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내가 한 집밥. 내가 먹기

by grassrain


가을비가 내릴 때면 김칫국이 생각난다. 시어머니의 묵은지를 반포기 꺼내 살짝 씻는다. 때가 되면 ‘부모자식‘이라는 이유로 매년 공짜로 받는 김장김치의 배춧잎 사이사이에는 어머님의 마음이 듬뿍듬뿍 담겨있다. 시어머니 김치의 고춧가루는 맵고, 양념소를 많이 넣는 편이라 김치찌개나 김치찜을 할 때 그대로 넣고 끓이면 텁텁하고, 맵찔이 우리 아이들에겐 맵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내 취향대로 요리하고자 그 정성스러운 마음들을 씻어 떠나보내면, 부모님의 거추장스러운 관심을 씻어내는 거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정작 내 새끼들에겐 너무 매운 고춧가루다. 내리사랑이 맞는 거겠지. 고춧가루들아, 내려가거라. 한 잎한 잎 들추며 정성을 넣으신 시어머님께 이렇게 양념을 살짝 빼내야 손녀들이 더 잘 먹는다 말씀드리면 무조건 이해해 주실 거다. 김치를 숭덩숭덩 자른다. 통마늘은 다지고, 양파와 파도 먹기 좋게 자른다. 육수에 김치를 제일 먼저 넣고 오래오래 끓여야 맛있다. 물이 다 졸아 들겠다 싶도록 센 불에 한참을 끓이다가 육수를 조금 더 추가하고 썰어둔 야채들과 콩나물도 넣는다. 또 끓인다. 간은 액젓과 맛간장으로 맞춘다. 요리할 때 들어가는 정성에는 기다리는 시간도 포함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냄비를 바라보는 시간. 재료들의 익혀지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이때, 요리에 대한 집중력을 흩트리면 안 된다. 이상하게도 잠깐 핸드폰에 빠지거나 한눈을 팔면 같은 요리 방법이어도 희한하게 맛이 달라진다.

“국 맛이 어때? 매워?” “쓰읍~ 좀 매운데 맛있어~ 쓰읍~” 맵찔이 두 딸내미의 반응을 보니, 내가 의도한 간 맞추기는 성공이다.

“엄마, 이 국 이름이 뭐야? 다음에 이 국 또 해줘” “김칫국. 엄마 어렸을 때 급식에서 먹었는데 생각나서 해봤어. 맛있지? 너네 학교 급식에서 이런 거 안 나와?”

물론 내가 어릴 적 먹어봤던 김칫국 맛이랑은 전혀 다르다. 국 없이도 밥을 잘 먹던 아이였지만, 그 잊을 수 없던 김칫국의 맛은 한 번씩 생각났다.

친정엄마의 김치로, 시어머니 김치로 몇 번을 다양하게 끓여봐도 내가 기억하던 맛과 닮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을 비롯하여 두 아이들은 내가 만든 김칫국을 잘 먹어준다. 아니, 김칫국뿐 아니라, 내가 한 밥이면 모두 다 잘 먹는다. 잘 먹어주니 용기를 내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맛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런데 뒤늦게 알아챈 큰 문제점이 있다. 난 요리에 취미가 없고, 집밥이라는 범주에 어떤 요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식에 대한 기본자료가 ‘영‘에 가깝다. 결혼 전엔 밑반찬은커녕 국조차도 필요없던 나였다.

난 ‘집밥‘을 정말 안 좋아했다.

두 번의 임신기간 동안 별스럽게 먹고 팠던 음식이 없었다. 입덧이 심하지 않아서인가? 그저 평소보다 골고루 잘 챙겨 먹으려고만 했다. 그러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무말랭이. 아다닥아다닥 씹히는 그 식감 좋은 뻘건 무말랭이가 떠올랐다. 재래시장 없는 아파트촌에서 문말린 걸 어디서 구하기도 어려웠다. 구하더라도 할 줄도 몰랐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누군가 해준 ‘밑반찬이 있는 집밥‘이 먹고 싶었던 거 같다.

“어머님… 저 무말랭이가 먹고 싶어요.” 부탁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며느리가 하는 시어머니에게 하는 첫 부탁이었다. 게다가 첫 임신 때도 먹고 싶다던 음식 하나 없이 지나갔던 큰 며느리가… 때마침 친정엄마는 먼 타국에 있어 집밥 먹기 힘들 며느리가 쭈뼛쭈뼛 꺼낸 말에 어머님은 흔쾌히 대답하신다.

“하모~ 해줄게~ 해줘야지~ 김치하고 된장은 안 모지르나? 부족하면 말하래이~ 말만 하믄 내가 다 보내주잖아! “ 가볍고 상쾌한 목소리에 리드미컬한 경상도사투리가 더해져 마치 기분 좋은 노래를 부르시는 거 같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 택배를 보냈다는 연락이 왔다. 시어머니의 집밥은 객관적으로 맛있다. 밑반찬들을 비롯하여 얼음팩 역할을 위해 꽁꽁 얼려 보내주시는 국도 너무 맛있다. 갓한 포기김치부터 물김치, 깻잎순무침, 오이소박이, 고추다데기, 고디국, 쑥국, 경상도식 소고깃국 등등 무조건 다 맛있다. 밑반찬만 있어도 밥이 이렇게 맛있구나. 국 없이 밥 못 먹는다는 친구들의 말이 이런 건가? 집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시어머니가 꼭꼭 담아 보내주시는 택배 속에서 ‘집밥의 맛‘을 뒤늦게 알았다.


어린 시절 제일 좋아했던 집밥이 뭐였는지 한참을 떠올려본다. 친정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나름 요리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가족을 위해 한 끼니 한 끼니 정성으로 요리해서 먹였을 친정엄마가 들으면, 엄청 섭섭해할 부분이다. 엄마의 요리실력도 좋다. 요리도 배우러 많이 다셨고, 음식에 따라 다양한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는 걸 좋아하셨다. 새로운 식재료도 많이 아시고, 다양한 조리방법에도 관심이 많으시다. 친정엄마 말론 어린 시절의 난 식성이 까다롭지 않았고, 아무거나 다 잘 먹었다 하신다. 한데 내 기억 속에 난 편식이 심한 아이였던 거 같다. 야채는 익힌 양파만 먹었고, 상추는 커녕 초록색 야채는 햄버거나 김밥 속에 껴서 먹는 정도였다. 그리고 소풍날에 싸주는 김밥을 좋아했다. 엄마의 집김밥은 참 맛있었고, 손이 많이 가는 메뉴였기에 가끔 보면 더 반가웠다. 방학 때 잔치국수와 카레밥, 돈가스를 참 많이 먹었다. 며칠씩 연달아 잘 먹은 기억이 난다. 공통점이라면 다른 밑반찬이 없는 음식들이었다. 그 와중에 김치는 대학 때까지 손도 안 댔다. 도대체 난 뭘 먹고 이렇게 잘 큰 걸까? 자라면서 위쪽 방향으로는 모자랐는지, 옆 방향으로도 구석구석 빈틈 없이 너무 잘 컸다. 내 기억력의 문제인가?

“엄마~ 나 어렸을 때 잘 먹는 게 뭐였어?” “지나(여동생 가명)는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찜을 잘 먹었고.. 넌… 다 잘 먹었지. 혼자 앉은자리에서 딸기잼 발라 식빵 한 줄을 다 먹었지. 보는 내가 지겹게 계란도 엄청 먹어 댔지.” 생각났다. 5학년때쯤부터 계란프라이를 할 줄 알았다. 엄마만 집을 비우게 되는 주말에는 내가 밥상을 차려야 했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국을 덥혀 드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계란프라이도 하나 해서 올려드리라며 엄마가 가르쳐 주었다. 동생도 챙겨주고, 아빠도 챙겨드려야 하는 첫째 딸. 그때쯤부터였나 보다. 집에서 엄마의 유무 상관없이 배고플 때 계란프라이 하나에 맨 밥, 그리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벼 먹은 기억이 문득 났다.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세상에 없는 레시피. 내가 만든 비빔밥.

친정집은 예전부터 외식을 많이 하는 집이었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부부 모임이 많았고, 동생과 나는 두고 가신 돈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 빵과 주스등을 먹으며, ‘밥‘은 한 끼니도 안 먹고 지나간 적도 많았다. 우리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 가족 모두 있는 주말의 나머지 한 끼는 햄버거 아니면 치킨, 피자였다. 엄마는 굳이 한식으로 밥을 챙겨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게다가 모두 모여 밥상을 함께 차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눌 만큼 다정다감한 가족도 아니었다. 얼마 전 듣게 된 엄마의 떳떳한 고백에 따르면 예전에 돈 아끼느냐고 우리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까지 국거리 소고기는 아빠 국에만 들어갔다는 사실!! 아빠는 국 없이 식사하기 힘들어하셔서 아침마다 항상 국을 끓여 드렸다는 사실!! 지금의 나 또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 생각해 보니, 충격이었다. 나도 결혼 후, 돈이 넉넉지 않았을 때, 아이들이 잘 먹는 미역국에 소고기는 꼭 넣어줬는데... 나 어릴 때 고기 좀 먹이지… 그랬다면 그렇게 징그럽게 계란을 많이 먹진 않았을 텐데... 아마도 엄마는 소고기 국거리를 아이들에게도 먹이는 것보다 돈 벌어오는 아빠 국에 조금씩 소분해 넣으며 감칠맛을 내는 게 우선이었나 보다.

그런데도 식구들에게 집밥 해주는 게 왜 이렇게 버겁고, 힘이 든 지. 특히 주말에 밥상을 차리려면 이유 없이 몹시 불쾌했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면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미루는 책임감 없는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집밥을 차려냈다. 그렇게 내키지 않으면서도 밥상 위에는 다양하게 잘 차려내고 싶어 계획을 세워 장을 보고, 매 끼니에 갓한 밥을 하려 아등바등 댔다. 결혼 전엔 먹지도 않고 관심도 없던 밑반찬들을 잘 만들어 내지 못해 혼자 자괴감에 빠졌다. 주말에 식사 때가 되면 별스럽게 구는 나 자신을 보며 죄책감에 휩싸였다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양파를 써는데 눈이 너무 맵다 핑계 대며 부엌에 서서 엉엉 울기도 했다. 부엌에만 서면 복잡해지는 심정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감정만 들끓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묻혀버리면 그 모습을 가족들에겐 숨기고자 갑자기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결혼 전 계란국 위에 떠 있는 장식용 파까지 건져 먹으며 밥 두 공기를 싹싹 긁는 현 남편(전 남자친구)의 모습에 반했다. 결혼하며 집밥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나의 아이들도 집밥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집밥을 좋아하지도 않고, 한식을 많이 먹고 자라지도 않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와 집밥은 무슨 관계일까? 집밥에 왜 이렇게 집착할까? 결핍이 있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 고등학교시절에 공부 잘하고 똑 부러지는 친구들은 집밥을 다 잘 먹었고, 직장 다니는 엄마를 둔 친구들도 엄마밥을 좋아했다. 나에겐 없는 ‘집밥의 힘‘이 그들에게선 느껴졌던 거다. 생활이 궁핍해서 끼니를 굶거나 엄마가 없어 집밥을 먹지 못하고 자란 것도 아닌데 성인이 된 언젠가부터 어린 시절엔 먹지도 않던 두부부침과 콩나물무침, 나물과 김치가 있는 밥상이 간절해졌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 그 무언가가 담긴… 간소하지만 건강한 끼니가 필요했다.


집밥을 차리기 시작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다. 된장 냄새는 맡기도 싫어하던 나의 자신있는 메뉴는 건새우 된장국이다. 그리고 급하게 밥상을 차려야 할 땐 청국장을 끓여낸다. 인스턴트와 볶음밥, 덮밥류는 싫어하는 줏대 있는 식성을 가진, 기름지고 붉은색의 음식들 보다는 심심하고 깔끔한 한식을 잘 먹는 남편이 너무 성가시고 번거로워 성질나기도 한다. 밥을 잘 먹는 모습에 반했는데 그 밥을 내가 매일 하며 힘들 줄이야. 하지만 언젠가부터 가족들과 주말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피곤해도 초인적인 힘으로 밥을 얹고, 청국장이나 된장국을 제일 먼저 끓여낸다. 김치와 함께 가족들에게 한식을 먹이는 굳센 한국인 엄마가 되었다.

한식에서 제일 중요한 김치와 된장의 출처는 시어머니이니, 그 재료들로 내가 요리해서 ‘선보이는 밥상‘이라고 정확히 표현하겠다. 아무리 맛나고 고급진 음식을 먹고 나서도 일요일 저녁의 마무리는 엄마의 된장국을 먹어야 한다고, 멀리까지 찾아가 먹고 온 소문난 맛집의 음식들 또한, 엄마의 청국장을 먹어야 잘 소화된다고 말해주는 아이들. 효인 거니? 불효인 거니? 과거 치열했던 시간들을 밥상 차리는데 쏟아부은 결과, 우리 가족들의 입맛은 나의 손맛에 완벽하게 길들여졌다. 뿌듯하다. 비록 나의 중. 고등학교시절 집밥을 좋아하던그 친구들만큼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썩 잘 하진 못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가지지 못했고, 그들에겐 가득 차 보이던 그것들을. 쥐어짜 내어 나의 아이들에게 차곡차곡 넣어준 것 같아서 뿌듯하다. 요즘엔 매운 걸 먹기 시작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맞춰 매운 반찬도 도전 중이다. 이번 주말도 새로운 밑반찬을 보고 따라 해 본다. 부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본다. 그리고 이젠 내가 만든 집밥을 하루라도 안 먹으면 속이 느끼하다. 내가 만든 집밥이 제법 마음에 든다. 가족 뿐 아니라 집밥 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내 안에도 넣어주고 있다. 나의 건강도 챙기고 나를 더 귀하게 여기려 노력한다. 앞으로 시어머니께 된장 뜨는 법과 김장김치하는 법도 배우고 싶다. 시어머니에게 집밥을 더 많이 배우고 싶다. 뼛속까지 집밥의 힘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집밥을 더 집밥답게 만들기 위해 알아가고 배워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 또 할 일이 생겨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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