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단테의 신곡을 선보이는 세종문화회관과도 맞닿아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는 최승자의 <20년 후에, 지(芝)에게> 중 일부분이 선정되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고단함 속에서도 삶에 대한 예찬을 저버리지 않지만 살아가는 것이 마냥 버겁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계속되는 후회와 불안이 있고 그 속에서 조금씩 쌓여가는 자기혐오 등은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인간은 반복되는 것들 사이에 저마다의 특색을 끼워 넣고,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해나가고자 하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고통 안에서도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인간의 아이러니는 단테의 <신곡>과도 맞닿아 있다.
<신곡>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통과하며 겪은 일들의 묘사를 그린 연극으로, 그 배경은 사후세계이다. 그러나 사후세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죄인들과 그에 따른 죄를 넘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연극 <신곡>은 여행을 떠나 길을 잃은 ‘단테’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이야기다. 연극은 ‘지옥편’에 초점을 맞춰 극을 전개해 나가기에 지옥과 죄인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지옥은 죄인들의 죄를 고하며 그에 따른 죗값을 받게 하는 곳이다. 음욕과 탐욕, 이단과 폭력 등으로 타인과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하나님과 자연에 해를 끼친 자들이 죄를 심판받고 그에 따른 벌을 받는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도구와 소품을 통해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지옥편에는 성직자도 등장하는데, 종교를 금전적으로 이용하거나 부패한 권력을 도구로 삼는 교황 등을 내세워 부조리함을 일갈한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에 대한 작가의 대범함을 엿볼 수 있다.
단테 <신곡>은 기독교적 윤리 체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신의 질서 안에 있다는 믿음을 내포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천국과 지옥 등은 신의 명을 어긴 자와 구원을 받는 자로 나뉘며 기독교적 색채를 깊게 담고 있다. 이는 작가의 시대상을 반영하였을 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때로는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옥에서 죄의 영역 중 ‘자살자’와 ‘동성애’를 다룬 내용이 그렇다.
<신곡>에서 자살은 신의 생명 부여를 거스르는 죄로, 동성애는 자연 질서를 거스르는 죄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살인죄와 탐욕죄 등과 같은 선상에서 끔찍한 벌을 받는 것은 꽤 가혹하게 느껴진다. 삶의 절망 속에서 어쩌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단지 사랑의 형태가 달랐던 자에 대한 다양성의 존중을 배제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를 단순히 결과론적으로 파악하여 죄를 결정짓는 것보다 그들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들이 수반되는 것이 인간과 윤리 체계에 대한 진정한 존중으로 다가올 것이다.
연극은 이러한 점을 모두 그려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숙고할 기회를 주었다고 본다. 문학 작품과 연극은 한 사람의 생애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이 중심이 되다 보니, 저마다의 해석이 갈릴 수밖에 없다. 관객의 생각과 추측을 마음껏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연극의 또 다른 존재 이유이므로 이와 같은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 역시 흥미로울 것이다.
극의 후반부 단테는 연옥에 다다라 천사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지옥과 연옥의 가장 큰 차이점은 희망의 유무이다. 질투와 분노, 나태, 교만 등을 씻어내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연옥은 모든 것을 정화하고 새로운 세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쥐여준다.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세계관이 담겨있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편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죄의 종류를 통해 사후세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행적을 따라가는 방향성은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보단, ‘삶을 살아가는 것의 귀중함’이다.
연극의 도입부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유명한 속담을 언급한다. <신곡>에서 그려내는 지옥과 연옥은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른 구원을 의미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에 담긴 고통과 절망은 살아 있는 관객에게는 한없이 무겁게 다가온다.
죗값을 치르는 생생한 고통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극은 사후세계를 통해 오히려 살아 있음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한 현실일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있고,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가능성을 채워나간다면 그것은 연옥으로 가는 길보다 더욱 또렷한 구원의 손길일 것이다. <신곡>의 지옥은 단순히 죽은 뒤의 형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것에 있다.
결국 사후세계의 여정은 죽은 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지친 인간이 다시 살아 있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삶에 대한 굳건한 책임을 가지고 희망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있는 한, 세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