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며 달리기가 내게 알려준 것들
달리기는 아직도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공황장애가 한참 심하던 올 1월, 저는 10km 코스 마라톤 대회에 남편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혼자 뛰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전에 4번의 대회 경험이 있었지만 늘 남편이 함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극복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일 두려워 했던 순간은 출발 지점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마라톤 출발점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때, 가슴은 쿵쾅거리고 머리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눈을 감고 '할 수 있다. 이 순간도 다 지나갈거야' 하며 깊게 심호흡을 하며 출발 신호를 기다렸습니다. 이내 '탕'하는 출발 소리가 울려퍼지고 두 발을 굴러 앞으로 나아갈때 비로소 숨은 터지고 자유로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달리기로 조금씩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꾸준히 달리게 된 이유였습니다.
좀 더 제대로 준비해보라는 하늘의 뜻이었을까요?
남편과 장난삼아 넣어보았던 마라톤 풀코스에 남편과 제가 둘다 당첨이 되었습니다. 마라톤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jtbc 마라톤은 뽑기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떨어지더라도 풀코스 떨어진 사람이 되는게 낫지 않겠어?'라는 동호회 친구의 말에 솔깃해 재미삼아 넣어 보았던 것이 당첨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처음엔 '에이.. 내가 어떻게 풀코스를 뛰어'하며 주저했습니다. 당첨 소식을 마라톤 동호회 단톡방에 올렸고,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심한 호흡 곤란 증세로 버스도 못타던 때라 풀코스 마라톤을 뛸 수 있을지 망설여졌습니다. 망설이는 제게 남편은 '내가 옆에 있을 테니 함께 첫 풀코스는 동반주 하는거 어때?'라고 풀코스 동반주를 제안했습니다. 남편도 풀코스 경험은 없기에 두 초보가 함께 동반주를 하는 것은 사실상 모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달린다는 자체만으로도 완주 지점까지 서로 의지하며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25년 1월. 가을의 풀 마라톤을 향한 저의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풀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면서 제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휴직기간 동안 망가진 하루 루틴을 건강하게 돌리게 되었습니다. 일어나서 간단히 세수하고, 바나나와 두유를 챙겨먹은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집근처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5km 달리는 것도 겨우 채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다보니 3개월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7km,8km,10km는 거뜬히 해내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서먹했던 러닝 동호회 사람들과도 풀 마라톤을 계기로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점이 탄로날까 동호회에 나가서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기를 주저했습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저를 제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풀 마라톤에 당첨되었다는 걸 듣고 누구보다 축하해주었던 분들은 바로 동료 러너들이었습니다. 저와 남편이 함께 마라톤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진심으로 조언해주고 도와주셨습니다. 10km,20km,30km의 장거리 코스를 아무런 대가없이 함께 달려주었습니다. 함께 달리며 자세와 호흡등 부족한 점들을 옆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었습니다. 남편이 줄곧 불안해하는 저에게 습관처럼 하는 '마음이 있으면 방법은 있어'라는 말이 점점 실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찾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라톤을 준비하며 '현재에 감사하기'라는 개념적으로만 알던 행복해지는 방법을 점점 체득해나갔습니다. 어느날은 다리가 무거워 달리기 싫은 날도, 잘 달리는 분들 사이에서 뒤쳐지는 내 모습이 보기 싫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예쁜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달리는 분들의 응원이 들려오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루 하루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하나하나 기록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멀리했던 sns도 새로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나를 꺼내어 보여도 괜찮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기 시작한 건 제게 큰 변화였습니다. 새로 러닝 계정을 만들어 매일 운동하는 모습을 기록해 나갔습니다. '대단해', '잘 하고 있어'라는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응원의 댓글을 여러번 읽으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2025년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매일 같이 달리던 탓에 몸은 그 어느때보다 새까맣게 탔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안으로 숨어 들지 않고 세상 속으로 나아갔다는 증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