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랑에 관한 글을 쓰다 울컥하고 말았다. 나의 절반을 내어줄 사람이 없어서, 혹은 아직 오지 않은 사랑에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말이다. 오랜 세월 ‘진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인연을 스치듯 지나쳤다. 사랑을 나의 좁은 시선에 걸어두고, 내 시선에 비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처럼 고집스럽게 잘라내었다.
그날 그 글도 그랬다. 언젠가 식어버릴 사랑,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일으킬 방법이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결국 ‘영원한 사랑’에 대한 나의 고집스러운 집착을 버리고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열어두기로 마음먹으려던 그때, 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부를 시작으로 김필 특유의 얇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모르는 애잔함을 선사하는 그의 목소리는 스펙트럼이 참 넓다. 어떤 곡을 부르던 그만의 감성이 나타나지만, 나는 많은 노래 중 악기편성이 적으면서 목소리 하나만으로 끌고 가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 곡이 딱 그런 곡이었다. 단단하지만 섬세한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하며 곡 특유의 인디 감성과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은 계절의 풍경을, 곧이어 후렴구에서는 누군가를 향하는 그의 진심이 들렸다.
'여전히, 익숙한, 그대로.'
노래 속 ‘그대’와 ‘나’는 긴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여전하고 익숙하구나 싶었다. 노래가 흐를수록 무척 아름답게 표현하는 노랫말에 나는 가사를 내려다보던 눈을 살포시 감고, 그대로 ‘음감 모드(집중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로 전환했다. 눈에서 귀로 감각을 전환하며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목소리에 집중하니 음악이 전하는 말을 더욱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2절을 지나고, 후렴을 지나 브릿지에 도입했을 때 어떤 문장이 나를 멈추게 했다.
‘움을 틔울 사랑’
그동안 꽤 많은 곡을 들었다고 생각했건만, ‘움을 틔운다’는 표현은 처음이었다. 어느 노래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신선함 때문인지, 아니면 놀라움 때문인지 귓가에 계속 이 문장이 맴돌아 잠시 노래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곡에서 말하는 ‘익숙함’과 ‘움(싹)을 틔운다’는 표현은 사실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이 없는데, 무엇이 새롭게 ‘생성’될 수 있을까. 곧이어 다시 생각해 보니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면 새로운 싹이 돋아나듯 익숙해 보이지만 그 사랑에도 여전히 움(싹)이 피어오를 수도 있겠구나, 또 그렇게 믿고 있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왜 내가 이 문장에 멈춰 섰는지 알게 되었다.
사랑을 몹시 단면적으로만 보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식어버린 사랑, 어쩌면 설렘과 두근거림이 사랑의 모든 면이라 여기며 꺼진 불씨는 다시 일으킬 수 없다는 나의 극단적인 태도를 돌아보며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랑에 어떤 것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생명력을 잃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 여전히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기에 그 사랑은 다시 움을 틔우며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 그 아름답고 멋진 바람을 듣고 나의 사랑에도 덧붙이고 싶어졌다. 나의 단적인 생각이 사랑의 전부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작고 아이만 같던 나의 사랑을 키워 점점 자라나게 한다면 노랫말 속 그 사람이 언젠가 내게도 나타나지 않을까.
노래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다시금 제목을 살펴보니 ‘처음 만난 그때처럼’은 어떤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마음을 지켜내겠다는, 혹은 그런 의지가 느껴져 나 또한 자그마한 기대 생겼다. 아직 오지 않은 ‘그 사람’과 내가 그리는 모습. 그 모습을 상상하며 살며시 미소 지어 본다. 다소 사랑에 비관적이었던 내게 또 다른 의미를 알게 해 준 이 노래는 꽤 오랜 시간 반복해서 듣고 싶어졌다.
날씨가 제법 춥다. 곧 찾아올 가을에 오랜 시간 곁에 있어 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이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 이 노래가 모두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을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움을 틔울 사랑이 되었는지 무척 궁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