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로 삶의 일시정지를 누르게 된 30대 여자가 달리기를 시작하기까지
공황장애를 겪으며 나날이 제 세상은 좁아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어지러움증인줄만 알았는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대중교통을 타고 내리는 일조차 버거웠습니다. 자연스레 주변인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고, 우려스러운 그 표정을 보는것이 버거워 만남을 피했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들을 한 번 만나려면 사람이 북적거리는 서울 한복판으로 나가야만 하는데 그 소란스러움이 공황을 겪고 있는 저에게 너무나 큰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제 상황을 일일이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스스로 숨어들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점차 어려워졌습니다. 몇 차례 망설이다 결국 휴직을 신청하고 돌아 오던 날에도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잠깐 쉬면 될 일인데 오바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던 교직 생활인데 2년만에 휴직을 하게 되다니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휴직한 다음날에도 텅빈 그 시간들이 적응이 안됐습니다. 새벽 6시 30분, 종종 걸음을 하며 출근길을 종횡 무진하던 지난날의 시간이 하루 아침에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릴없이 tv를 보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바람이라도 쐬러 나간 집앞 공원에서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오? 오늘 일 안나가?무슨 일로?'라는 살가운 질문에 마땅히 떠오르는 핑계가 없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고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대낮에 돌아다니는 분들 사이에서 제 모습은 튀기만 했습니다. 분명 쉬면 낫는다고 했는데 1주일이 지나도 , 2주일이 지나도 호흡은 여전히 가쁘기만 했습니다. 가슴 중앙에 묵직한 돌이 얹허져 있는 것만 같은 그 느낌. 자다가도 몇 번씩 깨어나 멍하니 어두운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시원하게 숨을 쉬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았습니다. 떠올려보니 러닝이 취미인 남편이 엉덩이 무거운 고시생이었던 제손을 잡아 끌어 하천을 함께 달려주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러닝이야' 볼멘 소리를 하는 저에게 '일단 뛰어봐' 하며 남편은 제 손을 이끌곤 했습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노을이 질 무렵이면 학교 근처 하천을 뛰게 했습니다. 하루종일 구부러져 있던 등이 펴지고, 작은 모니터안에 멈춰있던 시선은 반짝이는 물결위로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30분 남짓의 달리기가 끝나고 마시던 이온음료의 짭짤 달달한 맛은 저에게 큰 위로였습니다. 열어본지도 오래된 플래너를 열어 참으로 오랜만에 일정을 적어보았습니다. '아침 달리기'. 그리고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적기만 할뿐 뛰러나갈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집 근처 공원에 나갔습니다. 남편과 함께 달려본 기억밖에 없는 저는 혼자 몸풀기 운동을 하는것도 쭈뼛쭈뼛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구석에서 대충 어디서 본 몸짓을 흉내내며 몸풀기를 한 후, 조금씩 조금씩 발을 굴러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여분 달렸을 뿐인데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땀방울 위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아 시원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함. 달리기와 제가 일대일로 처음 만난 그 날의 느낌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렇게 저는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