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절실한 문제

by grassrain


항상 미안하다. “미안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라고 쓰여 있다. 맞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는 게 내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는 매번 누군가에게서 생긴 일로 나에게 화풀이했다. 그 친구는 항상 화가 나 있었고 불편한 기분이었다. 모두 다 피하는 뾰족한 그녀를 나까지 피하면 미안할 것 같았다. ‘나라도‘ 남아 위로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는 ‘포커페이스’라는 별명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웃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남자친구에게 낯선 표정이 느껴지면 내 머릿속에 비상 스위치가 켜진다. 평정심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난 불안해진다. 뭔가 내가 잘못한 거 같다. 타인의 꼬인 기분과 생각을 풀어주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 나에겐 의무이자 삶의 목표였다. 내 이해심은 바다보다 더 넓고 깊다고 믿었다. 공감능력과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상대방과 나 자신에게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즐겁기만 해야 했다. 나는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고, 사과를 하고 싶지도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항상 즐거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삶을 사는 나는, 아마도 부모님의 삶에서 내리고 싶은 짐이었을 테다. 나의 부모님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부모의 역할과 의무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하셨다. 나도 원치 않는 ‘나의 보호자’ 역할을 젊고 성실해 보이는 남자에게 하루빨리 넘기고 싶어 하셨다. 나와 그 젊은 남자의 의지와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여자는 크리스마스야. 너 스물다섯 살 넘기면 값어치 떨어지는 거야.”

“너희들 오래 사귀었잖아. 결혼할 거지?”

“너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 결혼식의 주체는 부모인 우리니까.”

운전자도 없이 움직이는 불도저 같은 결혼식이었다. 해를 갓 넘겨 서른이 된 신랑에게 미안했다. 신부가 나여서 미안했다. 나의 부모라서 미안했다. 상견례자리에서 아홉수엔 결혼하는 거 아니라고 천천히 결혼시키자 에둘러 말씀하시는 시부모님에게도 죄송스러웠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사달을 만든 건 나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결혼이 부모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로 보였다. 안정적인 이 남자의 도움이 받고 싶었다. 동시에 부모에게서 날 건져내 책임져주길 바라는 파렴치한 마음을 숨겨두었다. 남편이 될 사람을 속이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나의 결혼생활은 새로운 모양의 죄책감도 덧붙여져 함께 시작했다.

결혼생활 육 개월, 첫아기를 임신했다. 합법적인 임신이었지만 우리 계획엔 없었다. 갑작스러운 임신에 넋이 나간 어린 남편에게 뭐라고 사과하고 위로해야 할까 고민했다. 배가 불러올수록 새로운 생명체가 반갑지 않은 마음방울들이 모여들었다. 자꾸 커져나가는 마음을 보며 아가세포에게 닿을까 덜컥 겁났다. 그렇게 태아까지 번져갔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인큐베이터로 수개월을 지냈다. 아가는 2.3kg로 태어났다. 아가에게는 물론, 부모님들에게 죄스럽고 지하 땅 속 끝까지 꺼지는 거 같았다. 온전히 내 잘못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소환된 아가는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있다.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낯선 혼란은 날 종종 마비시켰다.

내려놓을 수 없는 책임감과 반복되는 좌절감을 소화시키지 못해 죄책감은 목젖까지 쌓였다. 토할 거 같았다. 손가락으로 목젖을 건드려 토해내고 싶었다. 속만 메스꺼울 뿐이다.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 곤히 잠든 아가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는다. 밤마다 아가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주먹에 간절한 마음을 꼭 쥐고 가슴을 세차게 친다. 사죄해야 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 이로 소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 이로 소이다... 내 탓이다...”

이 아가가 태어난 건 내 탓이다.


꿈 속인지, 기억 속인지, 잊고 있던 죄책감이 문득 떠올랐다. 내 명치 속 어딘가 깊이 박혀 느껴지지도 않아 잊고 살았다. 아마도 가슴을 세게 칠 때 튀어나왔나 보다. 멍든 눈가와 피딱지 앉은 퉁퉁 부은 입술, 여기저기 손톱에 긁힌 엄마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떠올랐다. 어깨에서부터 뒷목으로 뻣뻣해진다. 초등학교 하교 후, 살짝 망설이다 살며시 안방 문을 연다. 방 한가운데에 등보이고 누워있는 엄마가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엄마를 위로해야겠단 생각으로 다가간다. 또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 얼굴이지만 재미난 이야기로 엄마를 웃게 만들어야 한다. 평소보다 빨리 뒤돌아본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웅얼대더니 이내 또렷해진다.

“왜 안 나왔어! 큰 네가 나와서 말렸어야지! 엄마가 크게 불렀잖아! 안 들렸어? 뭐 했어? 몇 시간을 맞고 있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나와봐? 네 이름 불렀을 때 바로 나왔어야지! 그러면 그때 바로 끝났잖아.”

“미안해. 엄마. 미안해. 너무.... 너무..... ”

나 때문이었구나. 나 때문에 엄마가 아프구나. 엄마가 많이 아팠구나. 지금도 아프구나. 근데 그 시커먼 밤에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고... 그저 크게 울 수밖에 없었다고... 그 무거운 이불속에서 나갈 수 없었다고, 사람의 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청난 잘못을 한 애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뜨겁게 달궈져 넘쳐흐르는 따가운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결혼하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내 잘못에 대한 뉘우침과 자책, 선택에 대한 후회, 그리고 부모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만 가득 찼다.

정체 모를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다.

난 도대체 무엇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무엇에 어쩔 줄 몰라할까? 불안과 무기력은 날마다 날 끌고 다녔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과 공황증상들을 겪어왔다. 그저 천천히 코와 입에 집중하며 참고 기다리면 이 고통이 잦아든다는 걸 자연스레 알아냈다. 성인이 돼서야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지만 원치 않았다. 이 정도의 우울과 삶의 괴로움은 다들 있지 않나? 이런 모습도 다 내 모습이라 생각하며 극복했다고 확신했다. 모래에 물이 스며드는 줄도 모르고 나 자신이 단단해졌다고 자만하며 살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파도에 모래성은 조금씩 흘러내리듯이 내 육신도 흘러내렸다. 십여 년 만에 나는 나만의 늪에 묻혔다. 아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력해진 몸에선 눈물만 솟구쳤다. 눈물은 늪을 더 크게 만들 뿐이었다.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입술에 온 힘을 다해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아이들에게 또 미안한 짓을 저질러버렸다.

또 크나큰 죄를 저질렀다.

몇 달의 고민 끝에 용기 내어 정신과에 갔다. 또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문가를 만나고 강력한 권유로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이년이 훌쩍 넘었다.

“엄마~ 정신병자야? 왜 정신병원에 가?”

“엄마 뇌가 좀 약하게 태어났는데 나이 드니까 뇌가 좀 아파질라 해. 그래서 정신과에 다니는 거야.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려고 가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놀랄 일이 또 안 생기게 할 거야.”

“엄마~ 오늘은 베스트 프렌드한테 무슨 얘기했어?” 아이들은 나의 치료를 기꺼이 응원해 준다.

“네 맘이 편해지면 평생 병원에 다녀도 돼~” 처음 남편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응원해 준다.

“내가 저렇게 예쁜 애를 낳았다니!!”

“내가 차린 밥상 맛있지?”

“이럴 땐 나에게 고마워해야 해!!”

나도 나를 칭찬해 주고 자랑스러워한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불안과 우울은 여전히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감싼다. 심지어 약을 복용하고 있는 중에도 몇 달 동안 나도 모르게 나를 뒤덮어 버린다. 어린 시절엔 무엇이든 더더 두껍게 날 완전히 덮어 숨겨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밑에서 울고 싶지 않다. 이젠 좀 무겁게 느껴진다. 걷어차고 싶다. 요즘 아침, 나의 심박수가 크게 느껴진다. 긴장 때문인지,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약 먹기 이전의 아침과는 사뭇 다르다. 우울과 무기력에 빠진 시간에서 조차 죄책감을 느끼던 나에게 몸을 움직여하고 싶은 일들이 제법 생겼다. 죄책감으로 움직이는 하루가 아닌 자유 의지로 가득 찬 하루를 만들어 나가겠다. 조금씩 차근히 좋아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운다. 약 없이도 가득 채울 수 있는 날들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

나의 절실한 문제? 막막했다. 나의 가장 큰 고민? 문제? 불안!! 무기력!! 왜 이런 기분에 빠져드는지 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죄책감‘이었다. 녹내장인걸 알았을 때도 내 눈 상태보다 유전병이라는 사실로 죄책감에 파묻혔다. 그리고 정신과 약 없는 하루를 건강하게 맞이해보고 싶었다. 이번 글을 쓰는 동안 목 뒤의 긴장감으로 참 힘들었다. 하지만 수정할수록, 들여다볼수록 가벼워졌다. 무겁게 시작은 했지만 무언가를 점점 덜어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볼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나의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나와 내 여동생을 사랑으로 키워주셨고,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사셨고, 살아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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