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

녹내장 따라가기

by grassrain



아홉 시 정각. 여지없이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내 안약통이 어디 있지?”

“......” “……” “……”

누군가의 대답을 원하고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상황을 설명해 주는 뮤지컬 속 주인공처럼 말하는 분위기였기에 나머지 가족들 중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아까 분명… 여기 식탁 위에서... 여기 있다!”

이런 호들갑 없이 어느새 아홉 시가 지나가 있으면 가족들은 나에게 물어본다.

“엄마, 안약 넣었어?”

“풀비~ 니 아직 안약 안 넣었지?!”

육 년째면 완전히 익숙해질 법 한데 놀랍게도 잊을 때가 있다. 가족들 덕분에 빈틈없이 잘 챙기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오는 아홉 시, 아침저녁으로 난 안약을 넣는다.

난 녹내장 환자다.

죽을 때까지 하루 두 번씩 안약을 넣고 살아야 한단다. 그나마 위로되는 점은, 한 가지 안약만 넣으면 되고, 양눈에 한 가지 약을 한 방울씩 넣으면 된다는 점이다. 혹시나 눈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다른 종류의 안약을 십 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넣어야 할 수도 있고, 가장 고난도의 안약 넣는 방법은 양쪽 눈에 넣는 안약의 종류가 달라져 왼쪽 오른쪽을 따져가며 시간차를 두고 챙겨서 네 가지 안약을 넣어야 할 수도 있다.

내 나이 만서른세 살이었다. 든든한 남편 덕분에 얼떨결에 하게 된 내 생애 첫 번째 건강검진에서 동네 안과를 꼭 가보라는 결과를 들었다. 긴 연휴를 앞두고 밀린 숙제를 하자는 심정으로 갔던 동네 안과였다. 난 어느 병원이든 가기 싫어한다. 하지만 열 살 때부터 안경을 써온 나로선 그나마 친숙한 안과다. 이십 대 중반에 했던 라섹 수술을 떠올린다. 가장 마지막은 둘째 아이 젖을 먹이던 때, 시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 같아 답답한 시야에 안과에 가서 검사한 적이 마지막이었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번 방문은 너무 긴장된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별일 아닐 거라 되뇌면서, 요 근래에 찝찝한 꿈을 꾼 적이 있는지도 떠올려 본다. 없는 것 같다. 평소에 큰 고통과 큰 불편함은 없었기에 괜찮을 거라 나를 다독이고 긴장을 떨쳐내려 마음을 다잡는다.

대기실과 달리 어두 컴컴한 진료실의 분위기는 나를 더 줄어들게 만든다. 왜 안과는 항상 조명을 어두컴컴하게 하고 있을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계를 사이에 두고 엄마 나잇대의 의사 선생님과 얼굴을 맞대고 앉는다.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다가 빠르게 검사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밖을 나가고 싶다. 기계 반대편에선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나도 덩달아 어수선해진다. 몇 번을, 한참 집중해서 들여다보시던 선생님은 처음보다 한층 높고 빨라진 목소리로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더 큰 병원에 오늘 당장이라도 가보세요. 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검사는 다 했어요. 최대한 빨리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한 검사들을 받고 처방받으세요.” 나에게 온 질병이 동네 작은 병원에선 감당할 수 없는 큰 병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애써 잘 감싸 붙잡고 있던 마음들을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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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ssrain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글쓰기로 나를 치유하고 있어요. 부끄럽지만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작은 토닥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좋은 기운을 나눠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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