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Aug 06. 2023

비가 오려나

플라뇌르

비가 오려나          


  사람들은 보통 꼬박꼬박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사는 걸까.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일기 예보라는 것에 무심하다고 해야할지 무시한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여간해서는 잘 확인하지 않는다. 다음 날 등산 계획이 있다거나 곧 태풍이 온다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 찾아보지 않는다. 내일은 맑을지 흐릴지, 추운지 더운지도 별로 안 궁금한데 하물며 미세 먼지나 습도 같은 것은 당연히 전혀 궁금하지도 않다. 날씨라는 것은 그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니까. 비가 오고 있다면 우산을 꺼내고 쌀쌀하면 외투를 입는다. 안개가 짙으면 저속 운전을 하고 눈이 부시면 선글라스를 챙긴다.     


  그렇게 날씨란 나에게 그날그때의 대응인 것이지, 미리 짐작하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 예보와 날씨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단순 인과 관계만 따져봐도 날씨가 기상 예보를 결정하는 것이지, 기상 예보가 날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태도다. 비유해보자면 일기 예보는 소개팅에서 주고받는 프로필 사진이고 날씨란 그 실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기상청의 예측이 터무니 없이 틀리더라도, 예컨대 한파 주의보가 내려졌지만 실제로는 뙤약볕의 여름 하늘이라고 한들, 거기에 별다른 감상이 일지는 않는다. 예측의 성패와 관계없이 기상청이 매일 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처럼, 나도 기상 예보와 관계없이 평행선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너무 앞뒤 꽉 막힌 생활 태도가 아니냐. 우리에게는 최첨단 슈퍼컴퓨터가 있고 정밀한 분석 도구가 있다고, 이 원시인아‘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기상청 입장에서도 성심껏 분석 결과를 내놓았는데 조금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서운해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일기 예보란 모두 거짓말이며 허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일기 예보란 전적으로 믿을만하다 라고 생각하는 쪽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그 존재에 ‘별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가 코스피 지수에 관심이 없고 아이스 하키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내 눈에는 번번이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그 예상이 실제와 ‘들어맞는지 아닌지’를 하나하나 따지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기상청의 말과 날씨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투덜투덜 불만을 표하곤 한다. 더욱이 나는 그동안 기상청의 날씨 예측이 정확하다고 칭찬하는 사람 또한 보지 못했다. 맑은 날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기상청이라는 존재를 마치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말끔하게 지워버린다. 반대로 흐리거나 비가 와서 울적한 날에는 그것이 마치 기상청의 탓인 양 툴툴거린다. 아침에 비가 온다고 하더니 어째서 점심이 다 지나서야 비가 오는거야. 하여간에 기상청이 문제라니까. 구시렁구시렁. 그렇다면 비 예보가 아주 정확하게 들어 맞은 날에는?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똑똑하게 우산을 챙긴 자신의 준비성을 칭찬한다. 뭐 다 그런거지(커트 보니것 말투로).     


  일기 예보를 확인해야 할 때면 나는 짤막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생글생글 햇살 같은 표정의 캐스터가 ’비 소식이 있을 예정이니 우산을 준비하세요.‘라고 하면 댓글에는 ’오늘은 종일 해가 쨍쨍하겠네‘라거나 ’우산 안 꺼내길 잘했네‘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는다. 그렇게 일기 예보에 있어서는 다들 덮어 놓고 불신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측이 틀릴 때마다 사람들은 ‘기상청 직원을 잘라서 피해액을 보상하라’느니 ‘우리집 강아지가 기상청보다 더 정확하다’ 라는 말을 쉽게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기상청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도 날씨를 제대로 맞췄다고 칭찬해주지는 않는 것이다. 한 기상청 예보관은 ’만약 예정에 없는 비가 내린다면 그것은 예보관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니 부디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며 먹먹한 인터뷰를 남기기 까지 했다. 주륵 주르륵.     

내 주변에도 ’비가 오기 전에는 손목이 시큰해. 기상청 따위보다 내가 훨씬 정확하단 말이지.‘ ’내 곱슬 머리가 더 꼬불거리면 습도가 높고 늘 비가와.‘ 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이런 식의 사적인 예측법을 나는 개인적으로 '할머니 허리 예보' 라고 부르기로 했다. '에고고~ 비가 오려나. 허리가 쑤시네~' 같이 비논리적이고 직관적인 기상 예측법들을 뜻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바로 이런 것이다. 우선 매일 기상청 어플리케이션(그런게 있으려나)에서 ’내일의 날씨’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다. 맑을지 흐릴지, 비가 올지 눈이 올지, 풍속이나 기온은 어떨지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육감을 십분 활용하여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기상청에서는 컴퓨터가 분석한 기상 정보를 참고 자료로 제공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의견을 통계 자료로 정리하여 매일 일기 예보와 함께 발표한다.     


  처음 얼마간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재미있는 시민 참여 행사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기상청 보다 잘 맞출 자신이 있다‘ 라고 늘상 자부하던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참여하지 않을까. 평소 날씨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별자리를 확인하고 하늘의 흐름을 읽기 위하여 노력할지도 모른다. 이 정책에는 대체 어떤 이점이 있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일단 기상청에 대한 사람들의 원색적인 비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날씨 예측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산시키고 기상청은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의 굴레를 조금이나마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단순히 ’실패’를 비난하던 염세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과연 날씨를 맞힐 수 있을까 하는 ‘성공’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로 시선을 돌리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기상청에서는 날씨를 정확하게 맞힌 사람에게 부상이나 혜택을 주는 것도 괜찮겠다. 이달의 영업 사원처럼 예측률이 높은 사람을 뽑아 ‘이달의 날씨 왕’으로 선정하고 소정의 상품도 주는 것이다. 상품은 멋진 우산이나 바람 막이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사실 여기부터가 이 구상의 핵심인데, 개중에는 분명 기가막히게 날씨를 잘 맞히는 특출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기상을 읽고 온습도를 감지하는 감각이 풍부한 영적인 존재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기상청에서 일종의 ’현대판 천문관‘으로 특별 채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점차 재능있는 ’날씨 천재‘들이 모두 기상청에 모여서 근무를 하게 된다. ’4,5 번 척추가 쿡쿡 쑤시는 걸 보니 내일은 장대비가 오겠는데요.‘ ’산책하면서 풀잎 상태를 보니 내일은 안개가 낄테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 지성을 발휘하여 날씨를 예상하고 ’기상청의 의견‘으로 발표한다. 현대 과학 기술과 비과학적 능력이 협력하여 시너지를 발휘하면 예측 성공률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어딘가 신탁을 받는 무녀 같은 분위기도 있으니, 기상청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나 경외심도 쑥쑥 올라갈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사람들은 더이상 함부로 ‘오보청’ 이라느니 ‘구라청’ 이라고 쉽게 조롱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기상청의 팬이되어 매일 같이 일기 예보를 열심히 챙겨볼텐데. 지금처럼 건강하고 이쁜 캐스터가 나와서 우비를 입고 비 예보를 하는 것보다는, 호호 할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며 경고하는 편이 역시 더 믿음직하단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