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 그리고 경계

by 록유


'상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친구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으며 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딴 애랑 놀지 뭐.'라고 투덜대던 아이. '순대'라는 아이가 있었다. 다정하고 마음이 넓고 친구에게 늘 양보하고 '난 상관없어. 괜찮아.'하며 용서하는 아이.

<딴 애랑 놀지 뭐. 글 안선모, 도서출판리젬>

3학년 수업이었는데 이기적인 아이가 마음 따뜻한 아이를 통해 진정한 우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의 동화책이다. 그러한 주제로 수업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책 내용 중 상우가 급식 시간에 자기가 먹기 싫은 반찬을 순대 발밑에 버리게 되고, 그래서 순대가 대신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도 순대는 상우를 욕하는 아이들 앞에서 '난 상관없어. 괜찮아.'하며 친구를 감싸준다. 이런 행동을 하는 순대의 성격이나 느낌을 이야기하라는 시간이었고 기대되는, 굳이 답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 대답들은 '마음이 넓다.' '친구를 배려할 줄 안다.' '이해심이 있다.' 이런 류의 것들이었다.

밤늦게까지 책을 보다 자라고 하는 엄마 때문에 몰래 침대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다 시력이 나빠진, 똑똑하고 독서를 아주 좋아하는 수하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순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상우가 거짓말을 했는데 순대가 대신 벌을 받으면 상우는 또 거짓말을 할 거예요. 친구가 잘못을 했을 때는 솔직하게 얘기해서 그 친구가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그러면서 뒤이어 나를 얼얼하게 하는 한 마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친구들과 다른 자신의 대답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나에게 칭찬 섞인 동조를 바랬던 것일까.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해야만 하고, 그런 것이 정해져 있다 생각하고 살아오다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가 '좋은 게 좋은 거지.'로 낙찰을 보고 살아가는 나에게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황희 정승의 일화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당에서 하인들이 싸우고 있었고, 황희 정승이 자초지종을 듣더니 한 하인 말이 맞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하인이 뭐라고 하자 그 하인 말도 맞다고 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부인이 '둘 다 맞다고 하면 도대체 당신은 누가 옳다는 것이오?'하니 '당신 말도 맞소'라고 대답하는 내용이었다. 이 일화가 초등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함이었는지 몰랐다. 선생님은 그냥 황희 정승이란 훌륭한 재상을 소개하며 이런 일화가 있다 정도로 수업을 하셨다. 그 때 '이래도 되나? 어떻게 이런 게 말이 되지?'하며 궁금해 했지만 선생님께 질문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듯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목적없는 움직임'으로 그 현상을 단순히 분석하는데만 그치는 것과 같은 건지도..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무책임한 학문이 있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독서교육을 하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옳고 그름이 분명할 때는 그 선택의 여지란 있을 수 없지만 그 경계에 걸쳐있을 때, 선택이 모호해질 때 그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뜻밖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