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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gram Dec 11. 2024

[Review] 언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에게

착한 대화 콤플렉스 [도서]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범은 가죽을 아끼고 군자는 입을 아낀다’ 등 우리나라 속담은 유독 말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만큼 말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일상을 살아가며 사람 사이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웃음이 나오다가도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온종일 기분이 불쾌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말을 글로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하나의 뜻을 가진 글을 전달할 때 우리는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쏟는다. 특히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는 지금도 미세한 단어 차이와 표현에 신경 쓰며 몇 번이고 글을 다듬곤 했었다. 글에 표현되는 억양과 분위기는 독자의 몫이기에 단어와 표현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이렇게 중요한 말을 어떻게 내뱉어야 하는지, 세상에 즐비한 혐오 표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다.     

 

‘유아차’와 ‘유모차’ 둘 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단어만 유독 질타를 받는다. 이러한 질타는 점점 거대해져 분노가 되고 편 가르기 및 누군가에 대한 혐오로 변질된다. 심지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되도록 ‘유아차’라는 표현을 권장한다고 말했음에도 논란은 한동안 사그러들지 않았다.

     

살면서 어떠한 차별 언어도 사용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의도가 꼭 부정적이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혹은 잘 몰라서 은연중에 차별 언어를 내뱉기도 한다. 차별을 지양하고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맞는 표현이다.’라고 주장하는 이가 점심 메뉴를 고르지 못하는 스스로를 ‘결정장애’라고 일컫는 것, ‘학부모 대신 보호자라는 말을 사용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골린이의 성장일기’와 같은 해시태그를 올리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결정장애’는 장애인 차별표현이며, ‘~린이’는 아동차별적 단어다.  


   

언어는 사용하는 범위나 연령층에 따라 뜻이 변화할 수 있고 새로운 의미가 추가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기준은 언제나 절대적일 수 없으며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차별표현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은연중 사용하는 차별어로 상처받는 사람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언어가 다듬어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가는 것은, 무심코 쓰고 있었던 차별어를 인지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이런 단어 하나하나에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른바 언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라는 말에도 단어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단어 사용 하나에도 숙고하는 태도를 지닌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깊이 있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자신과 관련이 없을지라도 그들의 상처에 신경쓰고 고통을 상상하며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나아가는 힘을 가졌으며, 이유 없는 비난에도 꿋꿋하게 앞장서는 용기를 가진 이들이다.  


   

이 책은 언어의 매력 중 하나로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언급한다. 오래전 자장면이 표준어였던 시절이 있었으나, 대부분이 간절히 외친 짜장면이 마침내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대국민 설문조사와 영향력 있는 인물의 외침 그리고 다큐멘터리 방영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가 있었다. 만약 이들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라는 것만을 이유로 내세워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바꾸는데 무기력했다면 지금처럼 입에 감기는 짜장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세상이 변화하며 생겨난 수많은 언어 가운데 차별 및 혐오 표현에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올바르게 바꾸자며 소리치는 건, 지금도 앞으로도 매우 지난한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옳지 못한 단어를 사용했을 때 겸허히 인정하고 고치려는 태도를 지니는 것, 본인부터 차별표현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해결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새로운 단어나 표현은 그 어떤 표현보다 단단하고 섬세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단어가 더욱 많아지길 바라며, 차별과 혐오 없는 표현을 위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두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https://www.artinsight.co.kr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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