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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5. 2023

철저하게 단절된

프라뇌르

철저하게 단절된          


  한 호텔 스위트 룸에서 마약 사범을 검거했다. 도합 60명으로 그들은 모두 남성이다. 뭐, 거기까지는 조금 ’특이하다'정도일 테지만, 충격적인 것은 그 60명 전원이 에이즈 환자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에이즈도 불치의 병이 아니라지만 그렇게나 좁은 장소에 에이즈 환자 60명이라니. 한여름 찜통 더위에 좁은 교실에 갇혀 수십명의 남고생과 레슬링을 한다. 정도로 끔찍하게 들린다. 더군다나 에이즈는 코로나처럼 전염성도 없는데. 어쩌면 이들은 ‘에이즈 환자 부흥회’ 같은 곳에서 만난 것일까. 아니면 그 마약 파티에서 우연히 몇몇 에이즈 환자가 있었고 그 환자들이 사용한 주사기를 모두 공유하다가 일시에 감염되어 버린 걸까. 그런데 그정도로 비싼 마약 소지자들은 다들 개인 주사기를 사용하고 처분했을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다. 만약 그들이 무언가, 주사기든 성관계든, 공유했다고 할지라도 이렇게나 100퍼센트 확률로 빠짐없이 에이즈에 걸리다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실로 엄청난 확률이다. 으으, 만약 누군가 나에게 마약 중독자가 될래 아니면 에이즈 환자가 될래. 하나만 선택하라고 해도 덜덜 떨리는데 두 가지 모두라니 상상만해도 한줄기 식은땀이 흐른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나도 주변에 마약을 해본 사람이라면 꽤나 알고 있다. 얕게는 태국에서 ’해피 벌룬‘을 몇 모금 해본 정도, 깊게는 초각성 약물을 사용해 본 사람도 있다. 보통은 외국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대마초를 접하고 ‘오호 이거 신기한데!'정도로 끝나는 반면 몇몇은 국내에 들어 와서도 대마초를 구입하고 방에서 몰래 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처럼 인간 관계가 그다지 넓지 않고, 비교적 평탄한 인생 단계를 착실히 밟아온 사람조차 이런 상황인 것을 보면, 전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마약 경험이 있을지 짐작 할 수 있다. 양극단으로 치달으면 그 수는 등비급수로 늘어날 것이다.     


  마약류에는 꽤 여러가지 층위가 존재한다. 층위는 쾌락, 환각, 중독의 정도를 기준으로 하나의 표에 간단히 구분 지을 수 있다. 예컨대, 대마초는 ‘쾌락 보통, 환각도 낮음, 중독성 낮음’ 헤로인은 ‘쾌락 최대, 환각 높음, 중독성 위험’ 뭐 이런 식이다. 이 표에 따르면 LSD나 대마초 같이 비교적 라이트한 마약류는 니코틴이나 알코올 같이 합법적인 기호 식품보다 그 중독성과 위험성 면에서 몇 배는 더 낮다. 결국 같은 마약류라고 할지라도 그 격차는 샴 고양이와 바바리 사자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고양이과지만 모든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얼마전 SNS에 화제가 된 미국의 ‘좀비 마을’ 영상이 있다. 우리에게는 크림 치즈로 친숙한 필라델피아의 마약 거리 모습이다. 별칭은 ‘헤로인 월마트’. 그만큼 일상품을 구매하듯 마약 ‘펜타닐’을 구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파킨슨병 환자처럼 기괴한 포즈로 길거리에 남겨진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불쾌한 행위 예술 단체라고 판단할 지도 모른다. 카트를 끌던 중년의 여성은 신의 계시를 받아 엄숙히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고개를 처박고 한치 미동도 없다. 어떤 젊은 여성은 일어나려던 참인지 앉으려던 참인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나 지나가는 길고양이 정도. 마치 외계인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영혼을 잠시 뽑아낸 것처럼 사람들은 제자리에 정지하고 멈춰 버렸다. 그들의 영혼은 몸 밖에서 안절부절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광경을 이해하기 위해 기껏해야 영화에서 봤던 ’좀비‘라는 표현을 쓰지만, 차라리 그것이 정말 좀비였다면 이토록 경악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나에게 개인이 아니라 마비된 사회 덩어리의 축소 버전을 보는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미국 사회에서 이렇게 급속도로 펜타닐이 퍼지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제조 단가가 무척 싼데 비하여 그 효과는 끔찍할 정도로 극명하기 때문이다. 국제 마약 분류표에서 단연 최악의 마약으로 구분되어 있는 ‘헤로인’과 비교해도 약 100배 강한 효과(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각하지만)를 지닌 마약으로, 고작 코딱지만한 양으로도 충분히 한 사람을 치사량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정도 수준의 마약은 ‘약물’ 이라기 보다는 ‘독극물’로 봐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그 영상 속의 사람들은 아마도, 고작 펜타닐 한 두 알갱이 정도를 흡입하고, 그 여생을 말끔하게 끝장내 버렸다.     


  애초 그들에게 마약을 건네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중 매체에 비춰지는 마약 산업 종사자들은 어쩐지 하나같이 냉철하고 스마트한 사업가의 모습이다. 사회 전반의 흐름을 읽는 감각도 훌륭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이성과 감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최적의 루트를 찾아낸다. 거기다 과감한 결단성도 갖추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파는 것이 ‘마약’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서 멋진 성공을 이루지 않았을까. 감탄하게 될 정도다. ‘수리남’도 마약 산업에 대한 드라마로, 역시나 무척 짜릿하고 재밌었다. 드라마를 잘 안보는 나도 우연히 보기 시작했다가 끝까지 후루룩 면발을 마시듯 끝까지 봐버렸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그런 의문을 가졌다. ‘이 사람들은 전부 마약업 종사자들인데, 정작 아무도 마약은 하지 않네’ 어쩌면 마약 소비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제작사에서 일부러 그런 장면을 빼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라식 수술을 하는 안과의가 없는 것처럼 마약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절 마약에는 손대지 않는 업계 철칙이라도 있는 걸까. 그것이 무척 궁금하다. 생각해보니 영화 ‘에스코바르’에서 조차 직접 마약은 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국제 지침이라도 있는걸까. ’마약을 팔되 하지는 말자'이런 식으로. 정말 그렇다면 살면서 들은 원칙 중에 가장 비겁하고 순수하게 악한 말이다.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약을 구매하고 또 판매하고 있을까. 펜타닐을 하고 삶이 망가진 이들과 스위트 룸에 모여서 마약 파티를 하고 에이즈에 걸린 남자들 그리고 어둠의 통로를 이용해 타인의 인생을 좀먹고 망가뜨리는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상상해봤자 나는 그 실마리조차 잡아낼 수가 없다. 어쩌면 마약 범죄와 연관된 이들의 사고는 그렇지 않은 이들과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근원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보며 ‘사회 암적인 존재'라거나 ’쾌락만 탐하는 쓰레기'라는 생각은 사실 조금도 들지 않는다. 불쾌감과 분노보다는 불쌍한 감정이 먼저 생긴다. 혹자는 연민할 필요도 없는 범죄자일 뿐이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당연히 법을 어겼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고,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 계획이 무엇이었든 그들은 결국 자발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고 만 것이니까. 그렇지만 솔직히 마약 소비의 폐해란, 나에게는 서울 빌딩값을 논하는 일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그들이 마약을 했고 거기에 중독이 됐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 사회적으로는 어떤 해악이 있는지 느껴지는 바가 없다. 마약 중독자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은 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철저하게 단절된 개인의 문제로 느껴진다. 그들은 결국 산소가 부족한 방에 갇힌 것처럼, 스스로 폐쇄된 회로를 공회전하며 스스로 마모되어 망가지고 있을 뿐이 아닐까. 그런 삶이란, 역시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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