않는 바닷속에서 스릴를 즐기는 사람,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색채가 없는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검은색만이 주는 안정감과 차분함이 함께 느껴진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뿐만이 아닌, 그동안 우리가 쉽게 간과했던 것들에 관한 의미를 전하고자 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지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을 훼손하며 인간의 편의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고, 산림이 파괴되고 있음에도 생활의 편리함만을 우선시했던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Jean Jullien
마지막 구역인 페이퍼 시티 (Paper City)는 전시를 관람하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일 것이다. 말 그대로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여느 공간과 다를 바 없이 영화관과 시장, 꽃집, 카페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영화관은 실제로 약 10분간 전시회의 주제와 걸맞은 작품을 상영하고 있었으며 장 줄리앙 특유의 단순하고 재미있는 그림을 엿볼 기회가 주어진다. 영화관의 좌석에는 쿠션도 함께 마련되어 있어 종이 세상에 맞는 규격과 정교함이 두드러진다.
카페에서는 장 줄리앙의 책이 놓여있어 그의 작품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종이 인형은 어떤 형태와 모습이든지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으며 재미있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의 그림을 보며 깨닫는다. 그는 자연을 소재로 한 사진 속에 종이 인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작품을 표현했다. 나무에 감겨 있거나 물을 내뿜고 있기도 하고 보통의 인간처럼 자연이 보이는 창문에 걸터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는 모습은 자연과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을 사랑하며 함께 어울리고자 했던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Jean Jullien
좁지 않았던 전시 공간에서 다양한 종이 인간의 모습과 여러 도시의 모습, 벽화, 편의시설을 보고 느낀 건, 종이 인간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구역마다 세세한 특징은 존재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함께하는 작은 사회라는 것이다. 이곳의 종이 인간들은 자신의 마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자유롭게 쉬기도 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유지 및 확장해왔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종이 인간의 세상에서 다양한 생물체와 여러 모습의 것들을 그저 독특하고 창의적이라고 인식했던 것처럼 다양한 이들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뿐이다. 여러 종이 인간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듯이, 모든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 우리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종이 인간의 자유분방함을 인간 세계에서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진짜 자유란 편견 없이 세상의 전반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