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에게 뻬앗긴 행복
나는 길치다. 게다가 큰 병원은 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다. 복잡한 동선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으며 내가 가야 할 곳에 찾아가야 한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말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너무 많은 생각들은 배제시키자. 오늘의 날짜가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이 시각이 되기까지, 지금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내내 쏟아져 내리는 생각들로 난 이미 흠뻑 젖어있다. 수많은 생각들을 잔뜩 머금고 무거워졌다. 톡 하고 건드리면 생각들은 눈물이 되어 나올 것 같다. 최대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자. 조금만 견뎌보자. 좀 더 단순화시키자. 똑바르게 깨어있자. 긴장하자.
“오늘 진료 접수는 되셨고요. 잠시 대기하시면서 질문지에 답해주시겠어요? 이쪽으로 쭉 따라가시면 패드가 보일 거예요. 마지막에 제출하기를 꼭 누르세요.”
담당의와 진료하기 전, 평소 나의 기본 생활 습관에 답해야 했다. 성별과 나이, 그리고 임신 여부등 병원에서 물어봄직한 물음으로 시작하여 음주 횟수나 흡연의 여부, 그리고 혈압이나 당뇨병의 유무, 복용하고 있는 약의 종류, 가족력에 이르기까지 문제수가 꽤 많았다. 이런 건 왜 물어보지 싶은 평소 생활습관들까지. 꽤 꼼꼼하고 자세하게 대답해야 했다. 짐작하건대, 나이가 지긋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은 아닌 듯했다. 젊은 사람들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전자 패드로 답하고 제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 녹내장 30대 환자‘ 중 한 명이 되어 설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나의 생활 습관에서 녹내장과의 특이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더라도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에 큰 기여가 되었길 바란다. 전자패드 속 질문에 답하며 더해지는 녹내장에 관한 무수한 궁금함들 중, 첫 진료부터 예상치 못한 것이 풀려버린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운동이었다.
하고 있는 운동의 종류와 운동 강도와 횟수등을 체크하는 부분이었다. ‘근력과 눈이 무슨 상관이지? 건강에 운동이 중요하긴 하지!!‘ 그 당시의 난 운동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요가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요가라는 단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요가인이었다. 그날 아침에도 불안한 마음을 붙잡으려 요가를 하고 병원에 온 나는, 봐도 봐도 반가운 “요가”를 자랑스럽게 선택했다. 요가가 대중화되기 훨씬 전부터 요가의 매력에 푹 빠져 온 사람으로서 두 번의 임산부 요가를 비롯하여 자유시간이 없는 육아 시절에도 집에서 유튜브로 요가를 하는 등 요가에 매료돼 있었다. 평생 함께 할 것이며, 나와 가장 잘 맞는 운동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핑크색 카디건이 어울리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강구한 대책 중 하나로 죽을 때까지 요가를 할 작정이었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내 몸을 말랑말랑하면서도 속 안은 가득히 차오르게 만들어 주는 요가는 정신건강에도 참 좋았다. 요가를 열심히, 꾸준히 한다고 몸무게가 줄거나 출산 전만큼 날씬해 지진 않았다. 그저 요가하는 건강한 돼지로서 충분히 행복했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함과 동시에 요가인의 생활을 다시 시작해 거의 매일 사 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기본 동작들엔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복잡하고 어려운 동작들을 단계별로 연습해 나가고 있었다. 한 단계씩 성공할 때마다의 성취감과 짜릿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시기엔 마침, 물구나무서기와 비슷한 요가 동작에 빠져 밤마다 이불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위한 동작을 연습을 하던 때였다. 총 3단계 중 2단계까지 성공한 터였다. 3단계가 목전이었다. 병원 가기 전날 밤까지도 불안함을 떨쳐내려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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