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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6. 2023

확고한 젓가락질

플라뇌르

확고한 젓가락질          


  외부인의 입장에서 종교라는 존재, 혹은 제도란 참 어려운 문제다. 그것이 지닌 절대성도 믿기 어렵고 교리나 체계나 논리성도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누군가 확실하게 납득만 시켜준다면 당장에라도 신앙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납득이라는게 ‘내가(인류가) 태어난 이유’까지 납득해야 하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아무래도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런 말을 꺼내면 일단 ‘그럼 교회에 한 번 나와봐’ 라는 답변을 듣기 일수다. 그렇지만 피같은 일요일에 ‘교회’라니, ‘종교’라니. 나는 지난 일주일간 매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고, 웃고 싶지 않은 웃음을 지었으며,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해가며 낑낑 버텨온 것이다. 바로 이 달콤한 주말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일요일을 모조리 포기하고 교회에 기꺼이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희생이고 감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 모두 종교인을 기꺼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종교에 관해서 나는 궁금한 점이 무척 많다. 그래서 크리스천 친구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 밤에 기도를 드리면 안 되는 이유는 뭔가.‘ ’반드시 교회에 모여서 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교회에만 찾아 오나.‘ ’기도는 속으로만 해도 좋을텐데, 왜 남들이 듣도록 소리를 내가며 기도를 하는 것일까.‘ ’목사님은 하나님과 더 친밀한 존재로 편파적인 총애를 받는 것일까. 혹은 단지 통로인 것일까.’ 뭐 이런 것들이다. 술을 마시면 좀더 과감해져서 한층 곤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정말로 매주 전세계 모든 교회에 출석한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평생 기도를 하다보면 우연히 로또처럼 당첨되어 교회에 찾아온다고 믿는 것인지. 신에 대해 누구보다 회의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무인데 어째서 내가 아는 기독교인은 다들 고민에 빠지지 않는지. 기독교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시대에 왜 성자는 좀체 나타나지 않는지. 타성에 젖은 기도는 혹은 개인적 욕망을 바라는 기도는 올바른지. 죽기 전에 개종한다면 나는 천국행인지(가장 중요). 예수 이전 사람들이 연옥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불쌍치는 않은지. 뭐 그런 것들이다. 이렇게 집요하게 질문을 하다 보면 자칫 ’어쭈 어쭈, 그거 신성 모독아니냐.’ 하는 면박을 듣고 만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말하는데 나는 신성을 모욕하고 싶은 생각도 신자들을 화나게 만들고 싶은 의도도 전혀 없다. 종교란 거짓이고 허상이고 말장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기독교인의 사고 방식이나 그것을 믿게되는 과정, 그로 인해 인생에서 벌어지는 양상 같은 것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쓰고 보니 이런 나에게도 아직 친한 친구가 남았다는 자체가 ‘기적‘이 존재한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도 싶다. 


  요즘 나는 'CHAT GPT’와 단 둘이 노는 시간이 늘었는데, 인간에게는 도저히 물어볼 수 없는 편파적이고 무례한 질문도 서슴없이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여자)가 가장 멋진(예쁜) 나이는 언제라고 생각해?‘ 라거나 ’세상이 멸망한다면 그건 누구 때문일 거 같아?’ ‘살인자가 될 확률이 100퍼센트라면 그 사람은 미리 감옥에 가야할까?’ 이런 류의 질문들은 아무래도 실제 사람에게 대놓고 물어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렇게 거침없는 GPT도 왠지 종교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한다. 인격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던 건방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저 같은 인공지능 따위는 종교가 뭔지 잘 몰라요‘라는 도비식의 순수한 분위기를 풍기며 실망스러운 대답만 한다. 싱겁다, 싱거워. 어쩌면 이런 질문만 반복해서 하다보면 GPT도 결국 나를 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점점 답장 속도가 느려지는 기분이 드는데, AI와 밀당을 하고 있는 나, 얼리어답터란 바로 이런 것일까요? 아무래도 아니겠죠.     


  뜬금없이 이렇게 기독교인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얼마전 난감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과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음식이 나오고 내가 포크를 드는 순간, 그가 감사 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럴 때 비종교인으로서 나는 기도를 하건 말건 식사를 시작하는 것이 맞을지, 끝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귀를 기울여 그가 중얼중얼 기도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신과의 밀담을 몰래 엿듣는 묘한 기분에 빠진다. 전에 기독교인 친구에게 물어봤을 때는 ‘뭐 어때, 그런거야 알아서하면 되는거지.‘ 라고 속편하게 말해도, 실제로 한 식탁에 마주앉아 있으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진지하게 기도하는 상대를 두고 후룩후룩 파스타를 먹는 것도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랬다가 속으로 ‘저 자식은 나중에 지옥으로 떨어질거야’라고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를 일이고.     


  어떤 경우에는 조용히 혼자 기도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 식사 기도하겠습니다.‘ 라며 누군가 대대적으로 운을 떼기도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나는 그러면 무척 곤란해진다. 분위기에 맞춰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해야하는 것인지, 말똥말똥 눈을 뜨고 관심 없는 척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기도 한 번 같이 하는 것이 결코 어려울 일은 아니지만, 비기독교인이 불청객처럼 껴들어 기도를 하는 것도 기독교인에게는 일종의 ‘신성 모독’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음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빨리 끝내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아서 어쩐지 머쓱해진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모름지기 음식이란 나오자마자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앞에 두고 기다리는 것만큼 김빠지는 일도 없다. 음식 입장에서도 모처럼 맛있는 상태로 접시에 담겨져 섹시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눈을 감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짜증이 나지 않을까.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여성이 샤워를 하고 나와서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못 본척하며 부스럭부스럭 청소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조금만 기다려줘’ 라며 흥을 깨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식탁보의 패턴이나 컵의 무늬를 보면서 애매한 표정으로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기도가 끝나면 다같이 ‘아멘’이라고 한다. 나는 재미삼아서 ‘에이 맨’ 이라고 해보고 싶은데, 역시 그러면 혼나겠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불교 이야기도 해보자. 대학생 시절, 나는 한동안 불교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어떤 사정인가 하면,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정신을 차려보니 비좁은 동아리 방에서 옹기종기 향냄새를 맡으며 부처님과 마주하고 있었다. 선배들을 따라 뜻 모를 독경도 열심히 외고, 동아리 담당 스님의 지당한 말씀도 사뭇 진지하게 들어가며 꼬박 1년을 법회에 임했다. 개인적으로 공연히 유난떨며 참석을 반기지도 않고 불참했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법회가 끝나면 불교 동아리원들은 으레 모여서 식사를 했다. 운영비에서 낼 때도 있었지만 주로 스님께서 사주셨다.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그날은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주변에 고기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그곳 뿐이었다.


  하루는 스님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데, 불쑥 스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희 만두라도 시켜줄까.’ 두둥. 사실 나는 내내 고기 왕만두가 무척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스님을 앞에 두고, 얻어먹는 주제에, 명색의 불교 동아리원이 염치도 없이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낼 수는 없다. 혹시 그런 세속적인 욕망을 스님께서 읽고 일부러 떠보시는 걸까. 오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화두를 던지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불교적 문답법의 형태가 아닌가. 나는 머뭇거리며 ‘스님, 괜찮습니다.’ 대답했다. 같이 식탁에 둘러 앉은 두 동아리원도 이미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스님은 그날따라 한사코 거절하는 우리에게 ‘아니야, 그래도 만두는 먹어야지.’ 라며 결국 고기 왕만두를 시켜줬고, 곧바로 우리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큼직한 만두 네 덩이가 놓여졌다. 나는 삼가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만두를 집어 먹었다. 역시 불교란 모두에게 굉장히 포용적이고 따스한 종교인 것이다. 이제 문제는 비출가인 세 명이 만두를 먹고 나면 만두가 하나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덩그머니 남겨진 만두를 바라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시라. 스님 앞에서 불경스럽게 고기를 먹는 것도 찜찜한 판국에 탐욕을 부려 혼자 두 개나 먹는다니. 아무리 뻔뻔한 나라도 쉽게 못할 짓이다. 그렇게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만두만 쳐다보고 있던 그 때, ‘읏차’ 하더니 스님께서 만두를 집어 드시는 것이다. 마치 매일 왕만두를 먹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간장을 찍어서 먹성 좋게 단숨에 드셨다. 그것은 참으로 망설임 없는 확고한 젓가락질이었다. 일말의 머쓱함이나 고뇌나 찝찝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얼마나 자연스러웠던지 ‘역시 맛있는 것은 제일 마지막에 먹어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되려 내 쪽에서 당황스러움을 감추느라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 한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것이 만두를 빼앗겨서 당황한 것인지, 스님이 육식을 해서 그런 것인지는 이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당시의 심정은 뭐랄까, 포도 씨를 하나하나 발라먹던 어린 시절의 내가 처음으로 과육을 통째로 삼키는 사람을 봤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은 선택적으로 고기를 섭취하는 온건한 베지테리언 불교 종파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작은 의문이 남겨진 것도 사실이다. 스님은 어째서 고기 만두를 그렇게 맛있게 드신걸까. 하긴 기왕 먹을 거라면 바라 보는 입장에서도 자연스레 먹는 편이 눈치 보며 먹는 것보다야 훨씬 좋겠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물론 오로지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얼마 뒤부터 나는 법회에 참석하지 않게 됐다. 20살 무렵의 나는 종교라는 집단적 체계 보다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혼자만의 시간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꺼내는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우리 집안은 전부터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던 것 같다. 정확하게는 불교의 한 종파의 분파로 꽤나 전국적 단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지방 소도시를 지나다보면 회관이나 청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것이 조금 독특한 ‘불교’라고만 생각해왔다. 불교란 워낙 종파가 많고, 스님도 많으니까. 정기적 모임(좌담회)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그것 마저도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그간 우리 집안은, 정확하게 부모님은, 쭉 불교를 믿는구나 생각했다. 어릴 적 ’학생 기초 조사‘에는 종교를 쓰는 칸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당당히 불교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 우리집은 종교가 뭐예요?‘ ’음, 불교라고 적어.‘ 그렇지만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우연히 그것이 ’사이비 종교‘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재수 종합 학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그날 국어 심화 시간에 들어온 강사는 뜬금없이 지문에 나온 ’종교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충 흘려 듣고 있는데, ’여러분은 이래서 종교를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교리를 자의로 해석한 교주가 생기고 아귀 다툼에 휘말려 계속 분파에 분파를 거듭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되죠? 바로 사이비가 됩니다. 예를 들면 ㅇㅇ교.‘ 여기에 나온 ㅇㅇ교가 바로 우리 부모님이 믿는 그 ‘ㅇㅇ교’였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이란, 아직도 마땅히 표현할 길이 없다. 말하자면 두개골이 양쪽으로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연실색하여 사고가 마비 됐고, 내내 식은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더이상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고개를 숙이고 버티는데 급급했다.      


  그날 밤, 고시원 방에 쓰러지듯 돌아와 의자에 앉아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래, 아마도 그것은 정말로 사이비 종교가 맞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부모님은 작은 제단 앞에서 염주를 들고 불경을 외며 열심히 기도를 올리셨다. 집안에 힘든 일이 생기고 버텨내기 벅찬 일이 생기면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셨다. 사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종교라기 보다는 하나의 익숙한 정경 혹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부모님은 걱정이 생기면 어딘가 기도를 하신다.’ 어릴 적에도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참견할 수 없는 내밀한 침잠과도 같은 것이라고 설풋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도란,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오롯이 우리 가족을 위한 사적인 절박이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꼬마라도 그쯤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감히 물어볼 수 없다. 혹시 그것이 사이비냐고.     


  솔직히 이제와서는 ’그게 뭐 그리 대수였을까‘ 라고 생각한다. 이제 부모님은 반년에 한 번꼴로 종교 모임에 참석한다. 유일한 대외적 종교 활동이란 그저 소담한 기부뿐이다. 그리고 가끔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종교란 굉장히 힘든 시기에 참을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 준다고, 그리고 무언가에 ‘비는’ 행위를 통해 깊은 슬픔을 조금은 수월하게 버텨내 올 수 있었다고. 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종교란 무엇인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짐작건대,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극복’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을 극복하기 위함인가. 다분히 ‘인간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신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인간적인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삶의 지혜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근원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그 압도적인 모순성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 한 종교에 어떤 지고한 성취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다는, 그리고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일종의 비장미인 것이다.     


  만약 과학이 우주의 비합리성을 합리성으로 치환해 나가는 일련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종교란 그런 비합리성을 비합리적인 상태 그대로 섭취할 수 있도록 가공하고 유통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들은 종교라는 유효한 수단을 통해 ‘참을수 없는 인간의 인간성’을 한결 수월하게 감내하고 버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지지대 삼아 나아갈 것인지 채택하는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만큼은 어떤 종교를 믿는지와는 관계없이 심지어 종교인이든 비교인이든 관계없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종교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신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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