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찻잔에서 각자의 차를 우리며 사는 우리들

차와 찻잔에 담긴 사색

by 나란달

몇 년 사이, 내 생일선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차'였다.

푹푹 찌는 한여름날, 차갑고 달달한 아이스크림도 아닌 연이은 차 선물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내가 차를 좋아하는걸 어떻게 알았지?'

차를 좋아한다고 굳이 이야기 하고 다닌 적이 없는데도 마음을 읽은 듯 다양한 차와 머그컵을 선물해주는 친구들이 참 신기하기만 했다.


며칠 후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그 궁금증은 풀렸다. 내 일상은 항상 차와 함께였다. 조금만 관심 있게 지켜봐도 알 수 있었다. 30살이 넘어 시작된 늦깍이 대학 시절은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불청객을 만나고 1년을 채 채우지도 못한 채 중단되었다. 꽤 긴 시간 동안 동기들을 줌 화면 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화면 속에 비춰지는 나는 쉬는 시간이면 사라졌다가 늘 달그락 소리를 내며 찻잔을 들고 와 티백을 우리고 있었다고 한다. 차를 우리고 홀짝홀짝 마시며 수업을 듣는 모습이 매일같이 반복되다 보니 동기들은 어느새 오늘은 무슨 차를 마시나 궁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광고 아닌 광고를 한 덕분에 찬장에는 생일때에 맞춰 하나둘씩 찾아온 머그잔과 찻잎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찻잔 위로 둥둥 선물해준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 마음들이 모여 더 따스해진다.


나는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 언제인지 짐작도 못할 만큼 차에 점점 스며들었던 것 같다. 익숙한 듯 하루에 한 잔씩 꼭 차를 우려 마시는게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이다. 바쁠 때는 티백을, 여유로워진 요즘에는 찻잎을 다기에 우려 마시는 것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차를 우리며 책을 읽고 글을 적는다.


차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슬프게도 커피를 좋아하지만 마시지 못한다. 이른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으로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카페인에 취약하다. 카페를 가면 왜 항상 시그니처 커피만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 왔는데 캐모마일이라니, 시그니처 커피를 마셔야지!'라는 친구의 볼멘소리는 늘 덤으로 따라온다. 속 모르는 친구의 말을 뒤로 한 채 메뉴판 속 메인을 당당히 차지한 화려한 커피에게서 아쉬운 눈길을 거두고 한 귀퉁이에 겨우 자리한 논 카페인으로 향한다. 나는 그렇게 비주류 '차'들과 친해졌다.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있던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마치 메뉴판 속 귀퉁이를 겨우 차지한 논 카페인과 같은 신세였다. 숙소 통틀어 검은색 머리와 눈을 가진 사람은 나 뿐이었다. 고독함 때문이었을까. 심한 몸살을 유독 오래 앓았다.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홀로 분투하던 나에게 똑똑 문을 두드리며 찻 잔 하나가 찾아왔다. 다정한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건네준 레몬 진저 티 한 잔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직도 레몬 진저 티를 마시다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향수병과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감기를 낫게 해준 고마운 차 한 잔.


그 이후로 나의 하루는 늘 찻잔과 함께였다. 추운 계절이면 외로움을 유독 잘 느끼는 내게 마음을 데워주는 존재.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치는 조급한 성미를 늦추어주는 고마운 친구. 차는 천천히 우러나며 그 모습 자체로 조금은 늦추어 가도 된다고 다독여준다. 차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 차를 품고 있는 다양한 다기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나만의 번듯한 찻잔과 다기를 가져보는 그 작은 사치를 늘 꿈꿨지만 머뭇거려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늦깎이 수험생이 되며 오래된 친구들과 멀어지고, 외로운 날을 버티던 나날에 못난이 다기 하나를 만났다. 우연히 검색에 검색을 거치다 작은 흠집으로 B급 처리된 다기 세트를 하나 발견한 것이다. 그 자그마한 흠집은 내게 문제가 될 리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다기를 만났다. 도예가의 실수가 나에게 더없이 큰 위로의 시간을 만들어주었다는 걸 이 도예가는 알까? 알려줄 수 있다면 알려주고 싶다. '당신의 실수가 가난한 수험생에게 더없이 큰 위로를 주었어요.'라고 말이다.


언젠가 다기를 만드는 도예가가 쓴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서 만든 것들은 티가 난다고. 그리고 작업을 하며 느낀 그 마음을 분명 사용자들이 느끼게 된다고. 그렇다. 분명 내가 가진 못난이 다기는 도예가가 즐겁게 만든 것임에 분명하다.그러니 흠집마저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만의 다기가 생긴 이후로는 집에 찾아온 친구들에게 직접 우린 차를 대접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찻잔 하나를 두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던 때가 떠올랐다. '찻잔은 인생을 담는다.'라는 표현이 와닿은 건 이 경험 때문이리라. '차를 마신다'는 건 마시는 행위만을 일컫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찻잔으로 인생을 나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초대해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따라주며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어주고 싶다. 내 삶에 울림을 주고 위안을 준 찻잔은 분명 누군가의 한 조각 인생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여러분은 인생에 어떤 마음을 우려내고 있는가'. 친구들을 초대하면 꼭 이 질문으로 차담을 시작해야겠다. 내일은 또 삶이라는 잔에 어떤 차를 우리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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