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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6. 2023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플라뇌르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은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을까 나쁜 쪽으로 바뀌고 있을까’라는 것은 언제나 전세계인의 논쟁거리다. 같은 현상과 결과를 보고도 이정도까지 정반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순전한 감탄만 나온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 만약 내 의견을 묻는다면 ‘어느 날은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끝없이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라고 대답할 테지만, 이런 것은 아무도 정당한 대답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래도 조금은'이라는 조건이 따라붙지만, ’나쁜 쪽‘으로 마음이 기울 때에는 ’이견의 여지 없이'라는 수식이 붙는다는 것이다. 흐음, 그건 왜 그런 것일까. 고민해볼만한 문제다.     


  어쨌든 이렇게 우유부단의 끝인 나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쪽으로 세상이 바뀌면 좋지 않을까'하는 점은 있다. 거기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는 지고함 따위는 없지만, 삶이 조금 더 편리하고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소망 정도는 있다. 대부분 이런 상상들은 나비처럼 폴폴 어디론가 날아가 사라지지만, 가끔은 의식의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확고한 의견으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리고 나의 뒤틀린 의식 속에서 자라난 이 왜곡된 아이디어가 언어로 표현되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게 만든다. 마치 나의 뒤틀린 의식 상태와 각도를 맞춰보려는 것처럼. 최근에 내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을 한가지 적어 볼테니,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들어보면 좋겠다.     


  먼저 이른바 ’윤석열 나이’에 대해 한 가지 의견을 내고 있다. 6월 28일 자로 대한민국은 생일 기준의 국제 표준 나이를 사용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그것을 ’윤석열 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 살에서 많게는 세 살까지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아직 사람들은 일순 변화한 나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상태인 모양이다. 주변에서는 ’나이가 줄었으니 뭐 그런대로 기분은 좋지' 하는 가벼운 입장으로, 살면서 겪는 하나의 소소한 에피소드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평소에 나이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이가 줄건 말건 거기에 별 감흥은 없다. 그렇지만 나이라는, 삶에서 보통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국가의 정책 하나로 이렇게 손쉽게 줄어들거나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에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니까 나이란 개인에 포함된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임의적인 요소일뿐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중세 시대 그레고리력이 처음 도입됐을 때 사람들은 이런 비슷한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 지금껏 내가 믿던 날짜의 개념이란 하루 아침에도 뒤바뀔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년에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기분이다! 모두 한 살씩 줄이세요!’ 라거나 ‘앞으로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 나이를 먹지 않는 법을 제정하겠습니다!’ 라고 통크게 선언할지라도 원칙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일은 물론 없겠지만.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바란, 이런 탁상공론이 아니라 좀 더 실리적인 방향의 사견이다. 바로 ‘일정한 금액을 내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나이를 줄여주자’ 라는 의견이다. 나이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 부자가 많으니까, 일정한 금액을 내면 마치 세금 감면처럼 나이를 줄여주는 공인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한 해'당 얼마를 부과해야 할지, 개인적으로는 3억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정부와 국회에서 정하면 될 일이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나이가 줄건 말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심지어 거금까지 내놓는다면 다들 딱히 이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재벌 아저씨들은 ‘기왕 해야 하는 기부, 나이까지 줄여준다니'하며 은근 기뻐할 것이고, 연상연하 부부중에는 ’나도 하루쯤은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어'라고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렇게 자발적으로 발생한 기여금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책에 활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의견이라서 몇몇 지인들에게 말해봤지만 다들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늘 그렇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콧방귀를 뀌고 무시한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진지하다. 대학에는 기여 입학제도 있는 마당에 나이 기여제가 있다고 그게 뭐 대수일까. 라고 조그맣게 외쳐본다.     


  그 외 의견으로 나는 사람의 나이를 ’심혈관 나이‘로 개정하자는 의견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현대 사회의 나이란 사회적인 나이가 먼저 앞서가면 뒤이어 신체적인 나이가 그것을 따라잡는 형국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싱크로가 안 맞는 상태라는 소리다. 그런 작은 균열은 과거부터 점점 벌어져서, 한 세기 전의 서른 살과 지금의 서른 살에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의 간극이 벌어져 있다. 실제 100년 전의 소설을 읽으면 서른을 중년의 나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나는 신체적인 나이에 맞춰 사회적인 나이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나이의 개념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편하여, 나이가 지녔던 삶과의 밀착성과 적합성을 다시금 되찾자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나는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아들고 생각했다. 그래, 심혈관 나이를 공식적으로 책정하면 되겠구나. 처음엔 재미로 떠올렸는데, 생각하다보니 꽤나 그럴싸한 이론이었던 것이다. ‘심혈관 나이‘란 건강 상태에 따라서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라는 개념은 종래의 수동적인 개념에서 능동적인 개념으로 변화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나는 젊은 사람이 될 수도 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체력 부족과 만성 피로를 호소하며 ’나는 나이가 들어서 이제 끝났어'라며 단순하게 나이 탓으로 지레 포기해버렸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책임감을 느끼고 건강을 위해 새삶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새해가 시작되면 친지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다같이 건강 검진 결과를 보면서 ‘올해는 자네가 형님이네’ 라고 한다거나 ‘내년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어려져야지’ 라고 덕담을 주고 받는 훈훈한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비행 청소년들은 매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셔서 이른 나이에 성인으로 인정돼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개인적 자유라면 자유겠지만.      


  만약 내가 주장한 예의 두 가지, 심혈관 나이제와 기여 나이제, 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원칙적으로 완전한 ‘디에이징’이 가능하다. 나이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마치 주식 그래프처럼 유동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된 경구처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이 지닌 허상의 멍에로부터 훌훌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나이에 대한 신경증적 편견과 계층 간의 갈등에서 한층 자유로워지고 세대를 규정하는 새로운 방식의 단초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나이를 먹는다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거나 훌륭한 인격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건강 검진 결과가 나온 뒤로 나는 얼마간, 반은 재미로 반은 진심으로, 나이를 밝힐 때 기존 나이에 ‘심혈관 나이는 몇 살입니다’라고 덧붙여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대방에게 간단히 이유를 설명하면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고 웃어넘긴다. 속으로는 ’이런 별난 사람하고는 역시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것들 외에도 여기서 말하지 못한 ‘촉법 소년 봉사제'라든가 ’군복무 마일리지 제도‘, ‘제한적 대마초 허용법’ 같은 의견들도 가지고 있다. 그것들 역시 모두들 장난으로 듣고 웃어 넘긴다. 물론 장난이고 농담이다. 그렇지만 살면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이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정말이지 실없는 농담처럼 들린다. 정말로, 비꼬는 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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