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메멘토 북>
새해가 되면 꾸준히 쓰기를 다짐하는 다이어리는 몇 달만 지나면 어디 두었는지도 모르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시에 아무나 할 수 없다. 무언가를 꾸준히 쓴다는 게 쉬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의 의미가 희미해지면서 그 목적까지 잃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메멘토 북>은 그런 고민 끝에 만들어진 기록 책이다. 기록을 하고 싶어도 무엇을 써야 할지, 얼마나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될 때 이 책을 활용할 것을 권한다.
첫 장은 <메멘토 북>의 사용법에 관한 내용이다. 책의 두께는 두껍지만, 사용법을 정독하면 두께에 대한 부담이 한결 덜어진다.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하는 “기록은 매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일 쓰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날에만 쓰면 될 뿐이며 그 주기가 일주일 혹은 한 달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빈도가 아니라 밀도라는 말을 몸소 느끼게 한다.
보통의 책은 차례대로 읽으며 내용의 이해와 서사를 쌓아가지만, 이 책은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 질문부터 작성할 것을 제시한다.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다음 장으로 넘기는 것도 방법이다. 이 책의 목표는 나만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정제된 문장을 구사할 필요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글씨체 등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때로는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꾸준함에 해가 되기도 한다.
<메멘토 북>은 다양한 삽화와 글귀, 명언 등을 실어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감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여러 질문은 인생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깊이 있는 물음이 많다. 이를테면 ‘돈을 버는 이유’, ‘채우고 싶은 삶의 한 조각 상상하기’,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누구와 함께 해결하고 싶은지’, ‘이 세상의 유일한 나라는 작품의 제목은 무엇일지’ 등이 질문으로 자리한다. 평소에 깊게 하지 않았던 생각들과 더불어 흥미롭고 참신한 질문이 많아,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갖가지 질문만큼이나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빈 페이지들이다. 다 합치면 한 권의 노트가 나올 정도로 하얀 여백들이 중간중간 그리고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메멘토 북>은 이 빈 곳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독려한다. 생각에도 여백이 필요하듯이 빈칸은 단순한 ‘여백’이 아닌, ‘머무름’이라는 것이다. 어딘가에 머물러 잠시 쉬어갈 때 머릿속으로 여러 상상을 해 본 기억이 있다면 깨끗한 여백을 마주했을 때도 평소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늙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고
졸음에 겨워 난롯가에 앉아 졸게 되거든,
이 책을 꺼내 천천히 읽어보라.
그리고 떠올려보라.
한때 그대 눈에 깃들었던 부드러운 빛과 그 깊은 그림자를.
지나간 시간을 시각적으로 붙잡아준 사진들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면, 지난 기록의 흔적은 나의 경험과 삶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 주는 지표와도 같다. 아예 잊고 있었던 삶의 한 장면들도 옛 기록을 보다 보면, 갑작스럽게 기억날 때가 있다. 지난 기록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 추억에 잠기기도, 슬프기도 하지만, 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뿐만이 아닌 그 밑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도 충분히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 역시 시간이 흘러 다시 꺼내 보았을 때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떠올리며 갖가지 경험과 생각을 쌓아 올린 수많은 자신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대단한 책이란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이루어진 나만의 대서사시일지도 모른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