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Aug 05. 2023

여성들이 선호하는

플라뇌르

여성들이 선호하는         

 

  유튜브를 보면 ‘여자들이 선호하는 패션’이라든가 ‘여자가 설레는 행동’ 같은 제목의 ‘여자들이 좋아하는..’으로 시작하는 주제의 영상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오호라, 그런 것이 일일히 정해져 있단 말이지. 하고 들어가 보면 ‘피부 관리하고 어깨 골격을 키우세요'라고 한다거나 ’포근해보이는 니트를 입으세요’라는 어쩐지 김빠진 맥주 같은 소리만 한다. ‘호감을 주는 행동 강령’ 같은 것도 있는데 ‘무슨 말이든 공감하고 사소하게 배려해줘야 한다’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과 ‘마초적인 매력으로 러프하게 접근해야 한다’ 라는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모양이다. 음, 여성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참고로 나는 대학생 시절 피부도 관리하고 근육도 키워보고 포근해 보이는 니트도 구매해봤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역시 대학교에 들어오면 남자들은, 적어도 나는, 머릿속에 귀여운 여자애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아주 시골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에 놀거리도 별로 없거니와 교수나 학생 따질 것 없이 학업에 아무런 열정 같은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생각 없이 술 마시고 연애하고 놀기에 최적의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말하고 보니 카메라만 없다 뿐이지 요즘 유행하는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그 한정되고 한적한 산골에 둘러 쌓여서 넘치는 젊음을 발산하며 열심히 짝을 찾았다. 뭐 그것 말고 달리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어쩌면 인생이란 알게 모르게 미리 정해진 일련의 수순을 따르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연애를 하고 나이가 들면 ‘슬슬 취업도 했고, 안정감도 생겼겠다, 결혼 말고 딱히 할 것도 없는데’ 생각하고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할 일‘을 찾은 몇몇 사람들은 그만큼 결혼 시기를 늦추고 다른 일에 몰두하며 살아간다. 군대를 미루듯 순서를 조금씩 유보해 가면서.     


  어쨌거나 생각해보면 ’그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다'라는 것은 여러모로 속 편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배스킨라빈스’만 들어가면 사고가 멈추고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나같은 사람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선택지가 늘 도움이 되곤 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역시나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낮에는 커피를 마시면서 연애 생각을 하고 밤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 둘 술집에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모여서 뭘하느냐. 역시 술을 마시며 주구장창 연애 얘기만 한다. 현재 만나는 사람 이야기 아니면 전에 만났던 사람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미래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여자들이란 존재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로 이어졌다. 친구들은 저마다 페이스북과 커뮤니티에서 그러모은 지식이나, 형누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마치 자신의 식견인 것처럼 강변을 토해내곤 했다. 그리고 강변을 토하듯, 거나하게 취해서 토를 하고 허정허정 들어와 잠드는 일상을 반복했다. 어쨌거나 참 속 편한 시절의 이야기다.     


  마치 대학생 시절의 우리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것처럼, 요즘 어린 남자들은 유튜브에서 그런 것을 얻는지도 모른다. 유행하는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 깔끔하게 정리한 코털과 수염 레이저 제모. 근육을 키우고, 에어팟을 사고, 감성 어린 카페도 찾는다. 기념일에 센스있는 선물을 꺼낸다. 비비 크림과 자연스러운 립밤을 바른다. 등등의 지식들. 역시 ’삶에는 일련의 순서가 저마다 정해져 있다'라는 나의 소소한 편견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여자들이 남자의 어떤 특징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키 크고 잘생기고 돈이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포멀한 옷차림과 캐주얼한 옷차림’, ‘짧은 머리와 긴 머리’, ‘흰 피부와 검은 피부’ 중에서 어떤 특성을 선호하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조언들이 실제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래도 몇 가지 살아오며 내가 경험적으로 배운 것은, 여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여성들이 좋아하는 행동 지침‘을 모조리 따라하는 남자는 결단코 싫어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른다. 최신 유행을 너무 따라하면 되려 촌스러워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걸까.     


  오늘의 결론. 그래서 여자들은 어떤 남자의 행동을 좋아하는가. 결론을 내리려고 보니 어쩐지 길을 잃은 심정이다. 마치 다시 20대 초반의 무지렁이 남자애로 돌아간 것처럼. 오히려 이렇게 표현하면 더 편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데이트 상황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우리 데이트의 기본적인 전제는 ‘내가 책임진다’라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예컨대 무장 강도를 만나거나 언덕에서 거대한 돌덩어리가 굴러 내려 온다거나 하는 그런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우선 내가 그 상황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물론 데이트 중에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본 전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싸움도 잘 못하고 순발력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도 둘 중에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혹은 둘 다 죽는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내가 먼저 죽는다. 이러한 ‘심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작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감정이나 호감의 문제가 아니다. 애인과 다투고 헤어지기로 해서 마지막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바래다 주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에게 남자답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유행하는 옷을 사고 코털을 깎고 포마드를 바르는 그런 행동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은 그저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이렇게 말만 들으면 무척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런 남자를 어떤 여자가 싫어할까 싶다.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 인생을 헌신하는 부모가 자주 그렇듯, 이런 마음 가짐을 지닌 남자들은 분명 어딘가에서 ‘남자로서 대우’를 철저하게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는 군생활을 소방서에서 했는데 거기에도 이런 ‘대우’를 원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마치 ‘나는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니까 이러저러한 부분에서는 막 대해도 괜찮잖아’ 라는 식의 인상을 종종 강렬하게 받았다. 직장 내의 온갖 부조리와 은폐. 약자에 대한 억압. 성에 대한 인식이나 음주 문제에 관한 집단적 관련된 해이함은 그야말로 ‘생명을 구하는 만큼’이나 끔찍한 수준이었다. 뭐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면 문제가 될까봐 여기까지만 말하겠지만. 혹 ’어둠의 남성성‘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결국 진정한 남자다움이란 이런 강렬한 에너지의 총체를 부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좀 더 그럴듯하고 근사한 방향으로 맘껏 발산해 낸다는 뜻은 아닐지. 역시나 건실한 하나의 남자로 살아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모쪼록 다들 힘을 내봅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좋아해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철저하게 단절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