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덕분에…
난시, 근시 모두 심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안경을 썼다.어린 시절부터 정기적으로 보아 온 동네 안경점 입구에 “몸이 십 할이면 눈이 구 할이다.”라는 속담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시신경이 죽어가고 있다는 녹내장이란 병은 나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고, 무서운 상상력을 발휘하게 했다. 녹내장을 이유로 안과에 정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며 심해진 불안과 우울함은 나를 휘저으며 흩어놓으려 했고 나를 쓰러뜨릴 만큼 강력했다. 속상한 마음과 걱정거리를 반복해서 말하고 다니면 머릿속이 좀 가벼워질까 싶어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익숙한 사람들에게 내가 녹내장이란 사실을 자랑하듯 반복해서 말하고 다녔다. 자꾸 입 밖으로 내뱉다 보면 ‘녹내장’이라는 병을 덜 무서워하게 되지 않을까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친해지기 너무 어려웠고, 내가 파낸 생각의 동굴 속으로만 다시 기어 들어갔다. 동시에 나의 녹내장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아이 둘에게 무거운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의 어여쁜 두 눈을 볼 때마다 몸서리치게 괴로워하고 미안해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정신 차려야 했다. 내가 심적으로 힘든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에 아직은 어리기만 한 아이들을 마냥 방관할 순 없었다. 허투루 시간을 흘려보내버릴 수 없었다. 아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엄마의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날들이다. 코로나 시기도 겹쳐있었다. 집단생활에 시간과 공간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엄마와의 관계가 사회생활로 연결될 수도 있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슬퍼할 겨를이 없다. 내 건강 지수가 조금 깎였다는 사실로 아이들에게 안 좋은 기운을 줄 순 없었다. 아직 아이들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로 미안해하는 마음은 일단 지우려 노력했다. 쓸데없는 상상으로 아이들이 크고 난 다음 후회하지 말자. 각자 두 아이들의 나이에 필요한 돌봄과 정서적 안정을 더 꼼꼼히 챙겨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어쩌면 나중에 녹내장 진단을 받을지도 모를 아이들에게 녹내장이란 병을 너무 악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더욱더 밝고 긍정적인 얼굴로 어여쁜 아이들과 눈 마주치고 하루에 한 번씩 웃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의연하게 행동하려고 버둥거렸다. 나 스스로 즐거워지려고 무던히 애썼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제법 많다 보니 맘껏 슬퍼할 수도 없었다. 꾹꾹 참아내야 했다.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을 끌어안고 꾸역꾸역 시간을 보냈다. 괴로움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물속에 잠긴 듯 숨쉬기 어려웠다. 행여 내가 잠식되더라도 양손으로 끌어안은 두 아이들만은 나보다 높이 올린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들만은 반드시 수면 위로 올려 보내겠다는 굳센 의지로 나를 다독였다. 그러기 위해선 물속에서 최대한 숨을 참아내야 했다. 길게 내쉬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심적 움직임 또한 최대한 줄였다. 맘껏 숨 쉴 수 있을 때가 언젠간 오리라 믿었다. 난 잘 참는다. 제법 오랫동안 참아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안정적이게 되었다 느꼈을 때쯤 쓰러졌다.
병원 진료 중 제일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는 안과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빛 번짐과 눈부심이라고 대답했다. 빛 번짐과 눈부심 모두 난시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며 녹내장과는 상관없는 증상이라고 했다. 대신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진단을 내려주며 백내장으로 인해 눈부심이 더 심해질 순 있다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백내장. 그래. 뭐. 별로 놀랍지도 않다. 녹내장 환자들에게 백내장은 흔하게 뒤따라 나타나며, 아직 크게 걱정할 시점은 아니지만 적절히 자외선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과의 야외 활동에서 한 번씩 챙겨 쓰던 선글라스는 동네 안에서의 일상생활에서도 필수품이 되었다. 햇빛이 피부에 노화를 일으키듯이 햇빛으로부터 눈을 필사적으로 지켜내야겠단 생각으로 이어졌다.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내 눈을 지켜내고 싶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슬리퍼를 신고 잠깐 앞에 나갔다 들어올 때도, 어린아이의 귀갓길 마중을 나갈 때도, 핸드폰은 안 들고나가더라도 선글라스는 꼭 끼고 나갔다. 나의 불안함과 성실함은 선글라스를 내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흡수시켰다. 게다가 선글라스 윗부분과 내 눈썹 틈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상상력은 UV가 확실히 차단되는 창이 넓은 모자까지 꼭 쓰고 다니게 했다. 적막한 집에 홀로 있을 때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유산소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시신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불안감을 떨쳐내려 냅다 달렸다. 정말 막 달렸다. 달리기는 나에겐 운동이 아니었다. 땀배출을 잘되는 기능성이나 발이 편한 차림새 따위에 신경 쓸 정신은 전혀 없었다. 맨발에 컨버스화나 고무 신발을 신고도 달렸다. 겨드랑이와 등에 땀이 흐르면 오롯이 티 가 나는 색깔과 면재질의 티셔츠를 입고도 한 여름에 내달렸다.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새여도 불안이 덮치려 하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의 외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내 불편한 감각과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오직 선글라스와 창이 큰 모자만을 챙겨 쓰고 밖으로 나갔다. 길바닥에 내 안의 불안감을 다 털어버릴 작정이었다. 세상에 호소하고 싶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병이 빨리 찾아왔는지. 억울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은 뒷 순서 환자들에게 쫓기 듯이 빨랐고, 무지한 내가 듣고 완전히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일상생활에서 궁금한 점들도 늘어갔다. 녹내장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비로소 나름대로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도움이 컸다. 현실이 꿈이길 바라며 틈나는 대로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는 나에게 녹내장에 관련된 유튜브와 자료들, 그리고 온라인 모임카페를 공유해 주었다. 처음엔 그 자료들에 집중할 수 없었다. 눈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는 시늉만 했다. 몇 달이 지나도 친해지기 어려운 안약과 접선을 시도하던 중, 무심한 성향인 남편의 네모난 눈에서 솟구치는 불빛을 느낀 이후로 내가 각성됐다고 기억된다. 남편의 조언에 따라 큰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나오는 정확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큰 병원에서 주최한 녹내장 관련 라이브 방송을 몇 번씩 되돌려 보았다. 행하기 쉽지 않은 방법들이 정답이리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행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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