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 텀블러

엄마의 관심

by grassrain

평일 아침 루틴은 몇 년째 항상 같다. 눈뜨자마자 전 날에 생각해 둔 아이 둘의 아침식사를 ‘대충‘ 챙겨준다. 여기서 대충의 의미를 덧붙여 설명하자면, 친절하지 않게 내어준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연습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다음 재빠르게 싱크대 물을 틀고 물소리에 집중한다. 어떠한 생각도 튀어 오르지 못하도록 꾹꾹 눌러 넣으며 어제 저녁부터 째려보던 텀블러를 분해한다. 아이들은 전날 하교 후, 뚜껑은 따지 않은 채 싱크대 위에 놓아둔다. 부엌에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식탁의자에 앉아 차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은 수세미와 함께 꼭 움켜쥐고, 텀블러를 씻기 시작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세제거품과 함께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하교 후 스스로 씻게 할까.‘ ‘여러 개 사놓고 주말에 식세기로 몰아서 씻을까.‘ ‘작은 플라스틱 생수를 박스로 사놓고 하나씩 챙겨줄까.‘ 대충대충 꼼꼼히 씻는다. 집안일들 중 가장 싫어하면서, 제일 중요하기에 미룰 수 없는 허드레 일이다. 오만오천가지 생각이 끝날 쯤엔, 오늘의 텀블러 두 개 씻기가 끝난다.

그날의 일기예보와 시간표, 어제의 물 온도 등을 아이에게 묻고 살펴가며 챙겨갈 물에 넣을 얼음 개수나 물 온도를 체크한다. 겨울에는 끓여낸 물을 살짝 넣어 따뜻하게, 여름에는 얼음을 몇 개 넣어준다. 아이들에게 물의 온도가 괜찮은지 한 모금씩 따라주며 확인할 때도 있다. 혹여나 물이 새서 가방 안이 난리 날까, 부품 하나하나 꼼꼼하게 끼우고 마지막엔 온 힘을 끌어모아 꽉꽉 잠가준다. 물기가 흥건한 완성 작품을 행주로 대충 슥슥 닦아낸다. 그리고 학교 갈 아이들이 잊지 않도록 잘 보이는 현관 앞 한가운데 전시해 둔다.



텀블러 챙기기는 나에겐 하루 중 첫 번째로 치르는 엄마 자격시험 같은 거다. 바꿔 말하면 아이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줄 수 있는 기회다. 아침에 채워야 하는 할당량이다. 반나절이상 엄마와 떨어져 있을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을 전해줄 물통을 꼭 챙겨줘야 한다. 학교 갈 준비로 각자 바삐 움직이는 아이들은 절대 몰라주는, 그리고 나중에 알아채기도 어려운 나만의 사랑 주는 방법이다. 그리 생각하면 응당 성심성의껏 해주고 싶은 일이 된다. 나의 애증스런 써모스 텀블러 두 개는 내 생애 처음 구매한 브랜드 텀블러다.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구매했고 아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니 내 것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나의 애정 담긴 손길과 미운 정이 깊숙하게 스며 있다.



어린 시절의 난 순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갖고 싶은 걸 생각하면 안 되는 줄 알았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들어가 딱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하는 나의 모든 생각과 경험까지 엄마가 만든 틀 안에 맞춰 넣기란 불가능했다. 엄마의 틀 밖으로 삐져나온 생각들 중 학교에서 알게 된 물건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의 보온보냉 물통이다. 가지려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고, 한 번쯤 만져 보고 싶었던 기억난다.


한 여름의 초등학교 체육시간이 끝난 후 쉬는 시간이었다. 한낮 땡볕아래 운동장에서 제일 어린이다운 시간을 끝내고 온 반 아이들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수돗가에서 물을 마셨지만 뜨겁게 달궈진 수도관의 물은 따땃했다. 시간과 아이들에게 쫓겨 실컷 마시지도 못했고, 상쾌함도 없었다. 땀으로 빠져나간 몸 안의 수분만 겨우 채웠다. 이제부터 할 수 있는 건 교실에 뒤덮인 더위를 쫓아내기 위한 부채질을 하는 거다. 양쪽 가운데 기둥에 붙어있는 선풍기 두대로는 역부족이다. 반아이들 모두 함께 힘을 보태는 거다. 그러다 목소리 큰 남자애들 한두 명이 얼려온 플라스틱물통을 들고 교탁 앞으로 나온다. 시원한 물이 콸콸 나오기보단 통 안에 갇힌 얼음에게 애원하며 물 한 방울씩을 탈탈 털어내야 하지만 목소리 높여 매번 반아이들에게 자랑한다.

“우리 엄마가 얼려줬다~ 좀 더 녹여서 물 나오면 좀 줄까? ”

유치한 어린애들 같았다. 어떠한 감정의 눈빛 한 방울도 흘리기 싫었다.

‘쟤들도 어차피 못 마시는 물이다. 내가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저 아이들은 애 태우며 참아야 한다. 난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진다.‘

난 체육시간이라고 미리 얼려온 물은커녕, 꺼낼 빈 물통도 없었지만 관심 없었다. 나오지도 않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티 나지 않게 참아내야 했다. 교탁 앞의 말하는 원숭이들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돌린 나의 시선 끝엔 더 험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비슷해 항상 내 주변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친구가 책가방에서 두툼하고 묵직한 물통을 자랑스럽게 꺼낸다. 당시 흔치 않은 일본제 보온보냉 물통이었다. 물통 표면엔 조그만 코끼리가 알파벳과 함께 그려져 있었고, 물 나오는 입구 부분엔 일본어가 오도토돌 새겨져 있었다. 컵 역할도 하는 물통 뚜껑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원터치 버튼을 누른다. “톼악!” 소리가 상쾌하게 난다. 시원한 물을 곧 마실 수 있을 거라 원숭이들처럼 큰 목소리 내지 않아도 눈길이 쏠린다. 마치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다 집중될 때까지 기다리는 듯 천천히 쪼르륵 컵에 따라낸다. 그녀의 눈썹은 이만큼 올라갔지만 물컵을 내려다보는 눈길과 익숙하면서도 세상 우아한 손 모양으로 물을 따라 마시는 얄미운 친구의 모습을 흘끔흘끔 본다. 원숭이들로부터 굳건하게 잘 지키오던 자존심에 금이 생기는 지도 몰랐다. 나의 부러움이 금이 간 틈으로 슬금슬금 새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지켜보다가... 들켰다.

“너도 한 모금 마실래?”

“... 아니, 괜찮아!”

날 이제야 인식한 듯 묻는다. 진짜 밉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저 물통 안의 물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도, 저 뚜껑 컵을 잡아보고 싶어도, 물을 받아 마시긴 절대 싫었다.

“엄마! 나도 물 싸줘. 교실에서 마시게. 목말라!”

몇 번의 언급에도 반응 없던 엄마가 어느 날 드디어 물을 싸줬다. 체육시간이 있는 날도 아니었지만 물통이 어찌나 반갑던지. 엄마가 싸준 물통은 브랜드도 없고 컵으로 쓸 수 있는 뚜껑도 없는 흔한 투명한 플라스틱 물통이었다. 원터치는커녕 두 손으로 힘껏 돌려 열어야 물을 내어주는 까다롭고 못생긴 물통이었다. 하지만 나도 물을 마셔본다. 여름날의 가방 속에서 꺼낸 물은 뜻뜨미지근하다 못해 누군가의 침을 삼키는 듯한 물맛이었다. 그래도 나에게도 물통을 챙겨주는 엄마가 있음을, 엄마의 관심을 꺼내 보일 수 있었다. 어린 나에겐 엄마의 사랑을 합리화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체육시간이 있는 날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물통은 몇 번 안 챙겨 주었다. 나의 엄마는 그리 꾸준하고 세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의 학교 가방에 챙겨 줄 물통은 엄마의 나들이 물통으로 챙겨나가는 일들이 더 많았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입학을 하였다. 그 새침한 친구도 같은 중학교가 되었고, 입학과 동시에 그녀의 물통이 더 좋아진 걸 몰래 알아챘다. 그녀는 보온통 속 액체가 코감기와 목에 좋다며 복도에서도 껴안고 다니며 마셨다. 그녀와 달리 물통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엄마가 생각하는 물통과 내가 생각하는 물통이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의 물통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물통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건 너무 버릇없는 짓이었다. 학교 성적에 대한 넘치는 관심과 남들이 좋다고 소문난 학원에 보내주는 배려, 그리고 나의 하루 시간표를 짜주는 엄마의 사랑이 너무도 버거웠다. 표현한 적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었지만 엄마의 물통이 너무 크고 깊어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교복을 입는 내내 난 잠식되었었다.


집엔 가족이 다 함께 사용하는 텀블러 몇 개가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나타났다. 선물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받은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사용하기엔 불편하고, 홍보하는 회사 로고가 크고 또렷하게 적혀있어 들고 다니기 살짝 부끄럽다. 집에 있는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쏙 드는 건 없다. 반면 요즘 텀블러들은 나의 어린 시절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모양도 이쁘다. 한데 새로운 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됐다! 더 이상 필요 없다. 관심이 담긴 물통을 기다리던 어린이는 없다. 아침마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할 사랑을 담아내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엄마가 되고서 나의 엄마를 생각해 본다. 나의 엄마도 어린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보내줬겠지? 비록 내가 원하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엄마 기준에서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거였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어찌 됐건 내가 갖고 싶은, 내가 원했던 ‘물통’은 이번 생엔 없다. 받을 수 없다.


에필로그 -


“엄마, 하늘이는 텀블러도 이름처럼 하늘색이야~ ” , “이 텀블러는 아인이 거랑 똑같네~ 이거 색깔 예쁘지?” , “우리 반 애들은 스타벅스 텀블러 많이 들고 다닌다”

눈치가 빠르지 않은 엄마여도, 아이에 대한 관심이 조금만 있으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첫째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번 생일 선물로 스타벅스 텀블러가 어떠냐고 물었다. 등교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틈에 현관문을 활짝 열고 현관에 서 있는 큰 아이의 눈이 평소보다 더 반짝였다. 텀블러 이야기에 날 닮은 입매가 더 돋보이게 웃는다. 한여름의 하늬바람 보다 더 반가운 사춘기 소녀의 미소를 보며 나도 시원하게 웃는다.




**** 작가의 말 ****


몇 달 전부터 아침부터 새로운 텀블러도 함께 씻고 있다. 물건을 주제로 글쓰기라 하니 텀블러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무엇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얽혀 있어서 이번 글 주제에 맞춰 써보기로 정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려웠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내놓고 일러바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풀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좀 더 풀어내면 내 한풀이로만 내비쳐져 글을 망칠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개요를 잘 지켜가며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나름 다 담아 털어냈고, 미천한 실력이지만 글도 잘 마무리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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