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가서 그림들을 볼 때 ‘저 그림은 나도 그리겠는데’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의 그림은 단순히 액자에 걸려있는, 여러 색깔과 점, 선이 만나 이루어진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의 제목을 보고 그 그림을 그린 시대적 배경을 알아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작품 하나에는 그 시대의 깊은 의미와 한 시대의 혁신이 담겨있다. 단순한 작품일지라도 그 속에 녹아있는 시대적 배경과 누군가의 삶은 그림의 전시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평범한 그림도 누가 먼저 그리느냐에 따라 혁신이 되고 작품이 된다. 이 전시회에서는 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여러 화가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입체파- 피카소 <아티초크를 든 여인>
입체파란 20세기 거장 화가 중의 화가, 천재 화가 등의 수식어를 가진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함께 창시한 20세기 초 서구 미술의 전면적 혁신을 가져온 미술운동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피카소의 작품 중 하나인 <아티초크를 든 여인>이다.
20세기는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6.25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질 않던 시대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부터 1945년의 세계대전 종결까지 피카소는 어둡고 불온한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그렸다. <아티초크를 든 여인>의 여인은 오른손에 중세 타격용 무기 모르겐슈테른을 연상시키는 아티초크를 잡았고 날카로운 손톱이 자란 왼손은 무릎에 두었다. 배경에 가득 찬 회색은 정장에 피어나는 연기를 연상케 한다. 본 작품은 그의 대표작 <게르니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광경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전쟁이 주는 비참함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초현실주의 예술의 장 뒤뷔페
초현실주의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하는 예술이다.
이때 예술가들 대부분의 관심사는 전쟁이었다. 특히 세계 2차대전의 발발은 유럽 예술가들이 각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전쟁을 주제로 표현한 화가인 장 뒤뷔페가 그 중 한 명이다.
전쟁으로 인간은 2가지의 믿음을 잊어버린다. 하나는 ‘인간은 이성적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과학의 발전이 이롭다.’는 것이었다. 장 뒤뷔페의 작품에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인간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작품이 많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빼곡하게 그려진 알 수 없는 형체들과 다양한 색상은 어지러움을 유발한다. 직선을 연결한 정갈한 그림보다는 낙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또한, 공업용 페인트, 모래, 돌 등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기존의 미술 재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재료의 다양성을 부여하였다.
전쟁의 상처: 예술을 통한 공감
이 전시회는 전쟁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흔적을 예술로 표현한 전시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품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복잡하고 어지럽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전쟁의 역사를 배우며 예술을 살펴보니 전쟁의 상처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을 경험한 적이 있는 국가이기에 전쟁을 제외하고는 역사를 논할 수 없다. 그렇기에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통역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다. 예술 작품은 말과 몸짓이 드러나지 않는 정적인 세계지만 한 시대의 역사를 안다면 그 작품은 말로 구현하고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동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렇기에 역사를 아는 것과 예술은 중요한 관계가 있다. 겪어보지 않은 전쟁일지라도 그때의 아픔과 피해, 불안감과 황망함 등은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 얻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한 역사가의 말에 따르면 전쟁의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나중에 당신 아들이 전쟁에 나가 전사할 수 있는 위험을 안겨준다고 표현했다. 따라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주제로 선정한 예술 작품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전 세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