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42.195km 첫 풀코스 도전.
4시간 51분 47초는 11월 2일 제가 첫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던 시간입니다.
풀코스를 달리는 시간은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와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누군가가 풀코스를 달린다고 했을 때, 저의 반응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동안 쉬지 않고 달리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그리고 다음으로 든 생각은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마라톤을 뛰는 내내 노래를 들으며 달리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노래를 부르며 달리는 분도 보았습니다. 42.195km라는 긴 거리를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채워 나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마라톤을 준비하며 호흡 조절하는 방법, 최적의 자세 등등을 터득해나갔습니다. 그 시간은 마치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무엇인지 고르는 것처럼 스스로를 탐구하고 알아가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달리는게 당연한 루틴이 되어갈 무렵, 서서히 나만의 42.195km를 어떻게 채울 지에 대해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설레게 하는건 달리는 내내 보이는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바깥 풍경을 보다보면 어느덧 내면의 풍경도 바라보게 되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첫 마라톤은 이어폰 없이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달리며 변화하는 풍경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그리고 내 내면을 음미하듯 찬찬히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마라톤 당일. 막상 달리다보니 서울의 가을 풍경은 생각한 것 보다 더욱 아름다웠고, 지역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동묘 앞을 지날때 사람들이 열심히 구제 옷을 고르는 걸 보았습니다. 구제 옷을 고르다말고 저와 눈이 마주치자 '마라토너 화이팅!'이라고 해맑게 외쳐주시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저를 웃게 합니다. 저는 서울 토박이입니다. 서울 곳곳에 내 추억이 묻어 있어 과거의 나를 만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서울 거리를 두 다리로 뛰어다니다보니 어릴적 소풍갔던 그곳, 친구들과 대학 시절 시험 끝나고 신나게 놀던 그곳을 만났습니다. 장소는 곧 사람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잊고 지냈던 과거 인연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30km정도 뛰었을 무렵, 아침마다 학교 출근을 위해 타고 다니던 같은 번호의 버스가 눈에 띄었습니다. 휴직을 결심했던 그 학기에 버스 안에서 왈칵 눈물을 터뜨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황이 점점 심해지던 그때가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한편으론 이젠 자유롭게 두 발을 굴러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마지막 종착지점인 올림픽공원에 다다랐을때, 저 멀리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가 보였습니다. 첫 풀마라톤을 출전한 딸을 응원하기 위해 추운 날씨에 계속 기다리고 있었을 가족을 보니 마지막 힘이 솟아났습니다. 현수막과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며 '정말 멋지다 우리딸'이라고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주로에서 응원받는 내내 저는 제 인생을 응원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고개를 떨구고 멈추고 싶을때마다 그때 받은 응원을 새기고 또 새기며 인생이라는 주로를 꿋꿋이 달려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