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장을 열어 기억을 쓴다
어떤 날은 힘을 주어 쓰고
어떤 날은 휘갈기어 쓰고
어떤 날은 여백을 썼다
시간순으로 나열된
짧고 긴 문장들 틈에서 문득
희미해진 것들이 궁금해졌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한 줄, 한 줄 기억을 거꾸로 되감아
어제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제의 나는 절룩거리며 웅크렸고, 또 다른
어제의 나는 실소와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힘주어 뜯어낸 기억이
되살아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두 줄로 그어지거나 검게 칠해진
흔적을 보았다
기억의 구멍이라도 난 듯
어떤 말을 숨기고 싶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비밀을 지키는 이곳에서 조차 감추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길래 그토록 지우려 했을까
영영 없애버리고 싶었던 기억들 틈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돌아보니
그 어떤 페이지도 뜯어낸 흔적이 없다
그건 아마
어느 한 곳쯤엔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삶이 쓴 기억들을
잠시 멈춰놓은 시간이 흐른다
나는 숨을 고르며 기억의 겉장을 닫았다
2023.10.25
나의 새벽 이야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