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첫 월요일,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중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중국인으로 한국에 20년 동안 살면서 출입국 사무소는 많이 갔었는데, 오늘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갈 일이 많지 않았던 중국 대사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미 봄이 접어들고 있지만, 햇빛이 가려진 대사관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은 여전히 쌀쌀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 김에 옛날 살던 동네를 한번 들러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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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집은 북촌 근처에 있었다. 자녀 세 명을 키우면서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맞벌이하면서 드디어 힘들게 모은 돈으로 옛날 한옥 한 채를 샀다. 남편에게는 사랑스럽던 집이지만 아파트에 살던 나에게는 초라해 보였다. 세 사람만 동시 앉아도 더 이상 자리가 없던 비좁은 방 몇 개가 있었고, 유리문으로 방과 방이 나뉘어 있었고 천장도 서서 바로 손이 닿을 만큼 낮았다. 옆방의 TV 소리나 통화 소리도 잘 들릴 정도로 방음이 안 됐으나, 다행이 그때 당시 나는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다른 가족들이 말할 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혼자 있는 나는 매우 답답했다. 그래서 남편은 나를 끌고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 그 이후도 종종 나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도 때우고, 책은 읽지 못하지만, 자습실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마당에 나가 멍때리곤 했었다.
과거를 회상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언덕 앞에 나는 서 있었다. 이 언덕은 경사가 아주 급해서 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처럼 미리 각오하고 집을 나서곤 했다. 언덕을 넘어 도서관 대문에 들어가자 눈앞이 탁 트였다. 3층 된 도서관 건물 앞에는 크고 길쭉한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라고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까지도 나는 분수대에 물이 찰랑찰랑 차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단지 머리속으로 물이 차 있는 것을 상상할 뿐이다. 그때 그 비어 있는 분수대를 보며 마치 자신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와서 알아들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고, 내 머리 속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지식도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세월이 흘러갔고, 나는 이제는 한국 생활에 적응했고 내 머리에도 한국과 한국어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 분수대는 왜 한결같이 변함없을까’ 생각하면서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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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건물로 들어가려면 분수대 양쪽에 있는 길을 거쳐야 한다. 길을 따라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서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쓸쓸해 보인다. 길의 끝자리에는 커피, 율무차, 코코아를 종이컵에 내주던 자판기 대신 병과 캔으로 된 각종 음료수를 파는 자동판매기가 있다. 카페가 흔치 않은 20년 전에는 사람들은 주로 길거리 이런 자판기 믹스커피를 뽑아 즐겨 마셨다. 그때는 남자들이 자판기 앞에서 믹스커피를 뽑아 커피와 함께 담배를 자주 피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내에서 다소 찾기 어려운 풍경이 되었다.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나는 그제서야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옛날에 자주 다녔던 도서관 구내식당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곳에 왔다고 자신만만해 하다가 막상 도서관 건물 안에서 들어섰다가 길을 잃었다.
다행히 도서관에 일하는 여성분의 도움으로 드디어 주 건물과 연결된 별관의 구내식당을 찾았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분명히 옛날과 똑같은 식당이 기분 탓인지 오늘은 더 커 보였다. 홀 안에 식탁이 몇 십개나 있어도 식탁마다 다 사람 한두 명은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얼른 앉을 자리부터 잡고, 그 다음에 주문하러 갔다. 20년 전 식당 매점에서 식권을 판매하는 아저씨를 대신해 이제는 반짝반짝 빛나는 자동판매기가 친절하게 주문받고 있다. 메뉴는 몇 가지 밖에 안되지만, 처음이라서 나는 한참 동안 헤맸다. 맛있어 보이는 것이 많았어도 나는 옛날에 여기서 자주 먹던 우동을 또 고르게 되었다. 그때 당시 매운 음식에 적응하느라 지친 나의 위에게는 우동이야 말로 중국 음식과 가장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때 그 맛이 날까?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그 우동도 역시 변했을까?
호출 번호판을 보니 주문이 밀려 한참 기다려야 될 모양이다. 의자로 돌아가서 기다리는 동안 20년, 한국에서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 경험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에 막 들어왔던 도서관 안의 문맹이 도서관 안의 글쓰기 취미자로 선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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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20년 전 그때, 난생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글을 읽지 못해서 지하철을 쉽게 타지 못하고 나가지도 못했다. 게다가 도서관 서가에 빽빽하게 꽂쳐 있는 도서들이 내 눈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외계인 암호와 같았다. 다른 행성에 불시착해 홀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매일 간단한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다 보니, 왠지 나는 멍청한 사람 같았다. 그때 외롭고 서글프던 나는 항상 우동을 먹고 분수대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그때 가을이 점점 깊아지자 나뭇잎은 노란색으로 변하고 하나둘 나뭇가지를 떠나 바람을 따라 떠돌아다니다 허공에 몇 바퀴를 돌고서야 조용히 땅에 정착했다. 땅에서 점점 쌓이기 시작하는 노란 나뭇잎들은 마치 고향에 대한 나의 그리움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 고향이 그립듯 고향을 방문하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언제부터 인가 생기기 시작했다.
번호판 알림이 울렸다. 어서 식당 창구에 가서 우동을 받아왔다. 젓가락으로 우동을 입으로 집어넣어서 후르르 먹었다. ‘맛은 완전 똑같다’ 마음속에 감탄이 나왔다. 세상도 변해버리는 데 ‘우동은 어떻게 아직도 맛이 똑같냐’고 의아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우동은 우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월과 다르게 늘 우동은 우동 맛을 동일하게 나에게 전해 준다.
하지만, 분명 도서관 문맹자가 먹던 그 우동과 가슴이 주는 맛은 다른 것 같다. 추억 맛에서 조금 다른 추억의 맛이 추가 되었다. 오늘의 우동은 자신 있게 글을 쓰고 읽는 자가 누리는 보람의 맛이다. 이루고 나서 다시 먹는 이 우동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추억 맛을 지금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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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는 똑같지만, 마음은 따른다. 나에게는 더 이상 우동에서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우동에게 어려움을 이기고 나서 얻은 기쁨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