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자존감 올리기

by grassrain



대프리카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가을이 시작된지도 한참 지났는데 밤새도록 에어컨을 틀어야 할 만큼 제법 더운 추석 명절이었다. 추석 당일 오전, 서울로 떠날 채비를 다 끝내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아쉬운 마음에 딸 아이들의 눈을 몇 번씩 더 마주치고, 토닥이고, 손을 붙들며 명절의 마무리 순간을 몇번씩 반복하신다. 시어머니는 아이 둘과 남편 순서로 차례차례 포옹을 꼭 해 주신다. 항상 해오는 익숙한 작별 의식이다. 그 세명과 성씨가 다른 난 한 발자국 뒤에 물러서서 그들의 광경을 지켜본다. 매 번 봐도 신기하고 새롭다. 어색한 일일 드라마의 한 장면을 현실에 대입한 듯한 기분이다.

헌데 이 날 처음으로, 남편이 장난스레 ”엄마! 이제 며느리도 한 번 안아줘야지!!“ 란 말을 툭 던졌다. 남편의 말에 난 흠칫한다. 반면 시어머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안아줄 수 있지” 하시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날 향해 두팔을 뻗으신다. 헌데 더 놀라운 건 내 몸이 이미 시어머니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 상황에 맞장구치며 마치 내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슬금슬금 다가갔다. 어정쩡하고 구부정한 포즈로 어색하게 가서 안긴다. 하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너무 부끄러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따뜻하고 폭신했다. 짧은 내 어휘력으로 감히 다 형용할 수 없지만 최대한 전달하자면, 구름같은 깃털들 사이에 보송하면서도 쫜득한 소파에 내 몸이 폭 감싸지는 느낌이랄까? 처음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까끌하지 않았다. 사랑이 넘치는 엄마의 포옹이란게 이런거구나. 그 순간 내 얼굴은 천진난만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을거다. 감정의 정체를 알아채기엔 너무 짧았고,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스며 나왔지만,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은 전달 받은 것 같았다. 왜인지 질끈 감았던 눈에서 물이 새어나오려 한다. 티내지 않으려 광대에 힘을 줘 눈 밑 애교살을 있는 힘껏 치켜 올린다. 뻘게졌을 눈을 숨기려고 한껏 눈주름을 만들어 하회탈 얼굴을 만들고 어색하고 과하게 웃으며 후다닥 차 안으로 빨려 들어가 앉았다. 무중력의 정신상태에서 안전벨트의 ‘딸깍’ 소리와 함께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남편은 저런 엄마가 있어서 참 좋겠다. 부럽다.‘ 그리고… ‘나도 만약에…'이었다.

시어머니는 경상도 시골 토박이에 낯을 많이 가리고 순진하며 소박한 성격의 소유자시다. 참외농사가 유명한 시골에서 딸 다섯명을 낳은 후에 아들 하나 있는 육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나셨다.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든 시골마을에서 자랐고, 그 당시의 모든 딸들처럼 10대부터 큰 도시로 나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스물 세살의 나이로 결혼하셨다. 남편을 위하는 아내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 아들 둘을 위한 엄마의 역할도 해내시며, 어린나이부터 식당 일도 하셨다. 전형적이고 성실한 어머니이시다. 그 당시의 엄마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엄마이기에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외벌이 남편은 돈을 벌어오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집에서 애만 키우는’ 며느리인 내가 좀 더 참고, 나의 남편이면서 당신의 아들에게 더 양보하고, 좀 더 위해 줘야 한다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신다. 그런 얘기를 종종 들어도 난 아무렇지않다. 괜찮다! 죽어도 끝까지 엄마는 자기 자식 편인게 당연하지 않나!? 혹여나 남편과 내가 편을 갈라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시어머니는 절대 내 편이 아니실게다. 그저 보통의 시어머니지만, 생각하면 흐믓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딸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애정 표현을 해주시고, 나에게도 당신께서 해주실 수 있는 모든 배려와 도움을 주시려한다. 게다가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말씀하신다. 큰 아들이 장가를 참 잘 갔다고 자랑하신다. 내가 세상 며느리들 중 최고라 칭찬 하신다. 제일 이쁘고 똑똑하다 해 주신다. 손녀 딸들을 낳아주고, 혼자 애쓰면서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시어머니도 시어머니가 처음이라 잘 모르고 제때 돕지 못해 미안하다 말씀해 주신다. 아들 손주가 없어 섭섭하지 않으시냐는 질문에도 절대 아니라며, 성별 상관없이 건강히 지금처럼 잘 키우라 하신다. 살찐 하체비만 내 다리도 튼튼하고 건강해보여 너무 이쁘고 자랑스럽다 하신다. 출산하고 살찐 내 모습에 넋두리라도 하면 딱 맞다고, 보기좋다고 건강 먼저 챙기라 하신다. 내가 잘 먹는 밑반찬이나 좋아하는 메뉴를 관찰해서 알아내주시고, 시댁에 방문할 때마다 나만을 위한 반찬을 준비 해주신다. 항상 된장, 고추장, 맛간장 등등 살림살이 필요 여부를 물어봐주시고 알뜰살뜰히 다 빼내어 챙겨주신다. 물론 어머님의 아들에게 더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라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걸 잘 알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선물도 종종 챙겨주신다. 비싼 브랜드의 화장품 샘플들을 한가득 준비해놓고 슬쩍 트렁크에 챙겨 넣어 주시고 한다.

이런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말들과 배려를 친부모에게서 느껴본 게 언제 였을까? 친부모가 이 정도 해주는 건 당연하다 여기고 지나쳤을까? 내가 모르는 방법으로 나 몰래? 나에게 표현하고 있었을까? 내가 아직 철이 없어 모르는 걸까?시어머니와의 포옹이 처음임과 동시에 엄마라는 사람이 해주는 포옹도 나에겐 낯설었다. 아주 어린시절, 아마도 내가 걷지 못하는 시절엔 있었을 거 같다. 시어머니와의 포옹이 있은 후, 한참동안 괴롭게 몸부림치며 기억을 짜내봤다. 정말 엄마와 포옹을 한 기억이 없다. 사랑이 느껴지는 포옹은 커녕 따뜻한 손길도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세상 엄마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깨닫고 살아왔다. 왜 나의 엄마는 보통 생각하는 엄마와는 조금 다른건지… 내가 원하는, 혹은 내가 생각하는 엄마 역할의 기준이 높은가? 나의 엄마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엄마가 더 좋아보이는건가? 내가 도망다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 이렇다할 이유를 못 찾았다. 글을 쓰면서 차차 알아내고싶다.

대신 나에겐 뚜렷하고 명확한 시부모님이 있다.

우리 아이들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자존감을 듬뿍 뿌려주는 해바라기 샤워기 같은 분들이라 너무 다행이다. 시부모님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그렇게 눈 마주치고, 안아주고 싶다. 따뜻한 사랑을 주며 아이들을 배려하고, 시어머니같은 엄마가 되고싶다. 특별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내가 시부모님에게 자랑거리라는 사실이 참 행복하다. 나를 위한 메뉴가 있는 어머님의 집밥도 더 많이 먹고 싶다. 내가 상상해왔고, 꿈꿔왔던, 그리고 받고 싶었던 엄마의 온기를 남편 옆에서 간접적으로라도 꾸준히 느끼고 싶다. 삶 자체가 의문이었던 나는 진정한 어른의 역할과 가족간의 사랑을 시부모님에게서 배우고 있다. 가족간의 사랑을 주고 받는 법도 더 보고 배우고 싶다. 이번 추석, 시어머니를 만나면 나 또 안아달라고 할거다. 그땐 더 오랫동안 잘 느껴보고 싶다. 시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히 우리 곁에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아이들, 내 남편 뿐 아니라 나에게도 너무 좋겠다.





**** 작가의 말 ****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는 힐링 글쓰기모임(a.k.a 글채집)에서 썼던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전 수정했다. 내용을 많이 걷어냈고, 변경됐다. 그 동안 나의 글쓰기 실력이 올랐다고 믿고싶지만… 덕분에 다른 글쓰기 주제가 또 생겼다. 퇴고와 수정의 명확한 선을 알기에 아직 난 너무 초보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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